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부터 현금화·운영까지 단계별 기준 시급”
아무 코인이나 받아선 안 돼
어디에 쓰였는지 소통과정 필요”
한국 사회의 ‘뜨거운 감자’인 코인(가상자산)이 기부 현장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지만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코인 기부문화가 정착되려면 기부 심사부터 현금화, 기부 프로젝트 운용까지 단계별 운용 기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최근 들어 코인이 로비·청탁·자금세탁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우려가 큰 만큼 기부받을 수 있는 코인의 기준을 사전에 설정하는 과정이 중요해질 것으로 진단했다.
18일 헤럴드경제는 블록체인 기반 기부문화 연구원·회계사·법률가·코인시장 관계자 등 전문가를 대상으로 코인 기부 운영방침에 대해 자문해 다음과 같은 체크리스크를 정리했다. 이들은 ▷기부 심의 ▷가상자산 보관·관리 ▷현금화 과정 ▷회계 처리·영수증 발급 ▷기부 프로젝트 운용 등 5개 단계별로 기부자와 협의하면서 운용방침을 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먼저 전문가들은 어떤 코인을 받는지 반드시 심사 단계에서부터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무 코인이나 받을 게 아니라 소위 ‘상폐’ 가능성을 살펴보고 재단 이미지 등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찍이 코인 기부문화가 활발한 미국 대학들에선 자체 코인 기부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운용하고 있었다. 실제 미국 샌디에이고대학은 비트코인, 이더리움을 포함해 100개로 추려 기부받는 코인을 한정해뒀다. “기부는 수락 즉시 현금화” 원칙을 운용하며 “어떤 이유로든 환불될 수 없다”고 했다.
자체 심의 과정을 진행하는 곳도 있다. 버지니아대학에선 “다양한 가상화폐를 수용할 수 있다”면서도 “다만 규모가 작고 유동성이 작은 가상화폐의 경우 재단은 가상자산거래소인 코인베이스와 협력해 수용 가능한지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이 대학 역시 코인 변동성을 이유로 “우리 기부재단은 가능한 한 빨리 가상화폐를 매도할 것”이라고 알렸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경우, 자산가치 변화를 최소화하기 위해 미국 신용평가사 ‘와이즈 레이팅스’에서 매긴 A, B 등급 이상의 가상자산을 수용하는 기준을 마련해 기부받은 바 있다.
코인을 보관하는 문제 역시 중요하다. 어떤 가상자산거래소를 이용할지, 또 누가 코인을 저장한 지갑을 들고 있을지도 사전에 정해야 한다. 해외 기부재단들은 주로 코인베이스를 이용했으며 국내에선 금융위가 승인한 가상자산사업자에 한해서 기부 코인을 보관, 매매하고 있다. 이번 취재 과정에서 위메이드는 지갑 분실·도난 우려를 반영해 학교 기관과 지갑 위치를 재확인하고 원하는 학교에 한해 ‘확인증’을 발급해 보관 주체를 명확히 하기로 했다.
시장에서 해결해야 할 숙제도 있다. 기관이 법인 명의로 코인을 팔려면 실명 확인한 입출금 계정을 만들어야 하는데 국내 시중은행들이 법인 명의 계좌 확인을 암묵적으로 거부하고 있다고 한다. 업계에선 법인의 자금세탁 우려 등을 고려해 보수적으로 움직인 것으로 보고 있다. 장 연구원은 이 같은 상황을 전하며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경우에도 법인 계좌를 개설하는 데에 상당히 어려움을 겪었고 여러 기관과 소통한 끝에 가상자산거래소 지닥’을 이용할 수 있었다”며 “공익재단이나 공공성이 확인된 기관에 한해서라도 은행과 관계기관들은 협조해줄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전문가는 하루만 지나도 시세가 크게 요동치는 코인 특성상 ‘즉시’ 현금화가 최선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장내에서 시세로 매각할지, 사전에 매도 가격을 확정해 구매자를 정한 장외매매를 채택할지도 정해야 한다. 또 기부금 대비 예상 수수료도 산출하고, 누가 수수료를 부담할지도 기부자와 합의가 필요한 대목이다.
장윤주 연구원은 “기부자에게는 코인을 매도해 현금으로 기부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모금단체 입장에선 가장 용이한 수령방법일 것”라고 밝혔다. 공공회계 실무 경험이 있는 한 회계사는 “만일 현금화가 어렵다면 재단 장부에 코인 기부금을 무형자산으로 분류해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겠다”며 “이를 위해 정부가 가상자산 회계 처리 지침을 조속히 확정해줘야 할 것”이라고 했다.
공공성이 강한 학교와 학계가 코인을 받을 경우 더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예자선 법무법인 광야 변호사는 “아무리 의도가 순수하다고 하더라도 가상자산업계는 코인을 통해 실제로는 돈 한 푼 안 들이고 홍보나 청탁을 할 수 있는 구조”라며 “아무리 대학교육에 쓴다고 하지만 실상은 학생보다 교수들에게 향할 가능성이 크다. 그간 P2P 등 과거 사례를 살펴봐도 기업이 학교에 기부금을 내고 학교는 대학의 이름을 내주면서 제휴나 세미나 등을 열어줬다. 이제 막 업권법이 논의되는 산업의 경우 학계가 더 신중하게 검토하고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기부받은 코인이 어떤 프로젝트에 쓰이는지 소통하는 과정도 필요하다고 했다. 장 연구원은 “코인 기부금이 어디에 쓰이는지 알려주는 소통 채널을 잘 활용한다면 회계정보의 추적보다 기부자단체와 커뮤니케이션이 되고, 자신이 공익활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경험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유혜림·박지영·박혜원 기자
fores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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