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나 숲에서 한달 살기, 그 '살 집' 찾아주는 사람들 [로+네상스]
스타트업으로 마을살리기
숙소 중개플랫폼 미스터멘션
관광 콘텐츠로 거듭난 양양
생활인구 늘려 소멸 위기 극복
미스터멘션의 흥미로운 전략
소멸위기 지역서 숙소플랫폼 운영
#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었는데도 정부의 지방소멸 대응책이 실패하자, 관광 콘텐츠를 개발해 지역경제를 살리는 '플랜B'가 주목받고 있다. 최근 파티 명소로 떠오른 양양이 이를 입증한 사례다.
# 흥미로운 건 '관광'을 유도해 지역경제를 살리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로컬 스타트업도 있다는 점이다. 중장기 숙소 중개 플랫폼 미스터멘션이 대표적이다. 로컬 혁신 전문가 이준호 지역혁신 오픈이노베이션 포럼 부회장과 함께 '로컬 르네상스'를 꿈꾸는 스타트업을 소개하는 시간, '이준호의 로+네상스' 2편이다.
소멸 위기에 놓인 여러 지자체의 부러움을 사는 곳이 있다. 바로 강원도 양양군이다. 양양은 주민등록 인구가 3만명을 밑도는 작은 군이다. 인구수로만 따지면 전국 최하위권이다. 그런데도 시샘의 대상에 오른 건 주말만 되면 양양을 찾는 관광객 덕분에 지역이 들썩여서다.
최근 몇년간 몰려든 서핑족으로 '서핑의 메카'란 명성을 얻은 양양은 지금은 홍대나 이태원 못지않은 파티 문화로 더 유명해졌다. 지난해 양양을 찾은 관광객은 1638만명에 달했다. 코로나19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시기였음을 고려하면 놀라운 성과다. 여름 성수기가 지난 요즘도 매주 1만명 안팎의 관광객이 양양을 찾고 있다.
강릉과 속초란 국내 대표 관광지 사이에서 쇠락하던 시골마을 양양의 극적인 변화는 지방소멸을 늦추려는 정부와 지자체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통상 지역을 되살리겠단 계획을 세울 땐 대규모 재정 투입을 전제로 삼는다. 역대 정부들이 '국가균형발전'이란 틀 아래 시행한 계획 대부분이 그랬다.
참여정부 때 테이프를 끊은 혁신도시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이 프로젝트에 따라 150개가 넘는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했고, 거기에 10조원이 넘는 세금을 쏟아부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혁신도시 지역이 공공기관뿐만 아니라 민간기업까지 끌어들일 수 있는 매력적인 곳으로 발돋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생활 인프라를 제대로 구축하지 않은 탓에 공공기관 직원들이 주말이면 수도권으로 올라가는 곳도 숱했다. 혁신도시 프로젝트는 '시즌2'란 간판을 내걸고 지금도 진행 중이지만, 지방 청년들은 여전히 수도권으로 몰려들고 있다.
따지고 보면 혁신도시의 실패는 예견된 일이었다. 수도권 수준의 인프라를 갖춘 지역을 뚝딱 만들어 내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건 당장 사라질 위기에 처한 대부분의 지자체가 내다볼 목표점도 아니다.
이런 측면에서 균형발전을 꾀할 새로운 접근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데, 양양의 변화는 좋은 모델이다. 대기업과 공공기관을 유치하지 않았는데도 청년들이 모여드는 활력 넘치는 도시로 탈바꿈했기 때문이다.
양양에서 보듯, 수도권 인구가 이주해야만 지역이 살아나는 건 아니다. 통근ㆍ통학ㆍ관광을 목적으로 체류하면서 지역의 실질적인 활력을 높이는 '생활인구'를 늘리는 것도 묘수다. 일주일 중 닷새는 도시에서 일하고 이틀은 지방에서 사는 '5도2촌' 라이프가 확산하고, 휴가지에서 일하는 '워케이션(Worcation)'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요즘은 생활인구를 늘리기에 좋은 시절이기도 하다.
