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대폭 증원은 문제 해결 필요조건[포럼]

2023. 10. 18.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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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타임을 놓쳐 사망에 이른 '응급실 뺑뺑이' 보도는 새롭지 않다.

1980년대 초만 해도 전국의 의대는 20개, 졸업생은 2000명 안팎으로, '인구 1000명당 임상의사'는 0.5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는 의사가 아니라 소비자·환자가, 그리고 이들을 보호할 의료정책 당국이 고민할 문제다.

우리의 의대 졸업생 수는 인구 10만 명당 7명(한의사 포함)으로 OECD 평균 14명의 절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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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부 교수

골든타임을 놓쳐 사망에 이른 ‘응급실 뺑뺑이’ 보도는 새롭지 않다. 어린아이를 안고 야간의사를 찾아다니는 엄마의 모습은 주변의 일상이다. 큰 병원 수술실은 ‘불법’인 의사보조인력(PA) 없이는 운영되지 않는다. 농어촌 보건소에는 공중보건의사가 없어지고 있다. 단기적 해결책은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손을 놓을 순 없다. 10년이 걸리더라도 해결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의대 정원의 확대는 문제 해결의 ‘필요조건’이다. 정원 확대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얘기는 물론 아니다.

개도국의 의료제도는 적은 의사 수로 운영된다. 인구층이 젊어 병원을 이용할 환자가 적다. 먹고사는 문제가 급해서 건강 관리는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국가의 역할도 방역 등 공중위생에 치중하고, 치료 중심의 의사를 많이 공급할 여력이 없다. 우리도 못살던 시절은 의사가 많지 않았다. 의과대 수는 물론 입학정원도 적었다. 1980년대 초만 해도 전국의 의대는 20개, 졸업생은 2000명 안팎으로, ‘인구 1000명당 임상의사’는 0.5명에 불과했다. 1980∼1990년대에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의대 수도 급증했다. 2000년에는 의대 40개에 입학생 3000명을 넘어섰다. 하지만 아직 인구 1000명당 임상의사는 1.3명으로, OECD 평균 2.7명의 절반도 안 된다.

2000년, 의약분업 추진으로 소득 감소를 염려한 의사들의 저항이 거셌다. 그러자 정부는 의대 입학정원을 줄이고 편입학을 없앴다. 역사에 남을 졸속정책이다. 3400여 명이던 입학정원은 2006년 3058명까지 줄었다. 인구 대비 의대 졸업생 수는 2008년을 정점으로 15년째 줄고 있다. 반면, 65세 이상 인구는 2000년 7%에서 현재 18%로, 소득은 1만1000달러에서 3만5000달러로 높아졌다. 의료 수요가 급증했다. 배출이 줄어든 의사는 점점 더 구하기 힘들어졌다. 피부미용·성형으로 빠지는 의사가 늘자 필수 의사 부족은 더 심각해졌다. 오지의 지방의료원에는 연봉 4억∼5억 원에도 의사가 가지 않는다.

해결책은 자명하다. 늘어난 의료 수요를 충족시킬 만큼, 그동안 덜 뽑았던 의사 수만큼, 그리고 피부·성형 쪽으로 빠지는 인력만큼 입학정원을 확대하는 것이다. 자명한 대안이 외면되는 것이 지난 10여 년 우리 의료제도의 민낯이었다. 그렇다고 의사들의 ‘사다리 걷어차기’ 요구에 휘둘려 온 정책 당국을 탓하고 있을 한가함은 허용되지 않는다.

일부 의사들은 의사 수를 늘려서는 안 되는 근거로 ‘의사유인수요’ 이론을 내세운다. 하지만 이는 의사가 아니라 소비자·환자가, 그리고 이들을 보호할 의료정책 당국이 고민할 문제다. 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 의사 수가 늘어야 하고, 이를 위한 의료비 증가가 적절하다고 느끼게 되면 마땅히 추가 지불도 할 수 있다. 그 판단은 바로 건강보험료를 내는 국민이 하는 것이다.

우리의 의대 졸업생 수는 인구 10만 명당 7명(한의사 포함)으로 OECD 평균 14명의 절반이다. 2025년 입학생을 1000명 이상 증원해야 2035년부터 조금씩 문제가 해결되기 시작한다. 늘어나는 인원을 지역 고등학교 출신으로 뽑는 등의 보완책을 병행한다면, 문제 해결의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다. 2012년, 2020년처럼 시늉만 하고 물러서는 정부의 모습, 이제는 안 봤으면 한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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