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간 치열한 공방…'이웃간 다툼' 국민참여재판 가보니[르포]

김지은 기자 2023. 10. 18.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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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남부지법 국민참여재판 법정 모습. /사진=김지은 기자


"국민참여재판 배심원 오신 분들 대기해주세요."

지난 17일 오전 9시40분쯤 서울남부지법 406호 대법정 앞에는 1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지난달 국민참여재판 배심원 후보로 선정됐다는 법원 등기물을 받고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43번, 50번, 67번, 98번, 125번 등 각기 다른 번호가 적힌 숫자표를 목에 걸고 대기했다.

국민참여재판은 일반 국민이 형사재판에 배심원으로 참여하는 제도를 말한다. 형사합의부 관할에 속하는 사건 중 피고인이 국민참여재판을 원하면 진행할 수 있다. 다만 성폭력범죄 피해자가 이를 거부하면 진행되지 않는다. 배심원은 해당 법원 관내의 20세 이상 대한민국 국민 중 추첨과 공정성 평가 등을 통해 무작위로 정해진다. 이날도 20대 직장인부터 40대 자영업자까지 다양한 배심원 후보자들이 찾아왔다.

배심원 자격으로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숫자가 호명되면 법정 안에 들어가 검사와 변호인 질문을 받았다. "피고인이 전과가 있으면 판단에 영향을 미칠 것 같나" "범죄자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할 때 어떤 생각이 드나" "수사 기관에 고소를 하거나 고소를 당해본 적이 있나" 등 여러 질문이 오갔다. 검사와 변호인은 후보자들의 답변을 듣고 이들을 최종 배심원으로 선택할지 결정했다.

일부 배심원들이 대답을 못하고 주저하자 재판장은 "저도 20년째 재판하지만 아직도 떨린다"며 "자기 의견을 잘 표현하는지, 상대방 의견을 이해할 수 있는지 보는 거니까 편히 대답해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1시간쯤 이어진 심사 끝에 최종 선정된 배심원 8명은 법정 왼쪽 의자에 앉아 선서를 했다. 재판장은 "평의 단계 전까지는 객관적 판단을 위해 옆 동료와 상의해선 안된다"고 안내했다.


재판 순서는 △모두절차(검사, 피고인, 변호인 모두진술) △증거조사 절차(증거서류 등 증거조사, 증인신문) △피고인 신문 △종결절차(검사 최종의견 진술, 변호인 피고인 최종의견 진술, 재판장 설명) △평의와 평결(유무죄 평결, 양형토의) △판결 선고 순으로 이뤄졌다.

모두절차에서 검사는 프레젠테이션을 띄우고 공소사실 요지를 언급했다. 이 사건은 30대 피고인 박모씨가 신청한 사건으로 특수상해, 모욕죄 혐의를 다투는 재판이었다.

검찰에 따르면 지난해 9월17일 오후 6시25분쯤 서울 영등포구의 한 아파트에서 피고인 박씨가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하던 중 이웃집 남성인 50대 공모씨가 박씨를 불러세웠다. 오토바이 통행 금지구역이니 다른 곳으로 우회해달라고 말하자 박씨는 공씨에게 욕설을 하기 시작했다. 공씨가 112 신고를 하려고 하자 박씨는 오토바이를 그대로 운전해 피해자 공씨 왼쪽 무릎을 충격하고 전치 2주의 상해를 입혔다. 박씨는 공씨가 바닥에 쓰러져 있을 때도 큰 소리로 욕설하며 모욕했다.


증거조사 절차와 피고인 신문에서는 치열한 공방이 이어졌다. 특수상해 혐의를 입증하려면 미필적 고의가 있는지 증명해야 했다. 피고인이 피해자가 오토바이에 치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오토바이를 운전했는지 입증해야 한다는 뜻이다.

모욕죄의 경우 공연히 모욕감을 줄만한 언행이나 분위기 등이 있었는지가 핵심 쟁점이었다. 검사와 변호인은 피고인이 오토바이로 피해자를 다치게 한 사실이 있는지, 상해에 고의성이 있었는지, 욕설한 사실이 있는지 등을 논쟁을 이어갔다. 배심원들은 검사와 변호인 이야기를 듣고 메모를 하거나 직접 궁금한 점을 질문하기도 했다. 장시간 이어지는 재판에 지친 기색도 보였지만 생수를 들이키며 집중도를 높였다.

검사와 변호인은 증거자료로 CCTV(폐쇄회로TV) 영상, 상처 사진, 사설 교통 기관 분석 자료 등을 제출했다. 검사는 "오토바이 앞에 사람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오토바이를 주행한 건 미필적 고의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CCTV를 보면 우측으로 먼저 출발하려는 피고인을 피해자가 뒤늦게 따라온다"며 "전문가에 따르면 피고인은 0.3초 만에 브레이크도 밟았기 때문에 고의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검찰은 모욕죄와 관련해 당시 녹취록과 목격자 진술 등을 증거로 제출했다. 이에 변호인은 "서로 언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반말과 빈정거리는 말이 오고갔지만 특별히 모욕죄라고 할 만한 욕설은 없었다"며 "이는 괘씸죄에 해당하지 모욕죄엔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종결 절차에서는 검찰은 피고인에 대해 징역 1년4개월을 구형했다.

오후 6시40분쯤 재판을 마치고 배심원들은 평의실에 모여 피고인의 유무죄를 판단했다. 45분 간의 토론 끝에 재판부는 배심원들 의견에 따라 판결을 선고했다. 재판이 시작한지 10시간 만의 결론이었다. 재판장은 "특수상해 부분은 무죄, 모욕죄는 유죄가 나왔다"며 "특수상해는 미필적 고의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모욕죄는 전원일치로 유죄 판결했고 벌금액은 150만원으로 산정했다"고 말했다.

배심원들은 이번 국민참여재판에 만족감을 보였다. 20대 직장인 조모씨는 "법원에서 등기가 왔다고 했을 때 놀랐는데 막상 와서 해보니까 너무 유익한 시간이었다"며 "재판 내내 개인적인 생각이나 감정은 제외하려고 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의견을 내고 판결을 할 수 있다는게 의미있었다"고 말했다.

40대 직장인 정씨 역시 "평의 과정에서 불일치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토론하는 과정에서 결국 만장일치 의견을 도출했다"며 "법률 상식이 부족한 상황에서 한 사람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다는게 부담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재판장님이 상세하게 설명해주셔서 어려움 없이 참여했다"고 말했다.

김지은 기자 running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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