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서트인가, 피크닉인가…‘선’ 넘는 호텔의 변신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던 우렁찬 매미 소리가 사그라들고 새벽녘 무심코 발끝의 이불을 끌어당길 때, 가을이 왔음을 직감한다. 도시의 소음에 ‘멈춤’ 버튼을 누르고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음악으로 치유의 시간 보내기. 불현듯 찾아온 이 가을이 서둘러 떠나기 전 누려보고 싶었던 소박한 버킷리스트였다.
소소하지만 의외로 이루기 힘들었던 이 리스트를 ‘완성’하기 위해 지난 15일, 서울 광장동 워커힐 호텔 앤 리조트 내 포레스트 파크를 찾았다.
한강과 아차산 사이 위치한 포레스트 파크는 바쁜 일상에 지친 이들의 휴식처이자 자연과의 동화를 제안하는 야외 정원이다. 평소에는 ‘해설이 있는 숲 체험’, ‘DIY 라탄 클래스’, ‘잉글리시 캠프 앳 포레스트 파크’ 등의 프로그램이 진행되지만 이날은 클래식 공연과 피크닉을 결합한 ‘워커힐 파크 콘서트’ 첫 번째 무대가 예정돼 있었다.
주차 후 알록달록 변해가는 숲길을 따라 걷다 보니 산 중턱 너른 잔디가 펼쳐졌다. 동행한 여덟 살, 호기심이 넘치고 에너지가 충만한 아이는 글램핑 텐트를 기웃거리며 내부에 배치된 농구대에 관심을 보였다가 이내 곧 옆 텐트에서 진행 중인 ‘단풍 리스 만들기’와 ‘팔찌 만들기’에 시선을 빼앗겼다. 동심으로 돌아간 듯한 옆 테이블의 연인도 유쾌해 보이긴 마찬가지였다.
‘피크닉’이란 세글자가 무색하지 않게 아기자기한 소품으로 채워진 대형 텐트 옆에는 도시락 거리가 준비돼 있었다. 입장과 함께 받았던 쿠폰을 이용해 BBQ와 치킨 볼, 와인과 음료를 골라 담다 보니 푸짐하게 차려진 한 상이 차려졌다.
지정된 번호가 적힌 캠핑 의자를 찾아 폴딩 박스에 내려놓고 주변을 둘러봤다. 초가을의 바람을 마주하는 이들의 모습에는 여유가 넘쳤다. 밀린 이야기를 나누고 계절의 변화를 체감하는 일상의 행복에 취한 이들도 목격됐다.
해가 능선을 넘어갈 채비를 마친 오후 5시,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중 ‘하늘을 나는 사람’으로 본격적인 콘서트가 시작됐다. 소프라노 조수미의 전속 지휘자 최영선이 이끄는 ‘밀레니엄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이날의 공연을 맡았다.
이어 <이웃집 토토로>, <마녀 배달부 키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에 삽입된 익숙한 곡들이 연주됐다. 아이는 “애니메이션 명장면들이 몽글몽글 구름 위로 펼쳐지는 것 같다”며 즐거워했다. 아이만큼이나 흥에 취해 리듬을 타는 어른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풍요로운 멜로디로 조화롭게 울려 퍼지던 관현악의 하모니는 조세형 색소폰 연주자와 조윤경 첼리스트의 연주로 무르익었다. 어둠이 깔리고 마지막 연주도 끝이 났다. 스산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아니었다면 조금 더 머물고 싶었던 주말 저녁이었다.
도심 속 호텔이 진화하고 있다. 단순한 숙박 공간, 본연의 기능에 안주하지 않고 영화 속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이색 공간으로의 변신을 시도하고, 나아가 다채로운 공연과 전시를 선보이며 예술의 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올해로 60주년을 맞은 워커힐 호텔 앤 리조트는 이런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곳 중 하나다. 시간을 거슬러 오픈 당시 이곳에서는 루이 암스트롱이 워커힐 개관을 기념해 2주간 내한 공연이 진행됐고 이후 세계적 록 그룹인 밴드 빌리지 피플, 세계 팝 애호가들의 우상이었던 톰 존스, 마이클 잭슨 등 해외 인기 스타의 초청 공연도 열렸다.
파격적인 호텔 쇼와 갤러리로 주목받은 시기도 있었다. ‘하니비쇼’는 화려한 무대 의상을 입은 무용수가 춤을 추는 공연으로 화제를 모았고, ‘워커힐 미술관’은 ‘아트센터 나비’로 재개관하기까지 총 138회의 전시회를 개최해 문화공간으로 활약했다.
최근에는 ‘워커힐 문화살롱’, ‘로비 콘서트’ 등의 문화 프로그램을 통해 음악, 책, 미술이 결합한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고, ‘빛의 시어터’ 등 양질의 전시 콘텐츠로 특별한 문화적 즐거움과 영감을 선물해 왔다.
‘선’을 넘는 호텔의 다채로운 시도는 반가운 일이다. 팬데믹 이후 정형화된 틀을 탈피한 또 다른 여행을 꿈꾸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잘 먹고, 푹 쉬는 동시에 귀 호강까지 누릴 수 있는 호텔 피크닉의 매력에 빠져보고 싶다면 오는 22일 오후 진행되는 두 번째 ‘워커힐 파크 콘서트’에 함께 해도 좋겠다.
김지윤 기자 ju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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