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그곳에선 끔찍한 냄새가"...'악인취재기'가 폭로를 감행한 이유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사회적 약자는 보호 받아야 되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종교는 존중되어야 되고요. 그런데 이 안 목사는 그 두 가지 가치를 모두 다 망가뜨렸어요. 보호 종료 아동들을 후원하는 단체가 없어지게 됐고 기독교를 멸시하는 분위기가 더 많이 생겼던 것도 사실이에요. 보호 종료 아동, 제가 만났던 피해자는 지금 매일 자살을 생각하고 있고요, 그 안 목사를 믿었던 신도들은 여전히 안 목사의 종교적인 가르침 안에서 희생당하고 있어요. 여전히 그곳에선 끔찍한 냄새가 납니다."
웨이브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악인취재기>에서 탐사전문 최광일 PD의 목소리는 다소 격앙되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취재한 안 목사의 인면수심 범죄가 너무나 끔찍했기 때문이다. 보호종료아동들을 대상으로 성착취 범죄를 저질러온 안 목사는 심지어 미디어를 통해 '키다리 아저씨'라 불리기도 했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 센터에서 탈출한 피해자가 공개해 법정증거로 쓰인 영상 속 안 목사는 보기에도 민망한 짓들과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나는 야구방망이를 넣어봤다." 이런 질문을 아이들한테 던지며 낄낄대면서 진실게임을 하는 안 목사는 그걸 "위트"라고 했다. "너 이 ○년아, 너는 아버지한테만 안 보여주고 왜 다른 사람들한테 젖을 다 보여주는데?" 술판을 벌이며 아이들에게 그런 말을 던진 것도 "친해지고 싶은 어떤 그런 것들?" 때문이라고 했다. 그 영상에는 여자 아이 보고 이리 오라고 한 안 목사가 가슴 부위를 툭 치는 그런 장면도 들어 있었다. 그러면서 "○○젖은 내 젖과 같다"는 말까지 던졌다.
<악인취재기>는 1,2회에는 토막살인사건으로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던 정유정과 고유정 사건의 그 유사성을 추적해 보여줬고, 3회에는 보호종료아동 대상 성착취 범죄를 저질러온 안 목사를 다뤘으며 4,5회에는 사이비 종교 돌나라를 다뤘다. 1,2회도 충격적이었지만, 3회부터 이어진 사이비 교주들의 면면은 한 마디로 점입가경이다. 특히 4,5회에서 취재한 박명호 돌나라 교주의 취재기는 마치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로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던 <나는 신이다>를 연상케 하는 장면들이 등장했다.
"서방님 서방님 아기 몇을 낳아드릴까요?" 같은 신도가 노래를 통해 교주에게 하는 질문도 믿기 어렵지만 이런 질문에 "왕창"이라고 답하는 교주라니. 박명호 교주를 낭군님, 남편이라 부르는 신도들은 그와 잠자리를 갖고 아이를 낳는 걸 마치 중대한 사명이나 되는 듯 생각하고 있었다. 전문가의 말대로 그건 그루밍 정도가 아니라 가스라이팅이라고 해야 할 정도의 세뇌였다.
이를 끝까지 단독 추적 보도한 JTBC 김태형 기자는 방송사 앞까지 몰려와 자신을 지목하며 "무릎 꿇고 사죄하라" 외치는 상황을 보며 숨이 턱 막혔다고 했다. 명예훼손으로 돌나라측에서 JTBC측에 소송까지 걸었지만 끝내 대법원까지 올라간 판결은 JTBC 김태형 기자의 손을 들어주었다. 또 2012년 브라질로 단체 이주까지 했던 돌나라는 잠잠한 줄 알았지만 2022년 다섯 명의 어린이가 사망하는 사건으로 다시 국내외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김태형 기자는 브라질까지 날아가 그곳의 실태를 취재했다.
사실 <악인취재기>는 이미 JTBC에서 취재 보도했던 사건들이다. 하지만 JTBC는 방송사의 특성상 더 많은 자료 영상들과 취재 내용들이 있었어도 모두 공개할 수는 없었다. <악인취재기>는 바로 그런 내용들을 보다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있어 수위도 선정성도 높다. OTT가 그 플랫폼의 특성을 발판으로 레거시 미디어의 탐사보도가 다 담지 못했던 수위 높은 다큐멘터리를 내놓기 시작했다. 넷플릭스라는 OTT를 통해 소개되어 엄청난 충격과 파장을 불러일으킨 <나는 신이다>의 흐름이 이어지고 있는 것.
물론 이런 흐름에 대한 호불호는 극명하게 갈린다. <나는 신이다> 때도 논쟁이 되었지만, 이렇게 자료 화면을 있는 그대로 공개하는 것이 보다 사건의 진상을 모두에게 명백히 드러낼 수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저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영상의 선정성이 만들어내는 폐해도 만만찮다는 반대의 주장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웨이브가 <국가수사본부>에 이어 <악인취재기> 같은 범죄를 좀 더 적나라하게 접근하는 탐사 다큐멘터리를 계속 오리지널로 제작해 방영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웨이브 콘텐츠들과 긴밀한 관계를 갖는 지상파, 종편에 이러한 탐사보도의 제작 인프라가 충분히 존재한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어딘가 '순한 맛'의 이미지로만 비춰지는 웨이브가 이런 '마라맛'도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함이다.
다소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방법을 택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악인취재기>는 앞서 최광일 PD가 "여전히 그곳에선 끔찍한 냄새가 납니다"라고 했던 그 말 하나에서 이 다큐멘터리의 취지는 분명해 보인다. 어찌 보면 줄여서 '악취'로도 읽히는 <악인취재기>는 바로 그 끔찍한 냄새를(어찌 보면 심지어 겉으로는 끝난 사건처럼 보여도) 끝까지 추적해 그 실체를 눈앞에 폭로하겠다는 의지가 거기 느껴지기 때문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웨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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