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사업 10년 편중’ GS건설, 허윤홍 필두로 ‘오너 체제’ 질적 변화 예고
임병용(61) GS건설 대표이사 부회장이 10년 만에 물러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건설업계 안팎의 눈은 허윤홍(44) 미래혁신대표에게 쏠려 있다. 허창수 회장의 외아들인 허 대표가 수장이 된다면, 이는 전문경영인 체제와의 결별을 뜻하며 동시에 절대적 경영권을 갖는 ‘오너 일가’로의 질적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GS건설은 내부적으로 임 대표의 퇴임 시기를 놓고 조율하고 있다. 인천 검단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 발생 이후 ‘수습 후 퇴임’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논의됐으나, 설계와 시공 과정에서 중대한 결함과 하자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는 등 비난 여론이 커지자 ‘빠른 퇴임’ 쪽으로 가닥이 잡힌 것으로 전해졌다. GS건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임 대표가 올 초부터 지인들에게 ‘명예롭게 퇴직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쳐온 것으로 안다”면서 “하지만 사고가 터지고 여론이 악화하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나가게 되는 모양새가 됐다”고 했다.
다만 임 대표의 퇴임 시기는 현실적으로 국정감사 종료 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철근 누락 사태의 책임자인 임 대표가 ‘중도 하차’하면 책임을 회피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실제 지난 12일 열린 이사회에서는 신규 임원 인사에 대한 논의만 있었을 뿐, 임 대표 퇴임은 안건에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대표이사가 회기 중에 바뀌려면 주주총회를 거쳐야 한다. 임시주총을 연다고 하더라도 형식상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점에서 시일도 필요하다. 임 대표의 임기는 원래 2025년까지였다.
임 대표의 퇴임을 두고 GS건설 안팎에서는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다. 허 대표가 2019년 신사업부문 대표를 맡으면서 GS그룹의 4세 경영이 본격화했다는 해석이 나왔고, 임 대표의 퇴임 가능성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올해 초 철근 누락 사태와는 별개로, 2~3년 전부터 임 대표가 장기간 집권하는데 대한 불만들이 표출돼왔다. 임 대표 임기 10년간 사업 포트폴리오가 주택사업에 편중되면서 이른바 ‘제네콘(Genecon)’이라는 정체성을 잃어버렸다는 비판이 나왔다.
제네콘은 프로젝트 발굴에서부터 기획, 설계, 시공, 유지관리에 이르기까지 공사의 전 과정을 맡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종합건설사를 뜻한다. 건설업계에 오랫동안 종사한 관계자는 “GS건설 입장에서 주택사업은 성과적 측면에서 보면 괜찮은 것이었지만 완전히 다른 시각에서 보면 회사를 망쳐놓은 것일 수도 있다”라고 했다.
사실 임 대표가 주택 사업에 올인하게 된 배경을 보면 2010년대 중반 국내 건설사들이 ‘무리한 해외 저가수주 경쟁’을 하면서 대규모 손실을 떠안게 된 것과 연관이 있다. 임 대표는 2013년 대표이사로 선임됐는데, 당시 GS건설은 아랍에미리트(UAE) 루와이스 정유공장 등 해외사업 부문에서 큰 손실을 봤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검사출신이기도 하지만) 회계사 출신인 임 대표의 눈에는 더욱 엄중한 상황으로 인식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임 대표 임기 동안 플랜트와 인프라 부문 매출 비중은 확연히 줄어들고 건축주택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 실제 지난 10년간 건축주택사업은 단 한번도 영업이익 적자를 기록한 적이 없다.
임 대표에 대한 허 회장의 신임도 두터웠다. 임 대표는 LG구조조정 본부로 입사, LG그룹 회장실 상임 변호사를 맡아 신뢰를 쌓았다. 이후 GS건설에서 경영지원총괄사장(CFO)을 맡았다. 철근 누락 사태로 임 대표가 지난 5월 ‘공식 사과’에 나섰을 때, 업계 안팎에서 임 대표 책임론이 불거졌지만 허 회장이 그를 바로 내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업계에선 허 대표가 GS건설 신임 대표로 취임할 경우, 긴 안목에서 회사의 청사진을 새로 그려나가는 등 ‘책임 경영’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허 대표는 경영관리팀, 플랜트기획팀, 외주기획팀 등 핵심 부서를 두루 경험했다. 또 신사업부문에 대한 이해도가 있다는 점에서 주택 사업 부문에 쏠려있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편할 가능성이 높다. 건설업은 수주를 바탕으로 매출이 나오고 실질적 성과를 거두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외부요인 등 변수가 많다는 점에서 전문경영인 입장에서는 장기적 판단을 하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다.
다만 자칫 오너가 잘못된 판단을 하거나 불법 행위 등을 저질렀을 경우 회사에 미치는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또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서 사고의 최종 책임을 대표에게 묻는다는 점에서 오너가 직격탄을 맞게 될 가능성도 있다. 실제 중대재해법 시행 전후로 건설사 상당수가 전문경영인체제로 전환한 바 있다.
이 밖에 조직 장악력을 확보하고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도 허 대표의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허 대표는 온화하고 유순한 성격으로, 직원들에게도 스스럼없이 대하는 등 소탈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평소 회의석상에서도 자신의 뜻을 강조하기 보다는 주변 사람들 말을 경청하되,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도전해 보는 것에 대해 적극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임 대표 취임 당시 ‘클린(Clean)’을 무척 강조했다고 한다. 건설사도 불법행위 등을 하지 않고 윤리적·도덕적으로 깨끗해야 한다고 천명하면서 강력하게 존재감을 드러냈었다. 자신의 판단을 강조하는 분”이라며 “반면 허 대표는 정반대 스타일이다. 특히 신사업부문 수장이라는 점에서 직원들의 의견을 듣고 뜻대로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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