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호품 막은 이스라엘, 국제사회 비판에 “‘인도주의 구역’ 설정···남쪽으로 떠나라”

선명수 기자 2023. 10. 18.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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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남부 도시 라파에서 발생한 폭격으로 시민들이 건물 잔해에서 부상자를 들어 대피시키고 있다. 앞서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주민 110만명에게 ‘남부로 떠나라’고 대피령을 내렸지만, 정작 대피한 가자지구 남부에서도 연일 공습이 이어지며 희생자가 속출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가자지구에 물과 식량, 전력, 의약품 등 구호품 반입을 차단한 채 10일째 전면 봉쇄를 이어오고 있는 이스라엘이 국제사회의 압박에 못 이겨 가자지구 남부에 ‘인도주의 구역’을 설정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구호물품의 반입을 어떻게 허용할 것인지, ‘인도주의 구역’ 밖의 민간인들에게도 전달될 수 있도록 보장할 것인지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18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은 성명을 통해 가자지구 남부 해안 소도시 알마와시에 ‘인도주의 구역(humanitarian zone)’을 설정했다며 가자지구 민간인들에게 이곳으로 대피하라고 공지했다. 이스라엘군은 “알마와시에서 국제사회의 인도적 구호품이 제공될 것”이라고 밝혔다.

해안에서 28㎞ 떨어진 알마와시는 이미 피란민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는 남부 마을 칸 유니스 서남쪽에 위치한다. 이스라엘 당국은 이 지역에 구호품이 언제부터 전달되는지, 가자지구에 구호품을 반입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통로인 이집트 접경 ‘라파 검문소’를 열어 구호트럭의 진입을 허용할 것인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다만 이스라엘이 대규모 공습을 예고하며 재차 주민들에게 남쪽으로 떠나라고 밝힌 것으로 미뤄볼 때, 구호품이 가자지구에 반입되더라도 이스라엘이 설정한 ‘인도주의 구역’ 밖으로는 전달되지 않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전쟁 발발 열흘 만에 가자지구에 이재민이 100만명 이상 발생한 상황에서 소도시의 제한된 지역 내 구호품 지급이 상당한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스라엘의 대피 명령으로 이미 남부 마을 칸 유니스와 라파는 몰려든 피란민으로 포화 상태에 이르렀고, 수백여명이 화장실 한 칸을 공유할 정도로 위생 문제도 심각한 상태다.

17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남부도시 라파에서 한 남성이 공습으로 다친 아이를 안고 몸을 피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남쪽으로 대피하라’는 통보 이후에도 이스라엘의 남부 공격은 계속되고 있다. 팔레스타인 내무부에 따르면 17일 라파와 인근 마을 칸 유니스에서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최소 80명이 사망했다.

이스라엘이 하마스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지난 9일부터 가자지구에 식수와 연료, 전력, 구호품 등의 공급을 차단하면서 가자지구는 이날로 10일째 외부와의 접근이 차단된 상태다.

지난 9일 이스라엘이 “앞으로 가자지구에는 전기도, 식량도, 연료도 없을 것”이라며 전면 봉쇄를 선언한 후 가자지구는 식수와 의약품이 고갈되는 등 극심한 인도주의적 위기에 직면한 상태다. 이에 국제사회는 민간인들에게 구호 물자가 지급될 수 있도록 라파 통로를 개방할 것을 요구했으나, 이스라엘은 이를 거부해 왔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주요 타임 라인

10월7일 │ 하마스, 이스라엘 기습 공격
이스라엘, 가자지구 보복 공습 시작
9일 │ 이스라엘, 가자지구 봉쇄 선언
10일 │ 이집트, 라파 검문소 운영 중단
13일 │ 이스라엘, 가자 주민 110만명에 ‘24시간 내 대피령’
15일 │ 미국, ‘라파통로 개방 합의’ 발표, 이스라엘 부인
17일 │ 미 국무장관, 바이든 대통령 이스라엘 방문·‘구호 통로 개방 합의’ 발표
가자지구 병원 폭발 참사 발생
18일 │ 이스라엘, 남부 ‘인도주의 구역’ 대피 명령
조 바이든 미 대통령, 이스라엘 방문

이스라엘 당국의 이날 발표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문을 몇시간 앞두고 나왔다. 앞서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은 전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8시간 가까이 회의를 한 뒤, 가자지구 주민에게 구호품을 지급하기로 이스라엘과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블링컨 장관은 네타냐후 총리에게 가자지구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막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뒤 바이든 대통령의 방문을 발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봉쇄 장기화로 국제적인 비판 여론에 직면한 이스라엘로서는 바이든 대통령의 방문 성사로 미국의 변함 없는 지지를 재확인하는 것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블링컨 장관의 이날 발표 전에도 미국 정부는 이미 여러차례 라파 통로 개방을 이스라엘·이집트와 합의했다고 밝혔으나, 국경은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국경 개방 소식을 들은 외국인과 이중국적자, 민간인들이 라파 검문소로 몰려갔으나 결국 미국 정부가 ‘공수표’만 날린 꼴이 됐다.

17일(현지시간) 이집트 국경 라파검문소에서 국경 폐쇄로 가자지구로 진입하지 못한 구호물자와 트럭들이 대기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가자지구의 유일한 ‘생명줄’로 불리는 라파 통로는 이날 이스라엘군의 구호품 지급 발표 이후에도 8일째 여전히 닫혀 있는 상태다. 지난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후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보복 공습이 시작되자 이집트는 지난 10일 라파 검문소의 운영을 중단했다.

라파 검문소는 공식적으로 팔레스타인과 이집트가 관할하지만, 전쟁 발발 이후 이스라엘이 사실상 공중을 통제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구호품들 사이에 무기가 밀반입돼 하마스로 전달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며 국경 개방을 막아 왔다. 사메 슈크리 이집트 외무장관은 BBC에 “이집트 국경 쪽에서 대기 중인 구호물자의 라파 검문소 통행을 허용할 권한이 이집트 정부에게 없다”고 말했다.

WP에 따르면 미국 관리들은 이스라엘이 구호 트럭을 수색하는 대신 구호품 반입을 허용하는 방안을 두고 협상을 이어왔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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