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를 스펙터클로 이용하는데 윤리적 거부감 있었다”···‘너와 나’의 조현철 감독[인터뷰]

최민지 기자 2023. 10. 18.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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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너와 나>의 조현철 감독. 이 영화는 그의 장편 연출 데뷔작이다. 필름영·그린나래미디어 제공

“2016년부터 계속 차고 다녔어요. 중간에 한 번 정도 끊어지기도 했는데….”

편안한 차림의 조현철 감독이 오른쪽 팔목에 낀 노란색 팔찌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REMEMBER(리멤버) 2014’가 각인된,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기 위한 ‘기억 팔찌’다.

25일 개봉하는 조현철의 첫 장편 연출작 <너와 나>는 7년간 그의 팔목에 자리한 이 기억 팔찌를 떠올리게 한다. 제주도 수학여행 전날 고등학생 세미(박혜수)와 하은(김시은)의 하루를 그리는 이 영화는 상처난 마음들을 세심하게 어루만지고, 어떤 죽음들을 기억하려 한다.

여러모로 화제작이다. 넷플릭스 인기 시리즈 <D.P.>의 ‘조석봉’ 역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배우가 국가적 비극인 세월호 참사를 소재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한 번, 10대 소녀들의 관계나 복잡미묘한 감정을 탁월하게 표현했다는 점에서 또 한 번 그렇다.

지난 12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조 감독을 만났다. 평소 말수가 매우 적다는 그는 1시간가량 진행된 인터뷰에서 ‘1년치 할 말’을 다 하듯 진지하게 <너와 나>에 관해 설명했다. 30대 남성 감독의 손에서 10대 소녀들의 이야기가 굴절 없이 그려질 수 있었던 이유가 이해되는 시간이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영화 <너와 나>는 어떻게 시작됐나.

“수학여행을 하루 앞둔 여자 학생들의 하루를 떠올린 것이 시작이다. 사건(세월호 참사)과 엮은 것은 그다음이다. 2016년 겪은 개인적 경험이 계기가 됐다. 제 주변과 사회에서 벌어지는 죽음들을 겪으며 삶과 죽음에 관한 새로운 관점이 생겼다고 할까. 어떤 상실이나 쉽게 잊혀지는 죽음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고자 작업을 시작했다.”

- 세월호 참사를 소재로 한 이야기지만 이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다. 경기 안산이 배경인 점 등을 통해 힌트를 줄 뿐이다. 세월호 참사를 다루면서 연출적으로 고민한 지점이 있다면.

“참사를 영화적 스펙터클로 이용하는 데 윤리적인 거부감이 들었다. 은유적인 방식으로 다루려 했다. 그런데 (작업을 시작한) 2016년만 해도 시나리오를 보여주면 사람들이 ‘세월호 이야기구나’라고 반응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알아차리지 못하고 제가 이야기를 해야 뒤늦게 알더라. 참사를 이야기 속에서 얼마큼 드러낼지는 계속해서 수정을 거쳤다. 연출적으로는 아이들이 배에 타거나, 배가 침몰하거나, 아이들이 죽는 모습은 보여줘선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아예 모른 척하긴 싫었다. 당사자에게 말은 걸고 싶은데, 마음이 아파 눈은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겠고, 하지만 위로는 건네고 싶고…. 자세를 낮춰 고개를 숙이고 위로를 전하는 것이 저에겐 이 영화의 윤리이자 예의였다.”

<너와 나>는 제주로의 수학여행을 하루 앞둔 고등학생 세미(박혜수)와 하은(김시은)에게 벌어지는 꿈같은 이야기를 그린다. 필름영·그린나래미디어 제공

- 완성까지 1~2년을 예상했던 영화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7년이 걸렸다고 했다. 오래 걸린 이유는.

“일단 시나리오에 만족이 안 됐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영화 제작 지원 사업도 4~5번 떨어졌다(웃음). 일도 여러 가지로 많았는데 특히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접어야 하나’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데 그런 느낌이 있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는 느낌. 내 안에서 이 영화가 충분히 익지 않았다고 느꼈고, 때가 되면 과일이 익듯 영화도 완성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 영화 속 인물들의 말과 행동은 실제 여고생의 그것처럼 보인다. 여학생들의 미묘한 심리를 어떻게 잘 담아낼 수 있었나. 남학생의 이야기를 그리는 편이 더 쉬웠을 것도 같은데.

“30대 남성으로서 그들의 세계를 잘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컸다. 그래서 취재와 관찰을 열심히 했다. 유튜브에서 브이로그를 많이 봤고, 영화과 입시학원에서 직접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남자아이들을 주인공으로 하지 않은 이유는 … 왜일까. 내 안에 소녀가 살고 있어서 그런가(웃음). 두 여자아이를 떠올리며 이야기가 시작됐기 때문에 다른 주인공은 생각하지 않았다.”

