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병원 폭발 후폭풍 "서방까지 규탄"…이스라엘 돌아올 수 없는 강 건넜나?
이스라엘군이 17일(현지시간) 오후 가자지구의 병원을 공습해 수백 명이 숨지거나 다쳤다는 해외 보도가 잇따라 나왔다. 서방 국가들까지 “반인류 범죄가 일어났다”며 규탄 목소리를 내면서 ‘하마스 척결’을 명분으로 가자지구 공격을 감행한 이스라엘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비판에 힘이 실린다.
▮취약계층 보호시설 공습, 반인류 범죄…사상 계속 나올 듯
BBC와 알자지라 방송은 17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지구 보건부 발표를 인용해 이날 오후 가자시티의 알아흘리 아랍 병원이 이스라엘군의 공습을 받아 최소 500명이 숨졌다고 보도했다.
보건부는 “수백 명이 다치고 수백 명의 희생자가 아직 건물 잔해 밑에 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사망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AP 통신은 병원에서 촬영된 영상을 통해 불이 건물을 휩싸고 병원 부지가 훼손된 시체로 뒤덮였다고 전했다. 시신의 다수는 어린이들이었다. 잔디밭에는 담요, 학교 배낭 등의 소지품이 늘어져 있었다고 한다.
무함마드 아부 셀미아 병원장은 사상자 350명가량이 가자시티의 알시파 병원으로 이송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의료 인프라가 부족해 지원이 절실하다. 셀미아 병원장은 “작은 방 하나에 침대 5개를 밀어 넣고 있다. 장비도, 약도, 침대도, 마취제도 필요하고 모든 게 필요하다. 병원 발전기의 연료가 18일이면 떨어질 것이다. 가자의 의료는 몇시간 안에 붕괴할 것 같다”며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마무드 아바스 수반은 “이스라엘군의 이번 공습은 병원 대학살”이라고 비난하며 사흘 간의 애도 기간을 선포했다. 아바스 수반은 18일 요르단 암만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회동도 취소했다. 하마스도 “이번 공습이 대량 학살이며, 명백한 전쟁 범죄”라고 비난했다.
▮이스라엘 돌아올 수 없는 강 건넜나?…서방 규탄에 난감한 미국
전문가들은 만약 이 같은 보도가 사실이라면 이스라엘-하마스 간 전쟁에 대한 국제적 시선이 달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앞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지난 7일 이스라엘 본토를 기습한 이후 이스라엘군이 하마스 보복·토벌을 공언하면서 이번 전쟁이 시작했다. 그간 이스라엘에 대한 서방국의 지지가 많았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들 나라의 입장이 달라질 것이라는 것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한 서방 국가 정상들은 그간 가자지구에 인도주의 위기가 닥친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하며 이스라엘의 자제를 당부했다. 그런데 이번에 가자지구에서 가장 취약한 이들이 보호받던 의료시설이 군의 공격으로 파괴되는 반인류 범죄가 벌어진 것이다. 전쟁 중 전투와 관련 없는 이를 살상하거나 민간인 보호시설을 파괴하는 행위는 국제법정에 서야 하는 전쟁범죄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공포에 대해 깊은 슬픔을 느낀다”며 “의료에 대해 지속적인 공격을 받아온 지역에서도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실제 서방국 지도자들은 일제히 “명백한 전쟁범죄”라는 입장을 냈다. 바이든 대통령의 요르단 방문도 이 나라의 요청으로 취소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집트 대통령, 요르단 국왕,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 4자 정상회담을 열어 전쟁 해법을 논의할 예정이었다. 미국은 이번 회담을 통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중동 전쟁으로 확대되지 않도록 제3국의 불개입을 당부하려 했다. 하지만 이번 병원 폭발 사건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중동국의 감정이 악화돼 사태가 겉잡을 수 없는 격랑으로 빠져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비영리기구 국제위기그룹(ICG)의 분쟁 전문가 리처드 고원은 로이터 통신 인터뷰에서 “상황이 불확실하긴 하지만 끔찍한 사건 때문에 외교가 더 힘들어지고 긴장이 격화할 위험이 커졌다”며 “바이든 대통령의 방문 목적은 미국이 이 상황에 통제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전쟁을 통제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이 같은 비극적 사건에서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 시리아, 리비아, 이라크, 이란 등 이슬람권 국가들도 잇따라 비난 입장을 냈다. 하마스와 연대 중인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는 무슬림과 아랍인들에게 “강한 분노를 표현하기 위해 즉시 거리와 광장으로 나가라”고 촉구했다. 이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통치하는 요르단강 서안의 곳곳에서는 시위대와 팔레스타인 보안군 간의 충돌이 빚어졌다. 바이든 대통령과 아랍권 지도자들의 회동이 예정된 요르단 암만에서는 시위대가 이스라엘 대사관 급습을 시도하기도 했다.
▮책임 공방 예의주시…이스라엘 “지하드 미사일 피폭 영상·녹취 공개” 예고
이런 가운데 이스라엘 측은 이번 병원 폭발 사고가 팔레스타인의 또 다른 무장정파 이슬라믹 지하드의 로켓 실패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작전 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가자지구의 테러리스트들이 로켓을 쐈고, 알아흘리 병원 근처를 지나간 것으로 나타났다”며 “우리가 입수한 여러 출처의 정보에 따르면 가자지구 병원을 강타한 로켓 발사 실패에 이슬람 지하드의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감청을 통해 이슬라믹 지하드 대원들이 이번 사건이 자신들의 책임이라고 말하는 음성 녹음을 확보했다고 한다. 이스라엘군은 감청한 통신 내용과 관련 CCTV 영상 등 정보를 공개할 예정이다.
이날 SNS 등에 퍼진 이스라엘 측 CCTV 영상에도 가자지구에서 발사된 로켓들이 가자지구 내에 떨어져 폭발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전 세계는 알아야 한다. 가자지구 병원을 공격한 것은 이스라엘군이 아니라 야만적인 테러리스트들이다. 그들은 우리 아이들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아이들도 잔혹하게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이슬람 지하드 측은 로이터통신에 “거짓말이자 날조이며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며 “점령군(이스라엘군)은 민간인을 상대로 저지른 끔찍한 범죄와 학살을 은폐하려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백악관은 병원 폭발 희생자들에게 애도를 표하고 “애도 기간을 고려해 요르단 방문을 연기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만 방문한다. 방문 기간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에 대한 연대와 지지를 표명하고, 가자지구 인도적 문제 해결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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