"쇼팽 전문가? 벗어나려 했지만 다시 돌아왔죠"
18년만에 음반 내고 투어
"마지막 왈츠·녹턴 등 14곡
나이 들면서 후기작에 공감
연인도 건강도 조국도 잃은
쇼팽 슬픔을 덤덤하게 표현"
30대에 요절한 천재 작곡가 쇼팽. 그의 생애 마지막 작품을, 쇼팽을 사랑한 피아니스트 김정원(48)의 해석으로 만난다. 김정원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쇼팽 소나타 2번을 듣고 빠져 피아니스트가 되기로 결심했고, 독보적인 해석과 연주를 보여주며 '쇼팽 전문가'로도 불리게 됐다.
그는 이달 22일 광주를 시작으로 25일 서울, 28일 대구, 29일 청주, 30일 부산 등 5개 도시에서 '김정원의 라스트 쇼팽' 독주회를 갖는다. 지난 17일 발매한 새 앨범 '쇼팽의 마지막 작품들'에 수록된 전곡을 현장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다. 쇼팽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 4년간(1846~1849년) 쓴 작품을 모았다.
18일 서울 통의동 기자간담회에서 만난 김정원은 "쇼팽이 아꼈던 녹턴, 마주르카, 왈츠, 폴로네즈 등 각 장르의 마지막 작품들"이라고 소개했다. "제가 철이 늦게 들었으니 지금 30대 후반의 쇼팽과 비슷한 감정으로 삶을 바라보고 있지 않나 싶어요. 적당히 회의적이면서도 많은 것에 너그러워졌죠. 쇼팽은 당시 연인도, 건강도 잃고 조국 폴란드도 잃은 상태라 훨씬 더 외로웠겠지만, 음악을 통해 그 감정을 막연하게나마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음반 1번 트랙의 바르카롤 Op.60 '뱃노래'는 그의 2001년 국내 첫 음반 '쇼팽 스케르초'에도 수록했던 곡이다. 그는 "그때 연주와 많이 달라져 있다"고 설명했다. "20대 땐 아무래도 좀 더 패기 있었어요. 당시엔 이 곡이 화려하고 흥미롭다고만 느꼈는데, 이번에 연주하면서는 허심탄회한 감정을 많이 생각했습니다."
'강아지 왈츠'로 불리는 왈츠 Op.64 No.1도 밝고 따뜻한 선율이지만, 실은 쇼팽의 후기작이다. 김정원은 "눈앞의 강아지를 보고 쓴 게 아니라 예전에 키웠던 강아지를 회상하면서 썼을 것"이라며 "신나 보이지만 아득한 그리움이 담겨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앨범 트랙은 쇼팽이 곡을 만든 순서대로 실었다. 쇼팽의 유작이 된 마주르카 Op.68 No.4에 대해 김정원은 "놀랍게도 죽음을 예감하고 쓴 것 같다"고 해석했다. "한 사람과의 이별이 아니라 손에 쥐고 있던 걸 내려놓고 떠나는 느낌이에요. 이 시기 곡들은 병치레를 하며 썼기 때문에 초기작처럼 짜임새가 딱 떨어지진 않지만, 최대한 산만하지 않게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그는 쇼팽의 슬픔을 오히려 덤덤히 표현하는 데 신경 썼다. 감정을 과시하는 게 더 극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김정원은 "나이가 들면서 입맛이 바뀌듯 음악적 표현에서도 간이 센 것보다는 자연스러운 표현이 와닿는다"고 했다. "이 음악들은 쇼팽 초기작에 비해 감정 전달이 직접적이지 않아서 더 아프게 느껴져요. 전 쇼팽 내면의 아픔과 괴로움을 오히려 미소 지으면서 말하고 싶어요. 너무 아프다고 해서 그걸 '아프다'고 말하면 오히려 안 아파 보이거든요. 어떻게 해야 그 상태 그대로 전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연주자로서는 피곤한 프로그램이지만, 듣는 분에겐 치유의 경험을 드릴게요."
사실 김정원은 한동안 쇼팽과는 의도적으로 거리를 뒀다. 이번에 쇼팽 전곡 음반을 낸 것도 2005년 '쇼팽 에튀드' 이후 18년 만이다. 그는 "언제부터인가 연주자로서 쇼팽에 국한되는 이미지를 벗고 싶었고, 애증의 관계에 있던 쇼팽을 떠나고도 싶었다"고 털어놨다. "제게 쇼팽은 언제나 피아노 그 자체였어요. 저와 피아노의 관계 속에서 뗄 수 없는 존재였죠. 그런데 이번 마지막 작품을 연주하면서는 아예 그런 고정관념도 없어졌어요. 그냥 한 사람을 만난 것 같습니다."
음반을 쇼팽이 평생 애틋해한 조국 폴란드에서 완성한 점도 뜻깊다. 특히 폴란드 출신 프로듀서와 작업하면서 곡 해석이 더 풍부해졌다고 한다. 현지 유명 레이블 둑스(DUX)의 클래식 음악 프로듀서 마우고자타 폴란스카가 맡았다.
그는 "저도 녹음할 때 예민하고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편인데, 이 프로듀서에겐 한 곡만 쳐본 후 바로 마음을 열었다"고 했다. 예를 들어 폴란드 전통 음악인 마주르카를 두고 피아노에 적합하게 부드럽게 연주한 김정원과 폴란드 혼을 실어 힘줘 연주하라는 프로듀서 사이에 의견 충돌이 있었는데, 김정원은 두 가지 모두 연주해본 뒤 후자를 택했다. 그는 "제가 알고 있던 음악적 범주를 벗어나 폴란드인의 '솔'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정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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