- 영화 속에는 거울이 자주 등장한다. 거울 속에 비친 세미의 모습도 여러 번 나온다.

“극중 정자에 걸려 있는 거울은 단원고 주변에서 가져온 것이다. 거울 속 세미라는 인물이 맺혀 있는 것처럼 이곳을 지나던 아이들의 모습이 거울에 한동안 맺혀 있을 수 있었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를 준비하며 단원고 주변 취재를 많이 했고 촬영도 거의 안산에서 했다. 안산은 제가 자란 곳인데 그 공간이 주는 정서가 저에겐 그냥 되게 이상하다. 걸어다니는 사람들이나 나뭇잎만 봐도 이상하다.”

- <너와 나>는 퀴어 영화이기도 하다. 세미와 하은의 사랑은 영화를 이끄는 주된 축이다.

“남녀가 아닌 두 여성 간 사랑이 저에겐 자연스럽고 평범한 일로 느껴진다. 특별히 퀴어의 특이성을 표현하려 한 것도 아니다.”

조현철 감독은 영화 속 꿈과 현실의 경계가 희미하게 느껴지도록 연출했다고 설명했다. 필름영·그린나래미디어 제공

- 대학에서 연출을 전공하고 여러 편의 단편 영화를 연출했지만 배우 활동을 주로 해왔다. 첫 장편 연출이 힘들지는 않았나.

“제일 힘들었던 것은 ‘세상의 거절’이었다(웃음). 영진위 지원 사업에서 계속 떨어졌던 것. 그런데 그런 게 있지 않나. 뭔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보다 보면 끝을 꼭 보고 싶다는 욕망이 생긴다. 이 이야기의 결말을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연출 과정이 특별히 힘들지는 않았다. 스태프들과 배우들도 애정을 가지고 영화를 함께 만들어가는 느낌이었다.”

- 촬영 중 세미 역의 배우 박혜수가 학교폭력 논란에 휩싸였다.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글들만으로 한 사람을 다 알 수는 없지 않나. 저는 제가 직접 경험하고 지켜본 사람이 제게 보여준 모습을 신뢰하기로 했다. 흔들리지 않고 하고자 하는 바대로 했다.”

- 지난해 백상예술대상에서 한 수상 소감이 화제였다. 죽음을 앞둔 아버지 조중래 명지대 명예교수와 세월호 참사 피해자, 고 김용균씨·변희수 하사 등을 언급했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제 주변의 죽음들에 잡아끌렸다. (김용균씨나 변희수 하사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마음 쓰이는 이름들이었고. 그분들의 삶이나 죽음이 저에게 뭔가를 하게 만드는 힘이 됐다. 이야기를 하는 사람으로서 이 사람들을 계속 생각하고 기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아버지는 교통공학 전문가이자 환경운동가였다. 어머니 안일순씨는 여성운동가이면서 소설가다. 큰아버지는 인권운동가였던 고 조영래 변호사다. 지금의 관심사나 철학은 가족들의 영향인가.

“영향을 받았다. 좋은 환경에서 자란 것이 분명하고, 특권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다. 살면서 좋은 친구들도 많았다. 그 친구들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다고 느낀다. 그런데 저는 제가 ‘좋은 사람’ 또는 ‘깨어있는 사람’으로 여겨지는 것이 경계가 된다. 그나마 주변의 고통을 덜어내면서 사는 쪽으로 깃발을 꽂고 가려는 게 아닌가 싶다.”

영화 <너와 나>의 조현철 감독. 필름영·그린나래미디어 제공

- <너와 나>는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인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였다. 이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뵌 적은 없지만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가 의사셨다. 그런데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는 바람에 고문을 많이 당하셨다고 하더라.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저 또한 할아버지와 비슷한 감정을 느낀 것이 아닐까. ‘내가 이 이야기를 기억해야지’라는 마음을 먹었다기보다 기억이 저를 잡아끈 것 같았다.”

- 지난 몇년간 죽음에 관해 많이 생각했다면 지금은 무엇에 가장 관심을 쏟고 있나.

“최근 제주에 한 달 정도 다녀왔다. 인간이 아닌 종, 예를 들면 제주의 숲에 관한 이야기 같은 데 관심이 있다. 제주의 숲과 4·3사건을 엮어나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만 4·3사건이나 제주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기 때문에 증언집을 보면서 머릿속으로 굴려보고 있다.”


☞ ‘D.P.’ 조현철이 백상서 언급한 이들…박길래, 김용균, 세월호 아이들, 그리고 아버지
     https://m.khan.co.kr/culture/culture-general/article/202205081702001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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