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파업' 으름장에 "대가는 면허 취소"…의사 출신 변호사 경고, 왜?
2020년 의대 정원 정책, 文 정부와 대화하며 합의키로 약속
올해 5월 19일 의료법 개정 시행…파업→ 면허 취소 가능성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안을 조만간 발표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가 정부를 향해 '9·4 의정 합의'를 정부가 지키지 않으면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총력 투쟁'할 것임을 선언했다. 파업(진료 거부)을 암시한 것으로 해석되는 가운데, 의사가 파업을 주도하며 환자에게 불이익을 줄 경우 면허가 취소될 수 있다는 변호사의 경고가 나와 주목된다.
의협은 전날(17일) 오후 긴급 의료계 대표자 회의를 열고 '결의문'을 채택했다. 해당 결의문은 "정부는 의대 정원 정책을 일방적으로 강행하지 않겠다는 '2020년의 약속'(9·4 의정 합의)을 반드시 지키라는 것"이 골자다.
9·4 의정 합의란, 2020년 9월 4일 당시 문재인 정부 시절의 복지부가 대한의사협회와 △의대 정원 문제는 코로나19가 안정화한 이후 '의정 협의체'에서 논의할 것 △정부도 의대 정원 정책을 일방적으로 추진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담은 약속이다. 의협은 "이러한 의료계의 신뢰와 노력을 기만하고 정부에서 의료계와의 충분한 논의와 합의 없이 의대 정원 정책을 독단적으로 결정한다면 이는 지난 9·4 의정 합의를 명백히 파기하는 것이고, 정부에 대한 의료계의 신뢰를 무참히 짓밟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런데 그사이 대통령이 바뀌면서 정권도 바뀐 상태. 정부가 당시 합의한 내용을 파기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과연 9·4 의정 합의에 대해 현재의 윤석열 정부는 얼마큼의 이행 책임이 뒤따를까?
충북대 의대 의료정보관리학과 이영성 교수는 "정부와의 약속은 정권이 바뀌었다고 사라지는 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공무원은 정치적 견해를 배제한 채 근무하는 게 원칙"이라며 "그걸 전제로 공무원에 대해 신분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정권이 바뀌면서 정부 구성원이 바뀔 수는 있어도 약속을 완전히 뒤집는 건 아니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반면 의사 출신으로 과거 고(故) 신해철 씨를 변호한 박호균(법무법인 히포크라테스 대표) 변호사는 "9·4 의정 합의서가 반드시 지켜야 할 법적 효력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못 박았다. 그는 '9·19 군사 분야 합의서'를 예로 들었다. 9·19 군사 분야 합의서는 2018년 9월 19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정상회담을 통해 채택한 '9월 평양공동선언'의 부속 합의서로, 한반도를 항구적인 평화지대로 만들기 위한 실천적 조치를 적극적으로 취해나가기로 약속한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올해 초 북한 무인기의 서울 상공 침투를 계기로 9·19 군사 합의의 효력 정지 검토를 지시하면서 폐기론까지 거론된다.
박 변호사는 "9·19 군사 분야 합의서도 무효화가 거론되는 상황에서 이전 정부와 합의한 내용을 들이밀며 '들어주지 않으면 총력 투쟁하겠다'고 주장하는 건 특정 이익 단체가 떼쓰는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또 국가의 정책을 정부가 특정 이익단체와 대화해 확정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그는 강조했다. 박 변호사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지, 의협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며 "정책은 국민이 결정해야 하며, 국회의원과 정부가 국민을 대신해 진행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만약 현 정부가 9·4 의정 합의서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할 때 의협은 총파업까지 강행할 것을 암시했다. 17일 이필수 의협회장은 "14만 의사와 2만 의과대학생들은 정해진 로드맵에 따라 모든 수단을 동원한 강력한 투쟁에 들어갈 수 있음을 천명하며, 2020년 파업 때보다 더 큰 불행한 사태가 나올 수 있음을 강력히 경고한다"고 언급했다. 2020년 8~9월 당시 의협은 진료 거부 등 총파업을 강행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박 변호사는 "진료 거부는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한 패륜적 카드"라며 날을 세워 비판했다. 그는 "전쟁터에 적군이 쳐들어왔는데 우리 국군이 '월급 올려주지 않으면 국민이 죽어도 내팽개치고 놀러 가겠다는 것과 다름없는 행태"라며 "그동안엔 이런 방식이 통하니까 불법적 행동(총파업)을 일삼아왔을 수는 있으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이는 올해 5월 19일 공포 후 즉시 시행된 의료법 개정안 때문에다. 이른바 '의료인 면허 취소법'으로 불린 의료법 개정안에 따르면 의사가 불법 파업으로 업무 방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위반 등으로 환자가 치명적인 피해를 보고, 금고 이상의 형이 나오면 의사 면허가 취소될 수 있다.
박 변호사는 "불과 올 초 간호법 투쟁 때까지만 해도 총파업 같은 불법적 행동을 저지를 수 있던 건 의사 면허가 취소될 법적 근거가 없었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개정안 시행 후 업무 방해, 집시법 위반 시 연루자들의 의사 면허가 박탈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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