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상관 없이 환자 돌본 140년 역사의 병원이 무너졌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내에서 종교와 상관 없이 환자를 돌봐온 140년 역사의 병원이 무너졌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무력 충돌이 11일째를 맞은 17일(현지시간) 가자시티에 위치한 알아흘리 아랍 병원이 피폭돼 5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국제사회가 충격에 빠졌다.
1882년 영국 성공회 의료 선교사들에 의해 설립된 알아흘리 병원은 성공회 예루살렘 교구에서 운영하고 있다. 병원 운영의 주체는 기독교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대부분이 무슬림인 가자지구 주민들에게 종교와 상관없이 의료를 제공해왔다.
교구 홈페이지는 알아흘리 병원을 “세계에서 가장 갈등이 깊은 지역의 중심에 있는 평화의 안식처”라고 소개하면서 “가자의 열악한 환경은 특히 두드러지지만 알아흘리 병원은 모든 이에게 평화와 희망의 등불”이라고 적었다.
알아흘리 병원은 지난 7일 하마스의 기습 공격 이후 가자지구 전역을 향한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습이 이어지자, 부상을 입은 환자들을 치료할뿐 아니라 집을 잃은 가자지구 주민들의 피난처 역할까지 해왔다.
이스라엘군은 지난주 가자 북부에 사는 주민들 110만명에게 남쪽으로 이주하라는 대피령을 내렸는데, 이 병원 역시 대피 명령을 받은 가자지구 북부 지역 내 병원 20곳 중 하나였다. 그러나 위중한 상태에 처한 환자들을 포기할 수 없다며 병원 폐쇄 명령을 거부하고 공포에 질린 주민들을 보듬었다.
숱한 무력 충돌의 위험과 재정적 어려움 속에서도 140년 동안 한결같이 자리를 지켜왔던 이 병원은 결국 17일 일어난 폭발로 참혹히 무너져 내렸다.
교구는 이날 성명을 내고 “국제적 비난과 응징을 받아 마땅하다”며 “헌신적인 직원들과 연약한 환자들에 대한 극악무도한 공격에 애도하며 연대해주기를 간청한다”고 밝혔다.
국제사회도 한목소리로 이번 사건을 규탄하는 목소리를 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18일 긴급회의를 소집해 가자지구 병원 참사를 논의할 예정으로 전해졌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러시아와 아랍에미리트가 가자 병원 공습과 관련해 이번 긴급회의 소집을 요청했다. 다만 이스라엘과 가자지구 내 무장정파 사이에서 서로 책임 공방이 벌어지고 있어 안보리 내에서도 이견이 클 전망이다.
유엔도 이번 참사와 관련해 강력히 규탄하는 입장을 표명했지만, 규탄 대상은 특정하지 않았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팔레스타인 민간인 수백명의 죽음이 경악스럽다. 희생자 가족들에게 애도를 표한다”고 밝힌 후 즉각적인 인도주의적 휴전을 촉구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이날 성명을 통해 “병원에 대한 공격을 강력하게 규탄한다”면서 이스라엘군이 대피령을 취소하고 민간인과 의료 시설에 대한 즉각적이고 적극적인 보호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중동 국가들은 이번 사건을 두고 “야만적인 공격”이자 “전쟁 범죄”라며 강력히 규탄했고, 미국과 유럽 등 서방 국가들도 일제히 규탄의 목소리를 냈다. 샤를 미셸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가자지구의 민간인 시설을 공격 표적으로 삼는 것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최서은 기자 ciel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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