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마어마한 제작비 없어도 때론 영리한 작가들의 필력만으로 충분하다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어마어마한 제작비, 새로운 상상력이나 스타 없이도 성공하는 드라마들이 있다. 겉보기에는 소박하고 또 그렇게까지 신선한 내용도 아니다. 하지만 익숙한 장르나 전개라도 캐릭터가 주고받는 핑퐁식 전개나 적절한 반전을 구사하면 사랑받을 가능성이 높다.
tvN 월화드라마 <반짝이는 워터멜론>과 ENA 수목드라마 <유괴의 날>이 그런 경우다. 두 드라마는 익숙한 소재를 작가들이 영리하게 요리했다. 두 작품 모두 소재 자체는 그렇게까지 새로운 건 아니다.
<유괴의 날>은 어설픈 유괴범 김명준(윤계상)과 똑똑한 아이 최로희(유나)가 등장하는 이야기다. 어리석은 범죄자와 똑똑한 아이의 관계는 우리가 흔히 봐온 유괴범 설정 코미디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김명준과 로희가 주고받는 대사의 티키타카가 재미있고 여기에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반전이나 새로운 흥미를 일으키는 사건들이 추가된다. 결정적으로 늘 다음 회차를 기대하게 만든다. <유괴의 날>은 이 과정을 두 등장인물과 함께 따라가는 재미가 상당하다. 익숙한 장르 세계관이라 유입이 쉬운 것도 <유괴의 날>의 장점이다.
<반짝이는 워터멜론>의 경우는 <유괴의 날>보다 더 친숙한 소재와 전개다. 한때는 신선했으나 이제는 흔한 장치가 되어버린 시간여행. 여기에 영화 <수상한 그녀>나 KBS <어쩌다 마주친 그대>가 떠오르는 순간들도 있다. 시간여행의 고전 영화 <백 투더 퓨처>와 닮은 <백 투더 수박>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밴드를 통해 우정과 사랑을 나누는 소재 역시 몇 년마다 한번 씩 등장하는 하이틴물의 흔한 소재다.
그렇기에 <반짝이는 워터멜론>은 초반에 그리 화제를 모으지 못했다. 하지만 드라마가 중반에 접어든 지금 현재 방영하는 작품 중에서 가장 화제가 되는 작품 중 한 편이다. <반짝이는 워터멜론>은 밴드 기타리스트를 꿈꾸는 은결(려운)이 1995년으로 타임워프해 고교생인 아버지 이찬(최현욱)을 만나는 내용이다. 하지만 현 세계에서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청각장애인이었던 아버지는 1995년에는 그렇지 않았다. 게다가 은결이 지닌 음악인의 꿈을 그렇게나 싫어하던 아버지가 고교시절에는 밴드의 프론트맨을 꿈꾸는 시끄럽고 말 안 듣는 고교생이었다니. 은결은 아버지와 함께 밴드를 만들면서 동시에 아버지의 운명을 바꾸기 위한 작전에 돌입한다.
<반짝이는 워터멜론>은 1995년을 배경으로 아버지와 아들의 휴먼 스토리를 꽤 익살스럽게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 어른스러운 아들과 철부지 같은 고교생 아버지의 치고받는 말싸움이 꽤 재밌게 그려진다. 여기에 주인공들과 주변 인물을 통해 1990년대 배경 고등학생들의 풋풋한 일상을 섬세하게 포착하는 데도 성공한다.
<학교> 시리즈를 통해 기본기를 다진 20년차 베테랑 진수완 작가가 만들어내는 학원물 장면의 장점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 때문에 <반짝이는 워터멜론>은 타임워프나 판타지에 익숙하지 않은 시청자들에게도 쉽게 어필되는 장점이 있다. 타임워프를 걷어내면 1995년 학생들의 이야기만으로도 추억 학원물 같은 재미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반짝이는 워터멜론>이 타임워프 설정을 과거로 돌아가는 장치로만 쓰는 게 아니다. 이야기 전개의 코드로도 능숙하게 사용한다. 은결이 아버지와 만나고 과거가 달라지면서 미묘하게 상황이 변주되는 부분들이 미스터리처럼 드러나기 때문이다. 여기에 아버지의 첫사랑 최세경(설인아)이 진짜 최세경이 아닌 은결과 마찬가지로 1995년 시간여행에 끼어든 또 다른 인물일지도 모른다는 설정 역시 추가되니, 타임워프로 새로운 흥미 포인트가 만드는 데도 성공한다.
<반짝이는 워터멜론>과 <유괴의 날>은 분명 새롭거나 대작은 아니다. 하지만 드라마만 익숙한 장르와 주제를 흥미로운 캐릭터와 영리한 전개로 변주하는 것만으로도 기본적인 재미가 있다. 두 작품은 그런 재미를 충분히 전달하는 드라마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tvN,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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