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병원 피폭으로 바이든 중동 순방 구상도 타격
5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가자지구 알아흘리 병원 피폭 참사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더욱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였다. 이번 참사 여파로 요르단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4자 회담 일정이 전격 취소되면서 확전 억제·인도적 위기 해소 등을 내건 중동 순방 구상은 시작부터 시험대에 올랐다.
바이든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이스라엘 텔아비브로 향하는 전용기에 탑승한 직후, 백악관은 예정됐던 요르단 방문이 취소됐다고 발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 방문을 마친 뒤 곧바로 요르단으로 이동해 요르단 국왕과 이집트 대통령,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수반과 4자 회담을 열 계획이었다. 미국 대통령 회담 일정이 직전에 취소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순방 일정 취소로 바이든 대통령의 중동 긴장 완화 구상은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아랍권 지도자들과 역내 확전 억제 및 팔레스타인에 대한 인도 지원 방안을 논의하려던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미국은 이스라엘과 아랍권 국가를 나란히 방문해 ‘균형’을 갖추려고 했다. 이는 하마스와 팔레스타인을 분리해 대응한다는 기조의 연장선이기도 했다. 그러나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알아흘리 병원 폭발 참사 이후 바이든 대통령을 만나지 않겠다고 밝혔고, 결국 전쟁의 한쪽 당사자인 이스라엘만 찾는 ‘반쪽짜리’ 외교 행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정치적 부담도 더욱 커졌다. 병원 피폭을 계기로 가자 참상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 상황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이스라엘행은 이스라엘의 군사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처럼 비칠 소지가 있다. 이미 아랍 국가들에서 ‘반이스라엘’ 시위가 확산되고 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전략소통조정관은 기내 브리핑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에) 어려운 질문들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스라엘에 대한 굳건한 지지를 재확인하면서도 인도적 지원 보장, 과도한 군사 공격 자제 등 요구사항은 전달할 것이란 의미로 풀이된다.
그러나 아랍권 내에서 고조된 이스라엘에 대한 공분이 미국에 대한 반감으로 전이될 가능성은 커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바이든 대통령의 이스라엘 방문이 “역내 긴장을 완화하는 게 아니라 증가시킬 위험이 있다”면서 “미국이 ‘정직한 중재자’로 보이려고 했던 노력도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동 지역 내 미국의 입지가 더욱 쪼그라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리처드 고원 국제위기그룹(ICG) 분쟁 전문가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방문 목적은 미국이 이 상황에 통제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지만, 전쟁을 통제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이 같은 비극적 사건에서 드러난다”고 말했다.
가자 병원 피폭이 누구의 소행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만약 이스라엘 측 원인으로 밝혀질 경우에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다. 미 정부 관리들은 아랍 국가 정상들이 이스라엘의 공습과 인도 위기에 분노하는 시민들로부터 이스라엘에 대한 대응 조치를 실행하라는 압력을 받게 될 수도 있다고 워싱턴포스트에 말했다.
미국의 대이스라엘 전폭 지원 방침도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정부는 미군 병력 투입 가능성에는 선을 그으면서도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지원 확대를 추진해 왔다.
워싱턴 | 김유진 특파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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