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전기’ 선을 넘어 시나브로 흑화하는 신하균의 연기 기대 [김재동의 나무와 숲]
[OSEN=김재동 객원기자] 첫 접견에서 놈은 다짜고짜 야구 공을 던졌다. 공은 쏜살같이 귀 옆을 지나 벽을 맞고 굴러 떨어졌다. 공이 타격한 벽면에는 파리 한 마리가 으깨져 있었다. “파리는 영 귀찮아서..” 놈의 첫 대사였다.
지니TV 오리지날 ENA 토일드라마 ‘악인전기’((극본 서희 이승훈, 연출 김정민 김성민)의 주인공 한동수(신하균 분)는 사무장 출신에 징계까지 받은 변호사다.
사무장 출신이란 핸디캡에 더해 징계 3년 끝에 복귀해서인 지 일거리가 없다. 그러다보니 명색은 변호사인데 하는 일은 얼굴도 모르는 잡범들에게 면회 신청을 해 일을 따내고, 돈 몇 푼에 반성문 대필까지 해주는 처량한 신세로 전락한 상황이다. 당연히 사무실도 없어 아파트 베란다에 사무 공간을 꾸리고 교도소로 출퇴근 하며 지낸다.
그런 그에게 성남시 대표 폭력조직 유성파 2인자 서도영(김영광 분)으로부터 접견 지명이 들어온다. 전직 투수 출신답게 파리를 원샷원킬한 서도영은 거만과 냉소가 뒤섞인 얼굴로 내연녀 감시를 제안한다.
변호사 일이 아니다. 흥신소나 할 일이다. 아니 제 밑에 부하 하나 붙여놔도 될 일이다. 무엇보다 자칫 사람이 상할 수 있는 의뢰다. 문제는 5천만원짜리 의뢰란 점. 갈등하던 동수가 제의를 거절한다.
도영은 비웃음을 담아 “교도소 뺑뺑이보다 낫지 않아요?”라고 묻는다. 동수가 울컥해 “그래도 선이라는 게 있는 겁니다.”라 답했어도 도영의 비아냥은 계속된다. “선? 밟으라고 있는 선? 그러면 그대로 구질구질하게 사시던가.”
그렇게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아파트 경비실에 맡겨진 돈뭉치. 동수가 돌려줄 궁리를 하는 동안 예기치 못한 일이 터진다. 마트 일을 하던 아내 정혜영(최정인 분)이 점장 서춘기(신문성 분) 집에 불려갔다가 성추행을 당한 것.
아내를 추궁해보니 요양원에 모셔둔 치매 노모 이혜자(길해연 분)가 불을 내는 바람에 합의금이 필요했고, 천만원을 점장에게 빌렸으며, 점장은 그 약점을 이용해 출장 중 집 정리를 부탁했단다. 하지만 혜영이 점장 집을 찾았을 때 남아있던 점장이 혜영을 추행했고 피하던 혜영은 손목까지 다치게 됐던 상황이었다.
동수가 서춘기를 만났을 때 똥 뀐 놈이 성낸다고 서춘기로부터 모욕만 받았다. 돈부터 갚으라는 비아냥도 들었다. 분개한 채 차에 올랐더니 파리 한 마리가 왱왱댄다. 용케 파리를 낚아챈 동수는 차창에 그 파리를 으깨버린다.
도영으로부터 받은 돈을 헐어 서춘기 앞에 동댕이친 동수. 하지만 서춘기의 비아냥은 계속되고 동수는 분을 못참고 골프채를 들어 탁상 유리를 박살내며 위협한다. 기세등등했던 서춘기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겁에 질려 버린 서춘기는 정말 보잘 것 없었다.
넘을 수 없는 선인줄 알았다. 그럼에도 넘자면 대단한 용기와 결연한 의지가 필요한 줄 알았다. 아니었다. 언제든 사뿐히 즈려밟을 수 있었고 그랬을 때의 통쾌함은 기대 이상이었다. 동수는 그렇게 서도영과 엮였다.
