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흘러도 여전히 귀엽고 멋진 우리 (윤)계상오빠!
아이즈 ize 이현주(칼럼니스트)
어떤 사람에 대한 호감이 알아 온 시간에 비례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바지하는 바가 영 없는 것도 아니다. 어릴 때 봤던 사람을 훌쩍 자란 뒤 만나는 것도 반갑고, 한 사람이 나이 드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 또한 흐뭇함을 준다. 내가 키운 것도 아닌데 왜일까.
젊지 않은 나이다 보니, 화면을 통해 보는 많은 연예인의 과거를 기억한다. 윤계상도 그중 하나다. 데뷔 25년이라는데 아직도 젊은(?) 그는 대체 몇 살에 활동을 시작했다는 건지. 어쨌거나 나는 윤계상의 신인 시절을 기억한다. 대중문화 잡지 기자 시절, 우리 잡지는 수많은 유망주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들 중 윤계상은 지금까지 빛나는 몇 안 되는 스타 중 하나다. 당시도 지금도 그는 특유의 따스하고 밝은 매력을 지니고 있다. 풋풋한 청년에서 훈훈한 장년으로 세대만 건너갔을 뿐.
윤계상 하면 '장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지만, 이제 드디어 그 그림자에서 벗어날 인생 캐릭터를 만난 것 같다. ENA 드라마 '유괴의 날'의 주인공 김명준. 어느 때보다 잘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윤계상은 이 드라마에서 완벽한 김명준의 모습을 보여준다. '유괴의 날'은 드라마 제목치곤 낯설다. 내용도 그렇다. 유괴 사건으로 시작해 확장되는 세계에 다양한 사회문제를 담고 있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원작 소설이 지닌 탄탄한 구성력이 뒷받침인 듯하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특별한 건 물론 최로희(유나)다. 그런데 김명준 또한 못지 않게 특이하다. 유괴범인데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어른인데 때로 아이 같다. 그리고 많은 사연을 숨기고 있다. 그렇게 모호한 경계를 넘나들며 윤계상은 자연스럽게 극의 중심을 잡고 있다. 늘 유쾌해 보여도 배역 앞에서 한없이 진지할 것만 같은 윤계상은 김명준이라는 숙제를 받고 또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그 고민에 화답하듯 억지스러울 수도 있었던 김명준이란 캐릭터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로희 역을 맡은 유나와 환상의 호흡을 보여준다. 유나와 윤계상은 실제로 케미가 좋아 주고받는 대사도 애드리브가 상당히 많다는 후문. 이전까지 아빠 역할과는 어쩐지 거리가 멀어 보이는 윤계상이었지만, '유괴의 날'에선 긴 듯 아닌 듯 자연스럽게 새로운 아빠의 모습으로 시청자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후천적 선택으로 획득하는 아빠, 엄마라는 직무는 특히 첫 아이 때 인생 최대의 난관을 맞는다. 엄마인 나는 아빠의 세계를 전부 이해할 수 없다. 부모라는 동지애로 결속하기도 하지만 엄연히 태생이 다른 부와 모는 건널 수 없는 강에 가로막혀 대립할 때가 부지기수이므로. 그럼에도 아빠의 고충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누구에게나 이번 생이 처음인 것처럼, 처음 맞는 아빠의 세계가 얼마나 당황스러울지.
아빠는 아버지와는 또 다르다. 아버지가 큰 산이라면, 아빠는 아버지가 될 준비를 하고 있는 언덕, 야산 정도랄까. 아빠라는 존재는 스스로도 서툰데 누군가를 책임져야만 한다. god의 노래처럼 "나는 누구고 왜 이 길(아빠라는) 자리에 서 있는지" 모르겠는데 가족 앞에선 마치 길을 아는 듯 의젓하게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아버지가 되기 전, 아빠들은 그래서 아마 누구보다 힘들고 외로울지도 모른다. 물론 아버지가 되어서도 마찬가지일 테지만.
김명준도 그래서 좌절하고 도망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린 로희를 자신들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도구로 여기는 어른답지 못한 어른들로부터 구해줄 사람은 자신밖에 없기에 힘을 냈고 그렇게 이제 그동안 숨겨뒀던 강인함을 꺼내놓을 차례다. 극이 결말로 치닫고 있기에 앞으로 윤계상은 더욱 폭발적인 힘과 감정을 드러낼 듯하다. 그답게 한껏 인상을 쓰다가도 한 번씩 엉뚱한 농담과 함께 툭하고 웃음을 내뱉으며.
다시 처음 가졌던 의문에 대한 답을 혼자 찾아본다. 비록 화면이지만 오래 봐 온 사람에게 왜 정이 가는지. 내가 보탠 건 없지만, 젊고 어린 사람이라고 결코 녹록할 법 없는 세상에서 잘 버텨왔기에. 참 많이 노력했을 거라는 걸 짐작할 수 있기에. 무엇보다 그 훈훈한 미소가 여전하기에.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미소로 나이 들어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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