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지구 병원 폭발…중동 정세 안갯속으로

방성훈 2023. 10. 1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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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지구 병원 공습 최소 500명 사망…이·팔 책임 공방
중동 전역서 反이스라엘 시위…국제사회 규탄 잇따라
가자지구 의료 대응 체계 무력화…인도주의 위기 심화
이란·헤즈볼라 개입 명분 가능성…확전 우려 더 커져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내 병원이 공습으로 폭발해 수백명의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하면서 중동 정세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이란과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전쟁 개입 가능성을 시사한 가운데, 아랍 국가들을 중심으로 미국과 이스라엘을 향한 분노가 확산하며 확전 우려가 더욱 커졌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은 서로 상대방 소행이라며 병원 폭발에 대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17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내 알 아흘리 아랍 병원이 공습을 당해 최소 500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레바논 베이루트 시내에서 시위대가 “이스라엘에 죽음을”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팔레스타인 국기를 흔들고 있다. (사진=AFP)

중동 전역서 反이스라엘 시위…국제사회 규탄 잇따라

17일(현지시간) CNN방송,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지구 보건부는 이날 알 아흘리 아랍 병원이 이스라엘군의 공습을 받아 최소 500명이 숨졌다고 발표했다. 하마스는 “새로운 전쟁범죄”라며 이스라엘을 강력 규탄했다.

이후 이스라엘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선 이스라엘을 비난하고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수반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회동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요르단에서도 시위대가 이스라엘 대사관을 습격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란, 레바논, 튀니지에선 이스라엘뿐 아니라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서방 국가 대사관 앞에서도 반(反)이스라엘 시위가 이어졌다. 이외에도 중동 곳곳에서 이스라엘과 미국 등 서방 국가를 규탄하는 시위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이 때문에 바이든 대통령의 요르단 방문도 취소됐다. 당초 그는 이날 요르단에서 압둘라 2세 국왕, 압델 파타 알시시 이집트 대통령,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 회동할 예정이었으나, 중동 지도자들이 먼저 회동 취소 방침을 밝혔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이슬라믹 지하드의 로켓 발사 실패 때문에 병원이 폭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동안 가자지구에 대한 생필품 공급 중단, 공습 지속 등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며 민간인 피해를 외면해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캐나다, 튀르키예,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이집트, 요르단, 세계보건기구(WHO), 아프리카연합(AU) 등은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프랑스, 유엔 등은 공습 주체를 특정하지 않은 채 민간인을 희생시킨 공격을 비판했다. 이들 국가 및 국제기구는 이번 사태에 대해 “잔인한 학살”이라며 “무방비 상태의 민간인에 대한 극악무도한 범죄”라고 입을 모았다.

미국도 병원 공습이 누구의 소행인지 특정하지 않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병원 폭격에 분노와 슬픔을 느낀다”며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 성명을 발표했지만, 공습 주체와 관련해선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관련 정보를 계속 수집하도록 지시했다”고 했다. CNN은 공습 책임이나, 공습으로 발생한 수백명의 사망자에 대해서는 아직까진 무게를 두지 않고 있다고 평가했다.

17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내 알 아흘리 아랍 병원이 공습을 당한 뒤 환자들이 다른 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사진=AFP)

가자지구 의료 대응 무력화…인도주의 위기 심화

이번 사태로 가자지구 내 의료대응 시스템이 완전히 무력화됐다는 우려 목소리가 나온다. 이미 의약품과 전기, 물, 식량 등이 끊겨 인도주의적 위기가 심각한 상황에서 병원마저 한 곳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가자지구에서 가장 큰 병원인 알 시파 병원의 무함마드 아부 살리마 원장은 “현재 가자지구엔 중환자실, 신생아 집중치료실은 물론 심지어 수술이 필요한 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병원조차 없다”며 “누군가가 폭격으로 죽지 않는다면 의료 서비스 부족으로 죽게 될 것”이라고 토로했다.

또한 그동안 대피소 역할을 해온 병원도 더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아부 살리마 원장은 “(환자들로 가득찬) 병원에서 (공습에) 대피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방위군(IDF)은 병원을 표적으로 삼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유엔과 국경없는의사회 등은 그동안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병원과 구급차 등 의료시설이 타격을 입었다고 계속 지적했다. CNN은 “병원 폭발로 잔해에 깔린 추가 피해자를 비롯해 의료 대응이 마비됨에 따라 앞으로 더 많은 민간인이 목숨을 잃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란·헤즈볼라 개입 명분 가능성…확전 우려 더 커져

중동 정세는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어졌다. 국제 여론이 악화한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지상 병력을 투입해 민간인 희생자가 늘어나면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미국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사태가 이스라엘의 소행으로 확인되면, 앞으로 중동 국가들의 적극적인 협력을 이끌어내기 어려워질 수 있다.

아울러 이란과 레바논 헤즈볼라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전쟁 개입의 명분을 확보할 가능성이 있다. 헤즈볼라는 가자지구 내 병원 폭발 소식이 전해진 뒤 “아랍·이슬람 국가 국민들은 거리로 나와 즉각적인 행동을 취하고, 분노를 표명하고, (각국) 정부에 압력을 가할 것을 촉구한다”며 다른 국가들의 시위를 부추겼다. 아울러 바이든 대통령이 이스라엘을 방문하는 18일은 “전례없는 분노의 날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방성훈 (bang@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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