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과학기술 투자 전면 중단"…`아연실색` 아르헨티나 과학계
"R&D는 기업이 하면 돼...환경·보건부처도 폐지"
현지 과학계 "어떤 정부도 과학 파괴할 수는 없어"
금융위기와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는 아르헨티나가 22일 대통령 선거를 앞둔 가운데 유력 대선주자가 '정부R&D(연구개발) 투자 중단'을 대선공약으로 제시했다. 이 후보는 환경 및 보건부처를 폐쇄하겠다는 공약도 내놨다. 국내에서도 정부 R&D 예산 삭감이 이슈인 가운데 현지 과학기술계는 해외로의 대탈출밖에 방법이 없다며 아연실색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대선에서는 지난 8월 예비선거 전까지만 해도 무명 정치인이었던 급진 우파 하비에르 밀레이(53) 자유전진당 후보가 바람몰이를 하며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다. 2위 후보와는 10% 넘는 지지율 격차를 벌이고 있다. 밀레이 후보는 파격적인 공약을 쏟아내면서 현지에서 인기를 높여가고 있다. 페소화를 없애고 달러로 대체하겠다, 18개 정부부처를 8개로 줄이겠다, 인플레이션으로 돈벌이하는 중앙은행을 폐쇄하겠다는 등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16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대선을 앞두고 현지 과학기술계의 분위기를 조명했다. 네이처는 최근 한국 정부의 R&D 예산삭감 이슈를 다루기도 했다.
네이처에 따르면 밀레이는 아르헨티나 전역 300개 기관의 연구원 약 1만2000명에게 연구비를 지원하는 국가과학기술연구위원회(CONICET)를 폐쇄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면서 연간 예산 800억 페소(예산책정 당시 약 4억달러·한화 약 5400억원)를 쓰는 국과위(CONICET)를 폐쇄하면 재정 위기 종식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과학기술 분야 연구 투자는 공공 재원이 아닌 민간 재원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네이처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세 번째 경제 규모를 자랑하는 아르헨티나 과학계는 밀레이의 대통령 당선 가능성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지 과학자 단체는 "과학에 대한 국가의 투자 없이는 미래가 없다"는 성명을 내놓으며 목소리를 내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헐링햄국립대학의 물리학자 호르헤 알리아가는 "과학은 예술적 취미가 아니다. 빈곤을 종식시키고 마침내 국가를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며 "국가 투자의 우선순위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밀레이는 아르헨티나 정치에 비교적 최근에 입문한 정치 신인으로, 2021년 하원 의원에 당선됐다. 이전에는 몇몇 기업의 경제 고문을 맡았다. 최근 아르헨티나는 국제통화기금 등 채권단에 수십억 달러의 부채를 지고 연간 인플레이션이 120%가 넘는 상황이다. 인구의 40%가 빈곤에 시달리는 등 경제 혼란을 빚고 있다.
위기 타개를 위해 밀레이는 '과학 민영화'뿐만 아니라 환경부와 보건부를 폐쇄하고 현재의 공공보건 및 교육 시스템을 폐지하는 안을 내놨다. 환경문제에 대해서는 기후변화를 "사회주의 사기"라고 주장하며 환경오염에 대해 매우 관대적인 정책을 시사하고 있다.
밀레이 후보는 대중의 불안을 기회로 지지율을 빠르게 높이고 있다. 한편 경쟁 후보 중 패트리샤 불리치도 정부 지출 삭감을 제안했지만 CONICET을 계속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세르히우 마사 후보는 2032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의 1% 이상을 과학기술에 투자하도록 하는 법에 따라 과학 예산을 늘리겠다고 공약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따르면, 2021년 아르헨티나는 GDP의 약 0.52%를 연구개발에 투자했다. 이는 우리나라의 10분의 1 수준이다.
현지 과학계에서는 밀레이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연구원들이 일자리와 연구비를 찾아 해외로 썰물 빠지듯 나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알리아가 교수는 "연구자들은 능력이 있는 만큼 해외에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다만 과학자를 잃는 것은 국가적 문제"라고 했다.
정부 지원 연구소에서 근무하다 은퇴한 분자·세포생물학자 카를로스 프라시 박사는 "어떤 정부도 과학을 파괴할 수는 없다"면서 "아르헨티나 연구자들이 노벨상을 수상하고, 자체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이 임상시험 막바지 단계에 있으며 원자력발전 기술력도 강한 등 과학적 성과를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나라의 미래이자 희망인 젊은이들을 해외로 잃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10월 대선에서 승리하려면 후보자는 45% 이상의 득표율을 얻거나, 2위 후보보다 10% 포인트 이상 앞서면서 40% 이상을 득표해야 한다. 이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11월 19일 열리는 2차 결선투표에서 1, 2위 득표자가 다시 한번 맞붙게 된다. 안경애기자 naturean@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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