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틀리에산책] '단상 고양이'가 전하는 오늘의 행복 - 한해숙 작가
YTN 뉴스퀘어1층 아트스퀘어에서 한해숙 작가의 초대전이 진행되고 있다.
푸른 눈동자를 지닌 하얀 고양이, 작가는 '단상 고양이'를 통해 일상에서 반짝이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단상 고양이는 때로는 여성의 모습이기도 하고, 때로는 남성, 아이나 노인의 모습으로 등장해 우리네 삶과 함께한다.
'붉은 책'을 손에 든 단상 고양이는 타인과 소통하고, 연결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꺼내 들고 깊이 보아야 책 속의 참뜻을 알 수 있는 것처럼,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도 이와 같다는 게 작가의 생각이다.
작가는 우리가 가진 무수히 많은 교차점에서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작가가 발견한 일상의 소중한 순간들을 마주하다 보면, 저절로 미소가 흐를 것이다. 전시는 31일까지다.
우리 중 누구 하나, 같은 삶은 없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무수히 많은 교차점을 갖고 있다.
그 교차점에서 단상 고양이의 이야기가 생겨난다. 단상 고양이 작품을 통해 대중과의 공감이 생겨나고, 그러한 공감은 결국 삶에 대한, 작품에 대한 진정성으로 연결된다.
YTN 아트스퀘어 한해숙 초대전 (10.1 ~ 10.31)
한해숙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이 궁금하다면 에코락 갤러리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음은 한해숙 작가와의 일문일답
'단상 고양이'를 매개로 다양한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단상 고양이를 통해 소통하며 일상을 회복하고 삶을 환기하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Q. '단상 고양이'를 그릴 때 어떤 특징을 강조하나요?
'단상 고양이'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관객에게 전달할 매개체를 고민하다 만든 캐릭터입니다.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도록 특정 나이나 성별에 국한되지 않고, 개성 있으면서도 작가의 정체성을 담고 있어요.
고양이의 하얀 몸과 푸른 눈이 특징인데요. 캔버스나 하얀 종이처럼 어떤 이야기도 담아낼 수 있도록 하얀색을 몸 색깔로, 제 이름의 뜻을 가진 (바다 해(海)에 맑을 숙(淑)으로 '맑은 바다'라는 뜻) 바다처럼 푸른 눈동자를 가진 의인화된 고양이의 모습이에요. 단상 고양이는 말 그대로 '삶의 단상을 전달하는 고양이'라는 캐릭터의 정체성을 살려 '단상'이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단상 고양이는 크게 세 가지 카테고리로 되어 있어요. 첫 번째가 일상의 회복, 두 번째가 붉은 책 시리즈, 세 번째가 한국의 전통문화예요.
먼저 '일상의 회복'을 얘기해요. 제가 곧 나이 오십을 바라보는데요. 누구나 이삼십 대 때만 해도 성과를 위해서 대단히 노력하고, 열심히 살잖아요. 그러다 나이가 들면서 부모님이 아프시다거나 삶이 갑자기 확 무거워지는 시기도 겪게 되는 것 같아요. 저 또한 계획하지 않았던, 예상하지 못한 일들을 겪으면서 다시 삶을 돌아보며, 삶에서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묻게 됐어요.
돌이켜보면 무언가 큰 성과를 얻었다고 해도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고, 성과를 내기 위해서 달려왔던 고단함이 오히려 더 컸던 것 같아요. 극단적이긴 하지만 과연 죽기 전에 떠오를 순간들이 뭐 대단한 성공은 아닐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내가 정말 중요하게 생각해야 되는 건 오늘 하루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늘 하루하루가 쌓여서 내 삶이 되는 거잖아요. '일상의 회복'을 주제로 하루하루의 반짝거리는 메시지나 추억을 담고 있어요.
세 번째는 전통문화인데요. 동양화 재료를 좋아해요. 장지에 한국화 물감을 써봤는데 재료가 주는 느낌이 너무 따뜻한 거죠. 한국화 재료를 사용할 때 한국 문화를 다루는 것이 아무래도 제가 전달하고 싶은 느낌이 가장 잘 전달될 것 같아서, 한옥 문 시리즈를 주로 그리고 있어요.
