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DP 울산] 옛간 “참기름에 이야기·브랜드 담아 세계 식품 기업으로”
[IT동아 x 울산시 x 디자인주도 제조혁신센터] 한국디자인진흥원은 울산대학교에 ‘울산디자인주도 제조혁신센터’를 마련했습니다. 유망한 중소기업·스타트업의 디자인 경쟁력 강화를 돕는 곳입니다. IT동아는 ‘디자인주도 제조혁신지원사업’ 선정 기업을 소개하고 이들의 스케일업을 지원합니다.
[IT동아 차주경 기자] 울산 울주군의 도로를 달리다 보면 코 끝을 찌르는 고소한 향이 풍긴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또 대부분 좋아할 참기름, 그리고 들기름 향이다. 향이 가장 진하게 나는 곳으로 향하면 이내 종합 식품 기업 ‘옛간’의 터전과 마주친다. 이들은 스스로를 60여 년 동안 3대가 이어 운영 중인, 전통 기술에 이야기와 브랜드를 담는 우리나라 대표 방앗간이라고 소개한다.
옛간의 주요 상품은 단연 참기름과 들기름이다. 고기리막국수와 원할머니보쌈, 유천냉면과 용우동 등 우리나라 곳곳의 인기 음식점 브랜드 수백여 곳이 옛간의 참기름과 들기름을 애용한다. 이들은 자사의 참기름을 발라 만든 재래김도 인기리에 판매 중이다.
나아가 옛간은 참기름·들기름을 만들 때 쓰는 곡물 가공 기술을 활용해 선식, 곡물 가루와 곡물차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인기 상품만 모은 선물 세트도 구성했다. 옛간은 품질을 유지하려고 주요 제품의 원료 대부분을 자체 운영하는 농장에서 가져온다. 수십 년 동안 쌓은 전통 기술로 제품을 만들고 첨단 기술로 품질을 검증 후 디자인을 가미해 소비자에게 배송한다.
지금 옛간을 이끄는 박민 대표는 친할아버지인 박일황 옛간 창업자, 아버지인 박영훈 옛간 2대 계승자를 잇는 3대 계승자다. 그는 옛간의 장점과 철학을 설명하기 전, 꼭 옛간이 만들어진 계기와 발전사를 먼저 이야기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자사 제품에 녹은 메시지와 장점을 온전히 느낀다는 이유다.
울산의 유서 깊은 방앗간 옛간, 3대 손 거쳐 발전
박일황 창업자는 울산 장생포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이자 기계 설계와 개발을 즐겨 하던 발명가였다. 연탄 기계를 만들어 판매하고 막걸리 제조 공장도 운영하던 그는, 참깨 농사를 짓는 어머니를 도우려 참기름 추출 기계를 구상한다.
울산 장생포의 상징인 고래, 그 고래의 기름을 짜는 틀에서 영감을 받은 그는 1950년대에 나무 찜 누름틀을 개발하고 이것으로 참기름 추출 기계를 만든다. 그리고 옛간을 세워 참기름을 판다. 당시 옛간의 참기름은 참깨를 끓이거나 사람이 밟아 만들던 다른 참기름보다 향이 진하고 맛이 좋은 것으로 알려져 유명세를 탔다고 한다.
박일황 창업자의 기술과 참기름 추출 기계는 그의 아들이자 옛간 2대인 박영훈 2대 계승자가 이어받는다. 가내수공업 단계에 머무르던 옛간이 어엿한 기업으로 자리 잡은 것이 이 시기, 1980년대다. 나무 찜 누름틀을 개량해 압착, 온도 조절 기능을 더한 것도 박영훈 2대 계승자다. 이어 박영훈 계승자의 아들인 박민 3대 계승자 겸 현 대표가 기업으로 성장한 옛간을 이어받는다.
박민 대표는 울산대학교 경영학과에서 마케팅, 브랜딩 기법을 배웠다. 지금까지 옛간이 쌓은 기술력과 인지도에 마케팅·브랜딩을 접목,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옛간의 제품을 자랑스레 알릴 계획을 세웠다. 그러면 자연스레 옛간의 사업 범위가 넓어지면서 종합 식품 기업으로 성장 가능할 것이라는 계산도 마쳤다.
주력 제품 상품성 강화하고 이야기 실어 소비자 곁으로
박민 대표는 먼저 식품 시장 규모와 현황을 분석했다. 식품 시장은 대부분 대기업이 주도한다. 그런데, 참기름 시장의 양상은 사뭇 다르다. 소비자들이 대기업의 제품보다, 우리나라 곳곳에 있는 방앗간의 참기름을 선호한다. 박민 대표는 이에 마트나 백화점 입점에 집중하기보다는 옛간 브랜드 자체를 소비자들에게 알리면서 꾸준히 판매량을 거두는 전략을 세웠다.
