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이 미래다] 〈104〉국가기간전산망 조정위원회 구성

2023. 10. 18.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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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 미국 MS 회장이 1997년 6월 17일 전자신문이 주최한 'SEK 97' 개막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빌 게이츠 회장은 한국 국가기간전산망 사업 참여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내한한 바 있다. 전자신문 DB

1984년 6월 25일. 전두환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집무실에서 국가기간전산망 계획 중간보고를 받았다.

이날 보고는 지난 1983년 9월 국가기간전산망 계획(기본구상)과 그해 12월 국가기간전산망 계획(안)에 이어 세 번째였다.

이 자리에는 강경식 대통령 비서실장, 사공일 경제수석, 홍성원 과학기술비서관이 참석했다. 보고는 그동안 국가기간전산망 사업 실무를 담당한 홍성원 비서관이 했다.

이날 홍성원 비서관은 정보산업육성위원회를 국가기간전산망 조정위원회로 개편, 운영하겠다고 보고했다. 이는 그해 2월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출범한 기술진흥심의회가 그동안 정보산업육성위원회에서 맡고 있던 정보산업 육성과 첨단기술 개발 촉진 등 업무를 담당함에 따른 조치였다.

청와대는 이에 따라 정보산업육성위원회 대신 국가기간전산망 사업 행정 지원과 조정 업무를 담당하는 대통령 비서실 소속 국가기간전산망 조정위원회를 구성했다.

위원장직은 강경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맡았다. 위원은 각 부처 차관과 업무별 행정혁신추진단장, 청와대 정부 2수석과 경제수석, 교육문화 수석, 기술진흥심의회 정보산업위원장 등으로 구성했다. 간사직은 경제비서실 과학기술비서관과 정무비서실 제도개선비서관이 맡기로 했다. 제도개선비서관실은 지원 역할을 했다. 조정위원회 지원을 위해 필요한 경우 국장급 실무위원회를 구성, 운영키로 했다.

이날 청와대는 공공기관 컴퓨터 도입 승인 절차도 조정했다. 그동안 정보산업육성위원회가 맡고 있던 컴퓨터 본체와 컴퓨터 주변기기 도입 업무를 기술진흥심의회가 담당토록 했다. 처리창구는 종전과 마찬가지로 청와대 과학기술비서관으로 정했다.

또 행정 전산화 촉진을 위한 시범사업으로 △청와대 비서실 행정 전산화 사업 △읍·면·동 행정 전산화 연구사업 △민간업체 국산 소형컴퓨터 개발 사업을 중점 추진키로 했다.

청와대 비서실의 경우 각 부처에 대한 업무 파급효과가 큰 만큼 워드 프로세서를 보급하고 비서실 보고 문서를 종합 관리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키로 했다. 예나 지금이나 청와대가 시행하면 정부 부처들은 이를 따를 수밖에 없다.

행정망과 금융망은 관련 기관이 많아서 청와대가 직접 조정 지원하며, 나머지 교육 연구망과 국방망·공안망은 관련 기관이 자체 추진토록 했다. 다만 문제가 발생하면 청와대가 나서서 조정키로 했다.

행정 전산화 목표는 부처별 소관 업무 자료 처리나 집계라는 단순 업무가 아니라 국가행정 전산화로 행정혁신을 촉진하는 데 두기로 했다. 컴퓨터를 행정업무에 활용해 행정을 효율화하고, 나아가 국가행정 생산성 향상에 기여토록 한다는 방침이었다.

전두환 대통령이 1985년 5월 24일 재가한 국가기간전산망 중간보고와 행정전산망 추진계획(안).

그해 12월 어느 날. 전두환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집무실에서 국가기간전산망 조정위원회로부터 행정 전산망 사업 추진계획을 보고 받았다.

위원회는 이 자리에서 1985년부터 1988년까지 추진할 42개 사업 행정 전산화에 총 5495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라고 보고했다. 위원회는 42개 사업 가운데 주민관리 사업, 부동산관리 사업, 고용관리 사업, 통관관리 사업, 경제통계 사업, 자동차 관리 사업 등 6개 사업을 먼저 추진키로 했다.

정부는 이를 위해 국내 소프트웨어(SW) 업체에서 업무별 실용 프로그램을 분담해 개발하고 국내 컴퓨터 업체와 정부가 사용할 컴퓨터 본체, 주변기기, 통신기기 등을 공동 개발키로 했다.

이 사업 총괄조정 업무는 국가기간전산망 조정위원회가 담당키로 했다.

위원회는 또 국가표준화 사업과 행정망 감리평가 사업은 과학기술처 국책과제 사업으로 추진하고, 사업별 책임자와 전문기관도 지정했다.

주민관리 사업과 부동산관리 사업은 내부무 차관, 고용관리 사업은 노동부 차관, 통관관리 사업은 관세청장, 경제통계관리 사업은 경제기획원 차관, 자동차 관리사업은 교통부 차관을 책임자로 각각 지정했다.

