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 보스톤', 이토록 배은망덕한 역사 왜곡이라니 [ST포커스]

윤혜영 기자 2023. 10. 18. 17:01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영화 '1947 보스톤'이 실화의 감동을 지우는 역사 왜곡 논란으로 치명적인 오점을 남겼다.

'1947 보스톤'(감독 강제규)은 마라토너 서윤복의 1947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 우승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영화다.

당해 보스턴 마라톤 대회는 한미 양국간에 우호적인 분위기로 진행됐다는 전언이다.

그렇게 역사적인 사실만으로도 영화적인 이야기를 왜 이런 방식으로 왜곡해 담아냈는지 의문이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진=1947 보스톤 포스터

[스포츠투데이 윤혜영 기자] 영화 '1947 보스톤'이 실화의 감동을 지우는 역사 왜곡 논란으로 치명적인 오점을 남겼다.

'1947 보스톤'(감독 강제규)은 마라토너 서윤복의 1947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 우승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영화다.

작품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손기정이 시상대에서 일장기를 손으로 가린 까닭에 육상에서 강제 은퇴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어 손기정, 남승룡, 서윤복이 어떻게 1947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참가할 수 있었는지, 서윤복이 어떤 역경을 딛고 우승을 차지했는지에 대한 과정을 그린다.

실제 영화 시작 즈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는 자막이 오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실제와 다른 역사 왜곡 탓에 이야기가 주는 감동이 크게 반감돼 버린다.

먼저 영화에서는 한국 선수들이 미 군정청의 반대로 미국행이 좌절될 뻔한 위기를 맞는다. 당시 난민국이었던 한국이 해당 대회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거액의 재정 보증금이 필요했는데, 미 군정 사령관이었던 하지 장군이 재정 지원을 거부해 한국인들이 자발적인 기부로 보증금을 마련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실제 보증금을 구해준 이들은 오히려 하지 장군을 비롯한 미 군정청의 미국인들이었다. 영화에도 조력자로 등장하는 미 군정청 체육담당관 스미들리 여사는 사비 600달러를 내놓으며 기부금 출연을 독려했고, 하지 장군은 지속적으로 본국에 원조를 요청하는가 하면 선수들의 안정적인 지원을 위해 중앙한국복지기금을 도입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큰 도움을 준 주체를 영화에서는 반대로 방해를 일삼은 훼방꾼으로 묘사한 셈이다.

여기에 한국 선수단과 보스턴 마라톤협회 측의 유니폼 성조기 부착 갈등 역시 역사엔 없는 내용이다. 극중에서는 미국 측이 성조기만 그려진 유니폼을 전달해, 앞서 일본제국이 손기정에게 한 만행을 떠올리게 만들며 분노를 자아내게끔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무 갈등이 없었다. 서윤복은 대회에서 태극기와 성조기가 동시에 부착된 유니폼을 착용했으며, 시상식에서는 태극기만 있는 유니폼을 착용했다. 당해 보스턴 마라톤 대회는 한미 양국간에 우호적인 분위기로 진행됐다는 전언이다.

물론 영화이기에 각색하는 과정에서 극적인 장치가 가미될 수는 있다. 하지만 '1947 보스톤'의 경우, 도움을 준 은인을 악인으로 만들어버리는 배은망덕한 왜곡으로 비난을 자초했다. 각색의 수준을 넘어선 악의적인 왜곡이란 해석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더군다나 '1947 보스톤'은 실화 바탕의 역사물이다. 많은 관객들이 왜곡된 이야기를 실제 역사로 그대로 받아들일 여지가 있다. '1947 보스톤' 역시 실제와 정반대되는 묘사로 인해 실존 인물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에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라면 더더욱 실제 역사가 곡해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강제규 감독 역시 인터뷰를 통해 "시나리오를 보고 지나칠 정도로 영화적이었다. 원형을 잘 가져가자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했다" "역사적 사실은 그대로 가져가되 감정을 첨삭하지도 너무 절제시키지도 않았다"고 했다. 그렇게 역사적인 사실만으로도 영화적인 이야기를 왜 이런 방식으로 왜곡해 담아냈는지 의문이다.

짐작컨대 절대적인 악을 설정함으로써 관객의 애국심을 자극하고 극적인 재미를 높이기 위함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를 위해 누군가의 진실을 뭉갤 수 있느냐에 대해선 쉬이 동의하기 어렵다. 실화가 지닌 감동을 무너뜨린 도를 넘은 왜곡은 짙은 아쉬움을 남기고 말았다.

[스포츠투데이 윤혜영 기자 ent@stoo.com]

Copyright © 스포츠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