한동수는 서도영이 지목한 박제이(최유하 분)의 불륜 증거를 찾기 위해 미행, 가택침입, 몰카와 녹취 등 법이 금한 행위들을 거침없이 해나간다. 그래서 밝혀진 진실은 서도영의 의뢰가 불륜 확인이 아닌 배신자 색출이었다는 점. 뒷골목과 연결된 흥신소나 자기 부하를 피해 변호사 한동수를 고용한 이유였다.
박제이는 식물인간 상태인 유성파 두목의 애첩이었고 넘버 3 허양호(문진승 분)의 내연녀였으며 허양호의 유성파 접수를 위해 서도영에 약을 먹여 구속시키고 살해까지 공모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서도영의 의뢰는 그렇게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제 박제이의 집에 남아있는 몰카만 회수하면 된다. 동생 한범재(신재하 분)와 다시 찾은 박제이의 집. 몰카를 회수한 형제가 집을 벗어나기 전 박제이가 귀가했고, 몰래 빠져나가려던 순간 불상의 침입자가 또 나타난다. 그리고 침대 밑에 숨은 형제의 눈에 총에 맞아 죽는 박제이의 모습이 담기고 침대보가 젖혀진다. 거기엔 얼굴에 피가 튄 채인 서도영이 있었다.
살인사건의 목격자. 서도영으로선 살려둘 수 없는 존재. 하룻밤 악몽으로 치부할 수 있었던 서도영과의 인연은 이제 생사가 달린 문제로 비화됐다.
3화 예고에서 한동수 형제는 박제이의 시신을 유기한다. 서도영에게 목숨을 담보 잡힌 채 그의 범죄의 조력자로 전락해 버렸다. 법을 수호하고 대변할 변호사에서 법을 피해가고 조롱할 법꾸라지 악당으로의 첫 발을 뗀 것이다.
흔히 말하는 선(線)은 예측 가능해 용납이 가능한 수준을 말한다. 선 밖은 불확실의 영역이다. 그래서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금단의 영역은 늘상 욕망의 대상이 되고 강한 쾌감도 선사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선을 넘었다고 해서 한동수가 갑자기 서도영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 선이 자기 연민과 자기 합리화를 통해 시나브로 야금야금 권역을 키워간다는 것이다.
서춘기에게 골프채를 휘두름으로써 한동수는 특수협박의 죄를 저질렀다. 하지만 ‘놈은 그래도 마땅하다’는 합리화가 뒤따르고 꼬랑지 만 서춘기의 모습을 보며 느낀 통쾌함은 신선했다. 죄의식 속에 미행하는 긴박감과 남의 집에 침입하는 스릴은 또 얼마나 짜릿한가. 역시 ‘내 가족이 살려면..’하는 합리화가 죄책감을 덜어준다.
알콜릭의 경우도 그렇다. 중독자라고 해서 어두운 방 안에서 병나발 부는 모습을 상상할 필요는 없다. 단시간에 대량의 알콜을 위장에 부을 이유는 없는 것이다. 다만 끊임없이 홀짝홀짝 마시면 된다. 그것이 몸이 녹아버릴 때까지 계속될 뿐이다. 한동수에게 예비된 범법의 중독도 이와 같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이에 앞서 한동수와 법무법인 문 로펌의 대표 문상국(송영창 분)의 식당 조우 씬이 있었다. 둘 사이의 과거사가 드러난 것은 아니나 한동수는 문상국을 증오하고 문상국은 한동수를 경멸하는 관계만큼은 여실히 드러났다.
그 자리서 한동수는 문상국이 권력과 지위를 이용해 사적 복수를 했다고 비판했고 문상국은 “자넨 그게 부족해. 반성과 성찰.”이라고 비웃었었다.
드라마는 한 갈래로 서도영의 폭력을 이용한 한동수의 사적 복수도 그릴 것 같다. 그러다보면 문상국도 반성과 성찰을 하게 될까? 물론 한동수에게도 시나브로 악의 구렁텅이로 향한 스스로의 발걸음을 멈춰 세우고 반성과 성찰을 할 필요는 있겠다.
순박하고 나름 정의로운 변호사 한동수의 흑화. 드라마가 천명한 이 얼개는 연기자가 신하균이라서 한층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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