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라도 빨리 떳떳이 아빠 보내드리고 싶다”···분신 택시기사 딸의 소원 [노동사(死), 그 후의 이야기]
지난 17일 오후 5시30분. 서울 영등포구 한강성심병원 앞에 차려진 아버지의 분향소를 찾은 방희원씨가 고인의 영정을 바라봤다. 2살 때 헤어져 얼굴조차 제대로 몰랐던 아버지 방영환씨는 하루아침에 고인이 되어 돌아왔다. 희원씨는 “원래도 얼굴을 모르고 살았지만 앞으로도 아빠를 사진으로밖에 못 본다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했다.
택시 기사였던 희원씨의 아버지는 지난 6일 숨졌다.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달 26일 본인이 다니던 해성운수 앞에서 분신해 전신 70% 이상 3도 화상을 입은 지 열흘 만이었다.
희원씨는 아버지가 분신한 당일 오전 경찰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부친이 위독하다는 내용이었다. 아버지가 227일간 시위하던 회사 앞에서 분신해 화상을 입었다는 말은 없었다. 열흘 뒤 또 다른 경찰은 희원씨에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시신을 찾아갈 것인지만 물었다.
30년을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으로 보내온 희원씨는 하나뿐인 딸로서 장례를 치러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병원 관계자로부터 장례절차에 대한 설명을 듣다 분신 사실을 처음 듣게 됐다. 희원씨는 포털사이트에서 아버지 이름을 검색해봤고, 이렇게 찾은 기사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읽었다고 했다. 방씨가 숨진 당일 병원 앞에서 열린 추모제를 찾은 딸은 그날 오후 10시에야 비로소 상황을 온전히 파악할 수 있었다고 했다. 희원씨는 “처음에는 빨리 장례를 치르고 싶었는데 알고 보니 아빠가 너무 억울할 것 같았어요. 법은 지키라고 만든 건데, ‘이미 있는 법을 지키라’고 하다가 극단적 선택을 한 거잖아요.”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해성운수분회장이던 방씨는 사측의 부당해고와 임금체납에 항의하며 1인 시위를 벌여왔다. 회사는 방씨가 2019년 7월 노조에 가입한 이후 그에게 배차변경 등 불이익을 줬다. 방씨가 최저임금을 보장하지 않는 근로계약서 작성을 거절하자 사측은 2020년 2월 방씨를 해고했다.
방씨는 굴하지 않고 소송 끝에 대법원에서 부당해고를 인정받아 지난해 11월 복직했다. 회사는 다시 소정 근로시간을 하루 3.5시간으로 축소하는 불이익 계약을 요구했지만 방씨는 계약을 거부했다. 그러자 회사는 방씨가 주 40시간 이상 택시를 몰아도 월 100만원가량만 지급했다.
‘아빠는 돈도 주지 않는 택시회사에 왜 계속 매달렸을까.’ 희원씨의 의문에 아버지의 동료들은 방씨가 자주 하던 말을 들려줬다. “‘나까지 하지 않으면 대체 누가 이렇게 불법 저지르는 회사를 고발하겠냐’고 하셨었대요.” 평균 연령대가 높은 택시기사들 사이에서 아버지는 ‘젊은 내가 싸워야 하지 않겠냐’고 했었다는 것이다.
‘꺾이지 않는 강직한 사람.’ 아버지의 동료들은 희원씨에게 아버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방씨가 택시노조에 가입할 때부터 함께 투쟁해 온 이삼형 택시노조 정책위원장은 “방씨는 ‘택시노동자들은 어떻게 시키면 시키는 대로 다 하냐’고 했었다”며 “대법원 판결을 받으려고 했던 것도 본인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도움 되는 것이니까 다른 사람들이 합의하고 떠날 때도 남아있던 것”이라고 했다.
아버지가 지인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음성에도 울분이 가득 차있었다고 했다. 고인이 동료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이렇게라도 해 해성운수를 처벌받게 해야겠다, 불법적 행동과 억울함을 꼭 알려야겠다’는 것이었다. 희원씨는 아버지의 분노가 담긴 음성을 듣는 동안 마음이 무거웠다고 했다. “혼자 싸우다보니 지치셨던 것 아닐까요. 정말 이 세상 전부가 아버지에게 무관심했던 거예요.” 방씨는 생전 서울시와 고용노동청 앞을 찾아 사측을 조사할 것을 요구했었지만 귀담아듣는 이는 없었다.
희원씨는 아직 안치실에 있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분신 후 3주가 지났지만 아버지가 바라던 회사의 사과나 법을 어긴 근로계약에 대한 처벌 소식은 요원하다. 희원씨는 사측의 진심 어린 사과와 서울시 및 노동청 등 관리당국의 조사가 있을 때까지 장례를 미루기로 했다. 하지만 사측은 유족에게 연락조차 취하고 있지 않고, 사과를 요구하는 노조와의 교섭도 하루 이틀씩 미뤄지고 있다. 희원씨는 “서울시와 노동청이 사측의 불법행위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면 사측과의 문제도 금방 해결될 것 같은데 대체 왜 그 누구도 조사를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유족이 된 지도 어느새 열흘이 넘었다. 기자회견, 집회, 추모제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는 희원씨는 아버지의 마음을 감히 짐작하게 됐다고 했다. “저도 해성운수의 무관심을 열흘째 느끼고 있잖아요. 사과 한마디 없이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상식 밖의 행동에 저도 이렇게 화가 나는데, 7개월 동안 이 기분을 느낀 아빠는 얼마나 답답했을까 싶어요.”
직장에서 야간근무를 하는 희원씨는 매일 자정쯤 퇴근해 서울 영등포구 한강성심병원 앞에 차려진 분향소에 들렀다 새벽이 돼서야 경기 의정부 집에 도착한다고 했다.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어요. 뭐라도 하나 이뤄져야 떳떳하게 장례를 치를 수 있잖아요. 제가 살면서 어버이날 카네이션 한번 달아드린 적 없는데, 이거라도 해드려야 아빠 한이 풀리지 않을까요.”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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