전산 전문기관으로 한국데이터통신을 지정하고, 국가표준심의는 과학기술진흥심의회가 담당키로 했다.

전두환 대통령의 회고. “1985년 1월부터 사무자동화 시범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는데 나에게 보고하는 문서를 국산 워드 프로세서로 작성하는 문제를 놓고 비서실 내에서 찬반 의견이 갈렸다. 나는 그 얘기를 듣고 청와대가 사무자동화를 솔선수범하는 뜻에서 워드 프로세서를 사용하도록 지시했다. 그후 나에게 보고하는 모든 문서는 워드 프로세서로 작성해 올라왔다. 1987년 7월에는 제1회 국가전산화확대회의를 내가 직접 주관했다. 국가기간전산망 사업은 우리나라가 그 어떤 선진국보다도 인터넷을 빨리 수용하고 소화할 수 있게 해 준 계기가 됐다. 우리나라가 국가기간전산망 사업에서 앞서 나가자 다른 나라에서도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1984년에는 빌 게이츠가 나를 만나러 왔었고 1985년에는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로스 페로가 방한해 국가기간전산망 사업을 살펴보고 갔다. 국가기간전산망 구축은 우리나라를 IT 강국으로 우뚝 서게 한 기념비적인 일이었다.”(전두환 회고록2)

청와대 홍성원 과학기술비서관은 1983년부터 국산 교육용 컴퓨터 개발과 함께 한국 워드 프로세서 이용 확산을 위해 청와대 내 워드 프로세서 사용을 적극 추진했다. 전두환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문서도 워드 프로세서로 작성했다. 이 일은 전 대통령의 결재를 받아 추진했다.

그러나 이를 놓고 청와대 내 수석실에서 대통령 결재 서류를 읽기 불편한 워드 프로세서로 작성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반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홍 비서관은 1~2년 동안 수많은 시행 착오와 보완 작업을 거쳐 1985년부터는 워드 프로세서를 사용할 수 있도록 성능을 개선했다. 이런 노력으로 1985년 1월부터는 대통령 결재 문서와 청와대 내부 문서 등을 100% 한국 워드 프로세스로 작성했다.

워드 프로세스 사용 전까지 국내 정부기관이나 기업체 등이 사용한 보고 수단은 차트였다. 당시 정부 부처에는 차트와 보고서 작업만 하는 필경사가 있었다. 한국 워드 프로세서의 발전으로 일자리를 잃게 된 필경사들을 위해 정부는 이후 국영기업체 등에 이들의 취업을 알선했다.

청와대 당시 정홍식 경제비서실 행정관(전 정보통신부 차관) 회고. “국가기간전산망 사업은 세계적인 의미를 갖는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 발전에서 정보화가 갖는 의미를 이렇게 적극적으로 수용해 국가 차원에서 거대 프로젝트로 진행한 사례는 그 이전에는 세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런 점에서 사실 국가기간전산망 사업은 외국정부와 해외 정보산업계에서도 관심 대상이었다. 빌 게이츠나 로스 페로 등 미국 정보산업계 거물들이 국가기간전산망 사업에 관심을 갖고 참여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내한했던 일은 그런 점을 잘 보여 주는 사례들이다.”(한국 IT정책 20년)

1985년 5월 24일. 전두환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집무실에서 국가기간전산망 조정위원회로부터 국가기간전산망 중간보고를 받고 행정 전산망 추진계획(안)을 재가했다.

국가기간전산망 조정위원회가 보고한 주요 전산망 추진계획은 아래와 같다.

△교육 연구망은 과학기술처와 문교부가 공동 추진하며,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부설 시스템공학센터(현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가 전담해 종합계획을 1985년 말까지 확정한다. 체신부의 전국 우체국 전산화 사업은 주민 생활 편익을 위한 시범사업으로 추진한다. 금융망은 한국은행 총재가 위원장인 금융전산위원회를 발족시켜서 운영하고 위원은 각 은행장들이 맡는다.

△행정 전산망 사업 추진 목표는 작고 효율적인 정부 구현과 전국 어디서나 신속한 정보전달로 주민 편익을 증진하는 데 둔다. 전산실 이용을 일반 공무원까지 확대하고, 외국 도입 제품을 국내 개발품으로 대체하며, SW도 민간 용역 개발로 전환한다.

△행정 전산망 사업의 효율적인 추진을 위해 전산화와 관련한 정부 계획은 행정 전산망 계획과 일치하도록 조정한다. 행정망 사업은 당분간 국가기간전산망 조정위원회에서 종합조정, 통제한다.

△행정망 종합설계는 1985년 말까지 끝내고 1986년 중 일선에 단말기를 보급하며, 1987년 말까지 SW 개발과 국산 컴퓨터 생산을 완료해 1988년 초부터 행정 전산망을 운용한다.

이 같은 전산망 구축 사업은 'IT강국 코리아'의 초석을 놓는 일이었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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