여기서 주목할 건 생활인구 증가에 도움을 주는 스타트업도 있다는 점이다. 중장기 숙소 중개 플랫폼 '미스터멘션'이 대표적이다. 이 회사가 운영하는 홈페이지나 앱에 들어가면 일주일, 한달 등 중장기 숙박을 전문으로 다루는 숙소를 한눈에 볼 수 있다.
2016년 제주에서 론칭한 미스터멘션은 경쟁사가 단기숙박 중개에 집중할 때 '제주도 한달 살기' '강원도 한달 살기' '부산 한달 살기' 같은 중장기 여행객을 위한 숙소를 늘려왔다. 현재 미스터멘션이 중개하는 숙소는 전국에 7340개가 있다.
단순히 고객과 숙소를 연결만 해주는 게 아니다. 미스터멘션이 직접 운영하는 322개의 숙소에선 고객의 니즈에 맞춘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가령, 장기숙박 고객을 타깃으로 식기세척기ㆍ세탁기ㆍ건조기ㆍ정수기 등 생활편의시설을 두루 갖춘 숙소를 안내하거나 유아용 텐트ㆍ카시트ㆍ조식 같은 육아 전용 서비스를 제공하는 숙소를 소개하는 식이다.
고객을 해당 지역에 더 오래 머물도록 하는 게 미스터멘션식 서비스의 뼈대인데, 이는 긍정적인 파급효과로 이어졌다. 인구소멸 지역에 있는 미스터멘션의 숙소는 2164개에 이른다. 고객은 이들 숙소에 평균 2주 이상 머물렀고, 회사 측은 이들은 누적 40억원이 넘는 돈을 해당 지역에서 썼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미스터멘션이 구현한 '놀기도 살기도 좋은 숙소'를 이용하는 고객들이 지역에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구현하고, 주변 상권에서 소비를 꾀했다는 거다.
미스터멘션은 한발 더 나아가 지방소멸 위기의 폐해인 '빈집' 문제를 해소하는 데도 적극적이다. 빈집이나 낡은 숙소를 직접 개발해 트렌드에 맞춘 새로운 숙박시설로 단장하고 있어서다.
이 회사를 창업한 정성준 미스터멘션 대표의 설명을 들어보자. "처음엔 부모님이 운영하는 펜션 홍보를 돕기 위해 간단한 홈페이지를 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 하나의 기회가 보였어요. 빈집을 활용하거나 장기 투숙에 걸맞은 스테이 서비스를 제공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 같았죠. 창업 직후엔 고전했지만 일과 휴가를 동시에 즐기는 근무 형태인 워케이션이 확산하면서 지금은 소멸 위기에 놓인 지역의 많은 숙소가 우리 플랫폼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최근엔 중국인 단체관광객을 부산 내 인구소멸지역으로 초청해 지역 관광에 특화한 체험도 유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지역경제 생태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다양한 스테이 서비스를 늘려나갈 계획입니다."
많은 전문가가 지방소멸 극복의 핵심 열쇠로 일자리를 꼽는다. 지자체장들이 대기업과 공공기관을 유치하기 위해 각종 인센티브를 동원하는 이유다. 하지만 그렇게 거창한 계획이 아니더라도 지방에 일할 사람을 모으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
미스터멘션의 사례처럼 그 지역에서 재밌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면 평일이든 주말이든 동네가 북적일 것이다. 이는 로컬 스타트업에도 기회라는 걸 미스터멘션이 잘 보여준다.
2016년 창업 이후 미스터멘션을 찾은 누적 방문자는 770만명, 예약 숙박 일수는 44만3724일이다. 수도권에 본사를 두고 있는 스타트업이 아닌데도 세차례에 걸쳐 누적 투자금 50억원을 확보했다. 로컬 스타트업을 준비 중인 예비 창업자들에게 미스터멘션은 벤치마킹할 만한 교본임이 틀림없다.
이준호 지역혁신 오픈이노베이션 포럼 부회장
junho65@naver.com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Copyright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