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끝난 뒤 큰 박수 주세요"…한국어로 부탁한 오보이스트 마이어

강애란 2023. 10. 18.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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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가) 끝난 뒤에 박수치지 말아 주세요."

붉은 재킷을 입고 1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국립심포니 오케스트라 정기연주회 무대에 오른 베를린 필하모닉의 스타 오보이스트 알브레히트 마이어(58)는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종이 한 장을 꺼내 들고 마이크를 잡았다.

마이어는 공연에 앞서 국립심포니 측에 관객들에게 설명할 수 있도록 한국어 발음을 적어달라고 요청했고, 음성 파일까지 건네받아 무대 멘트를 준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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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국립심포니 정기 연주회 무대
첫곡은 엘가의 '독백', R.슈트라우스 '오보에 협주곡'의 전주곡으로 연주
오보이스트 알브레히트 마이어 [국립심포니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강애란 기자 = "(연주가) 끝난 뒤에 박수치지 말아 주세요."

붉은 재킷을 입고 1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국립심포니 오케스트라 정기연주회 무대에 오른 베를린 필하모닉의 스타 오보이스트 알브레히트 마이어(58)는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종이 한 장을 꺼내 들고 마이크를 잡았다. 한국어 발음을 영어로 써 둔 악보 뒷장이었다.

마이어가 "여러분, 안뇽하쎄요"라고 서툰 발음으로 인사를 건네자 객석은 환호했다. 베를린 필하모닉 수석 단원, 솔리스트, 실내악 연주자로 세계 무대를 누비는 그가 협연자로 한국 무대에 서는 것은 10년 만이다.

마이어는 간단히 인사를 하는가 싶더니 "첫 곡은 엘가의 '설리러퀴'(Soliloquy), 독백입니다. 연주 시간은 4분입니다"라며 한국어로 이날 연주할 곡을 설명했다.

이어 "오늘 이 곡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보에 협주곡의 전주곡과도 같습니다. 그러니 엘가 곡이 끝난 후에 박수를 치지 말아 주세요"라며 "슈트라우스 협주곡이 다 끝나고 나서 큰 박수를 주시면 정말 행복하고, 감사하겠습니다"라고 부탁했다.

마이어의 설명대로 이날 공연에서는 엘가의 '오보에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독백'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보에 협주곡'이 연달아 연주됐다. 오보에 협주곡도 3악장 구성이지만, 악장 사이를 끊지 않고 마치 하나의 악장으로 연결된 듯 연주했다.

두 곡의 연주가 끝난 뒤에야 객석에서는 박수가 나왔다. 이후 박수 소리가 잦아들자 마이어는 손으로 관객들의 호응을 유도했고, 객석에서는 웃음과 함께 더 큰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국립심포니, 오보이스트 알브레히트 마이어 협연 연주회 [국립심포니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공연이 끝난 뒤 마이어에게 두 곡을 중단 없이 연주하고 싶었던 이유를 묻자 "슈트라우스 작품은 원래 발표하려던 것이 아니라, 손목 연습을 위한 곡이었다"며 "그래서 도입부(서주)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엘가의 곡으로 슈트라우스의 서주를 대신하기에 좋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마이어의 당부 덕분에 이날 연주는 매끄럽게 이어졌다. 연주가 시작되고 한 마디를 지나 곧바로 오보에 독주가 펼쳐지는 슈트라우스의 오보에 협주곡은 쓸쓸하면서도 아름다운 느낌의 엘가의 곡이 앞에 덧붙여지면서 더 빛났다.

무엇보다 이날 공연에서는 마이어의 한국 관객들에 대한 애정이 돋보였다.

클래식 음악 공연에서 해외 연주자가 한국어로 관객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넬 때는 간혹 있지만, 마이어처럼 1분가량 우리말로 소통하는 일은 흔하지 않다. 연주자가 모국어나 영어가 아닌 현지 언어로 말하려면 용기도 필요하고, 시간과 노력도 들여야 한다. 그만큼 관객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한다.

마이어는 공연에 앞서 국립심포니 측에 관객들에게 설명할 수 있도록 한국어 발음을 적어달라고 요청했고, 음성 파일까지 건네받아 무대 멘트를 준비했다고 한다. 그는 공연이 끝난 뒤 열린 사인회에서도 공연장 소등 시간에 쫓기면서까지 관객 한명 한명과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나눴다.

ae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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