이어 그는 옛간의 대표 상품 참기름의 상품성, 경쟁력을 가늠한다. 직접 참기름을 짜고 팔면서 운영 전반을 체험한 그는 옛간의 참기름 제조 기술력과 상품 품질에 확신을 갖고, 여기에 이야기를 심어 소비자에게 전달하기로 한다. 참기름을 만드는 고유 기술 찜누름과 제조 과정 전반을 상표로 만들어 맛과 향을 강조하는 수단으로 썼다. 이러면 자연스레 옛간의 역사와 상품성, 가치를 인정 받을 것이라고도 여겼다.
그가 선택한 이야기는 50년 전 옛간이 참기름을 처음 만든 동기와 역사, 울산 지역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참기름 관련 설화다. 이들 설화를 삽화로 만들어 상품에 새기고 적재적소에 공급했다. 참기름 향이 만 리까지 퍼진다는 설화, 이 향을 맡고 자란 아이들은 만 명을 먹여 살리는 거부가 된다는 설화를 삽화로 만들어 돌잔치 답례품에 넣은 것이 사례다. 이들 이야기는 옛간의 강력한 마케팅 수단이자 단골 손님을 모으는 요소가 된다.
박민 대표는 제품에 이야기를 싣는 전략을 유지하고, 소비자의 요구와 시장 유행을 반영하며 제품군을 넓혔다. 일본 소비자들이 우리나라의 김을 잘 먹는 것을 발견하고 옛간 참기름을 발라 구운 재래 김을 선보였다. 들기름 막국수 기업을 위해 추출 공정을 고도화, 들기름이 메밀면에 잘 어우러지도록 하는 기술도 개발했다. 이렇게 개발한 제품들을 선물 세트로 만들고, 수요처에 어울리는 이야기 삽화를 맞춤형 제작해 전달했다.
오프라인 장벽, 코로나19 팬데믹 등 위기 극복 후 안정화
고비도 많았다. 상품성을 강화한 제품군을 오프라인 매장에 공급하려 하니, 단가와 수수료의 비율을 조절하기 어려웠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창궐하면서 식당과 학교 등으로 납품하던 물량도 모두 사라졌다.
박민 대표는 먼저 ‘단골을 많이 만들라’는 초대 창업자의 철학을 이어받아 오프라인 홍보전을 강화했다. 소비자들을 단골로 만들 만큼 생산량을 높이려고 공장 설비를 확충하고 상품의 품질도 꾸준히 높였다. 옛간 브랜드로만 상품을 만들고 OEM은 일절 하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식당과 학교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옛간의 제품을 손쉽게 즐기도록 소포장 팩을 만들었다.
이들 전략은 유효했다.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식품을 아주 까다롭게 고른다. 한 번 브랜드와 상품을 고르면 여간해서는 바꾸지 않는다. 단골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단골이 많은 중소형 지방 식품 브랜드가 우리나라 수위의 식품 브랜드로 자리 잡는 경우가 많다. 단골 소비자들 덕분에 옛간은 백화점, 마트에 진입했다. 이야기를 담은 상품을 앞세워 단독 매대를 운영하는 옛간은 이제 전국 백화점과 마트 200여 곳에 상품을 직접 공급한다.
옛간이 오프라인에서 만난 식당 기업들, 특히 냉면 가게들은 소포장 들기름을 달마다 수만 개 이상 사는 단골이 됐다. 박민 대표는 이 때까지 세우고 검증한 전략을 반영해 온라인 쇼핑몰을 만들었다. 호황을 이룬 덕분에 옛간의 상품은 울산을 넘어 수도권, 제주도를 포함한 도서 지역으로까지 진출한다.
울산에서 자란 옛간, 울산 지역 기업과 상생 의지
박민 대표는 옛간의 기술을 고도화하면서 울산 소재 기업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말한다. 울산은 기계 설계와 제작, 생산 기업이 모인 우리나라의 주요 산업 단지다. 기계는 모든 산업의 기본 요소다. 박민 대표는 울산에 옛간뿐만 아니라 식품 기업 전반의 기본기를 강화할 기술, 선진 푸드테크를 현실로 이끌 기술이 모두 모였다고 강조한다.
참기름을 만들려면 원재료를 깨끗하게 씻고 균일하게 볶아야 한다. 옛간은 울산에 있는 기계 기업의 도움을 받아 이들 예비 과정을 완전 자동화했다. 이어 울산 기계 기업과 손을 잡고 참기름 제조 과정 전반에 무인화 기술을 적용한다. 목표는 5년 안에 완전 자동화 참기름 제조 공정을 만드는 것이다.
이 목표를 달성하면, 옛간은 울산 지역 기업과의 상생과 지역 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울산은 지금까지 자동차와 조선, 중공업 기계 기업들이 일궜다. 옛간은 세계 산업계에 새로운 활력을 가져다 준 소비재, 식품 기계 기술을 고도화해 울산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만들 각오를 내비쳤다. 이 각오를 현실로 이끄는 대표 기업이 된다는 포부도 밝혔다.