가장 최근에 그린 <노란 이불>이라는 작품인데요. 박완서 선생님이 하신 말씀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부모는 이불과 같은 존재다"라는 말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이불을 몸에 두르고 밖으로 나가 생활할 수는 없듯, 자식이 품을 벗어나 홀로 세상 속으로 들어가살다 집으로 돌아오면, 지친 몸을 누일 수 있고 쉴 수 있는 이불 같은 존재가 부모인 것 같아요. 부모는 자식과 밀착해 한 몸처럼 사는 게 아니라 믿어주고 기다리다, 돌아온 아이를 따뜻하게 품어줄 수 있죠. 이불의 온기 속에서 편안히 쉬고 회복한 뒤 다시 일어나 세상으로 나아가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게 부모가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의 시그니처 문양인 '사랑 꽃'으로 가득한 노란 이불 속에서 곤히 잠든 단상 고양이들을 그리며 부모로서 내가 해야 할 일에 관해, 푹 쉬고 회복해 다시 살아갈 아이를 향한 부모의 사랑과 응원하는 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전작의 '검은 여자 시리즈'는 흑백의 그림으로, 감정을 강하게 표출했던 작품이죠. 그때는 좀 강박적으로 슬픔은 슬픔으로만, 기쁨은 기쁨으로만 말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아니면 가식이거나 거짓인 것 같았죠.
아이가 태어나면서 제 작품의 색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아이를 키우면서 이 세상은 대체 뭘까? 이 세계가 너무 어려운 거예요. '이건 이래야 돼', '저건 저래야 돼', '진실은 이거야.' 라는 원칙과 신념이 강했던 저로서는, 제가 바라보던 세상을 보여주면 아이에게 흑백밖에 보여줄 게 없더라고요. 그런데 아이의 천진난만한 얼굴, 아이의 찬란한 모습을 보면서 '이럴 수도 있구나', '저럴 수도 있구나'... 점점 생각이 유연해지고 다른 세계가 열리는 것 같았어요. 제가 보던 세상이 무채색에서 완전히 화려한 색채가 열린 느낌이랄까요.
슬프다고 굳이 울고 짜고 할 필요 없잖아요. 오히려 슬픔을 웃으면서 얘기하는 게 오히려 더 슬플 수 있다는 걸 안거죠. 아이가 제게 준 영향이 컸고, 아이한테 보여주고 싶은 새로운 것들이 생기더라고요.
맞아요. '사악한 것은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말라'라는 '삼불원(三不願)'의 의미를 차용했어요. 불경에 있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사실 성경에도 있고 신화에도 있는 말이에요.
젊었을 때는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말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고 이해가 안 됐지만 어느덧 그 의미를 알겠더라고요. 가려 듣고, 하지 말아야 될 얘기도 있는 거죠. '기적'을 뜻하는 파란색 장미로 배경을 가득 채운 것은 보지 않고, 듣지 않고, 말하지 않고 견뎌내는 과정들이 삶에서 어쩌면 기적 같은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 작품을 그리게 됐어요.
각자의 삶은 모두 다르지만 우리는 삶 속에서 무수한 교차점을 가지고 있죠. 그 교차점이 작품으로 그려져 공감과 소통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삶은 거대해 보이지만 결국 하루하루가 하나씩 쌓여 만들어지는 거죠. 소소한 일상의 하루, 반짝거리는 추억, 작은 이야기가 살아나야 삶도 의미를 가진다고 믿거든요. 대단하고 거대한 성과만을 쫓아 일상의 소중함을 잃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작은 일상의 이야기가, 그 소중한 가치가 그림을 통해 전달되면 좋겠어요.
Q. 앞으로의 꿈이 궁금한데요.
이 일을 사랑하는 만큼, 오래오래 단상 고양이와 함께 삶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어요. 때때로 지치고 허무가 파도처럼 밀려오고 삶이 계획대로 가지 않기도 하겠지만, 그럼에도 붓을 손에서 놓지 않고, 중심을 잃지 않고 그림으로 풀어내 극복하는 작가가 되면 좋겠어요. '계속할 수 있는 힘'을 얻으려면 삶도 잘 살아야겠죠. 삶의 단계마다 경험하는 것이 다른 만큼 작품으로 다루는 이야기도 달라질 텐데 그게 개인적으로는 무척 기대가 돼요. 긴 세월 단상 고양이를 통해 삶을 이야기하는 깊은 눈을 가진 노년의 여성 작가 모습을 가끔 상상해 보곤 해요. 거기까지 다다를 수 있다면 좋겠어요.
YTN 커뮤니케이션팀 김양혜 (kimyh1218@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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