박민 대표의 계획을 도울 파트너도 속속 등장했다. 먼저 울산광역시다. 옛간은 울산광역시와 함께 식품 산업의 부흥을 이끌 다양할 방안을 논의 중이다. 울산농식품산업개발원에 식품 기업의 성장 노하우와 경험을 전달하고, 울산광역시의 식품 법령 제정에도 힘을 싣는다. 울산에 있는 영세한 식품 기업과의 동반 성장 정책도 마련한다.
한국디자인진흥원 울산디자인주도 제조혁신센터도 옛간의 발전을 지원한다. 이들이 선정, 매칭한 디자인 전문 기업들이 수시로 옛간에 방문, 신제품의 패키지 디자인을 다듬고 디자인 역량 전반을 강화한다. 국내외 식품 산업계에서 유행하는 디자인과 마케팅 성공 사례도 전수한다. 박민 대표는 울산디자인주도 제조혁신센터만이 주는 맞춤형 지원 덕분에 소비재, 식품 기업의 기본기를 튼튼히 다졌다고 말한다.
성과 딛고 인력 충원과 사세 확장, 언론 홍보 등 도전과제 해결
수십 년 동안 차근차근 성장한 옛간이 늘 순조로운 길을 걸은 것은 아니다. 박민 대표는 사업 초기에 대리점 체계를 잘못 구축해 매출이 급격히 하락했고, 자금난에 시달리다 폐업 위기에 몰린 적이 있다고 토로한다. 하지만, 이 위기를 자동화와 사업 내재화의 중요성을 깨달은 계기로, 생산·영업 체계를 다지는 계기로 전환한 덕분에 전화위복했다고도 말한다.
덕분에 옛간은 2018년 이후 매년 매출 규모를 100% 이상 늘렸다. 2023년 예상 매출은 100억 원에 달할 전망이다. 60여 년의 역사와 기술, 상품 인지도와 성과를 딛고 박민 대표는 도전 과제를 하나씩 풀어나간다.
그는 우선 ‘고급 인력과 파트너 확보’에 주력한다. 가장 필요한 이는 옛간의 브랜드 마케팅과 디자인을 도울 인재다. 박민 대표 자신이 브랜드 마케팅과 디자인으로 옛간의 성장을 이끈 만큼, 자신과 함께 옛간을 살찌울 인재를 섭외하려 한다.
옛간과 함께 다른 사업을 만들고 상승 효과를 낼 기업 파트너도 적극 찾는다. 이들이 우선 섭외할 곳은 지금까지 옛간이 거둔 성과와 경험, 두텁게 쌓은 이야기를 잘 알릴 언론 홍보 파트너다.
박민 대표는 다른 스타트업과의 연합과 협업에도 관심을 갖는다. 참신한 아이디어, 돋보이는 기술은 서로 통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스타트업 가운데에는 옛간이 다루는 숱한 식품과 상승 효과를 낼 곳이 분명히 있다고도 강조한다. 유력한 협업 부문 가운데 하나가 업사이클링이다. 실제로 옛간은 참기름을 만들고 남은 깻묵을 소의 사료로 활용 중이다. 이를 포함해 여러 부문의 스타트업과 만나고 함께 성장하는 것이 박민 대표가 풀 도전 과제다.
‘사업 범위 확장’도 그에게 던져진 도전 과제다. 박민 대표는 이미 오프라인 프랜차이즈 시장 진출을 답으로 제시했다. 프랜차이즈 브랜드와 주요 상품 기획도 마쳤다. 옛간은 자동화 라인을 구축한 후 프랜차이즈를 정식 발표할 예정이다. 그는 호불호가 거의 없는 참기름처럼, 누구에게나 좋은 평가를 받을 만한 상품을 선보일 것이라고 밝혔다.
‘새로운 상품 개발’은 식품 기업이 영원히 되풀이할 도전 과제다. 옛간은 곡물의 가공 기술을 활용해 2030 세대를 겨냥한 새로운 상품을 기획 중이다. 참기름 추출 설비를 변형해 커피 추출 기술을 만들고 이를 상품화할 계획도 마련했다. 귀리와 서리태 등 몸에 좋은 곡물로만 만든 파우치형 식사 대용 단백질 선식도 울산디자인주도 제조혁신센터와 함께 개발 중이다.
세계 케첩의 대명사 하인즈처럼, 옛간을 세계 대표 곡물 전문 기업으로
옛간 본사 건물의 벽 한켠에는 세계 주요 식품 기업 하인즈(Heinz)의 브랜드 이야기가 걸렸다. 토마토, 케첩 하면 많은 사람들이 하인즈를 떠올린다. 박민 대표의 목표가 바로 옛간을 하인즈만큼 유명한 기업으로 만드는 것이다. 참기름과 들기름, 곡물 식품 하면 많은 사람들이 옛간을 떠올리도록 하는 것이다.
박민 대표는 “옛간은 참깨와 콩 등 땅에서 나오는 곡물로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었다. 이 경력과 기술을 토대로 소비자를 위한 제품을 만들고 이야기와 함께 전하는 철학을 잇겠다. 참기름, 들기름 기업을 넘어 곡물 식품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성장하겠다."고 밝혔다.
글 / IT동아 차주경(racingca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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