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고민했지만…잘리지 않는 한 던지고 싶다" 정우람 현역 연장 의지, 조건보다 도전
[OSEN=이상학 기자] KBO리그 투수 최초로 통산 1000경기 등판, 아시아 단일리그 최다 1004경기 등판으로 2023시즌을 마무리한 정우람(38·한화)은 아직 마침표를 찍을 생각이 없다. 조금 더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고 싶다.
정우람은 시즌 최종전이었던 지난 16일 대전 롯데전에서 2-7로 뒤진 9회 마운드에 올랐다. 선두타자 윤동희를 5구 만에 유격수 땅볼 처리한 뒤 다음 투수 장민재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딱 한 타자만 상대하고 교체된 정우람은 1루 덕아웃으로 내려가며 모자를 벗어 관중들에게 인사했다. 왠지 모르게 마지막을 암시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정우람은 아직 은퇴할 생각이 없다. 그는 “선수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 몸 케어를 다시 해서 도전을 계속해볼 생각이다. 내년에도 내 공이나 구위가 마무리, 홀드 투수로 나가기 힘든 상태라면 겸허히 받아들이겠다. 보직은 감독님이 정하시는 것이다. 유니폼을 벗는 날까지 도전을 이어나갈 것이다”고 말했다.
정우람은 올 시즌 52경기(40⅓이닝) 1패8홀드 평균자책점 5.36으로 데뷔 후 가장 저조한 성적을 냈다. KBO리그 역대 최고의 구원투수 중 한 명으로 롱런했지만 성적은 더 이상 나이를 속일 순 없다. 지난 2019년 11월 한화와 체결한 4년 39억원 FA 재계약이 만료됨에 따라 향후 정우람의 거취에 대한 관심도 궁금증을 낳고 있다.
현역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선 FA 신청 여부를 떠나 연봉 같은 계약 조건을 낮춰야 한다. 정우람은 “감수할 게 많다”며 웃은 뒤 “프로 선수라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충분히 알고 있다. 내게 (계약 조건보다) 중요한 것은 하루만이라도 더 유니폼을 입는 것이다. 그런 마음이 있을 때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뿐이다. 선수 생활에 포커스를 맞추고 다시 한 번 제대로 준비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2004년 프로 입단 후 올해까지 20년을 활약한 정우람은 프로야구선수로서 부와 명예, 웬만한 것은 거의 다 이뤘다. 구원왕도 하고, 우승도 하고, 국가대표도 하고, FA 대박으로 큰돈도 손에 쥐었다. 워낙 화려한 커리어를 쌓았기에 당장 은퇴를 해도 미련이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아직 몸에는 선수의 피가 흐른다.
물론 은퇴 고민을 안 한 것도 아니다. “7~8월에 고민을 많이 했다. 나와 비슷한 나이에 은퇴하신 선배들과 많은 얘기를 했는데 ‘단 1%라도 유니폼 입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포기하지 말라’고 하시더라. 좋을 때 그만 하는 것도 좋지만 잘리지 않는 이상 유니폼을 입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나중을 생각하면 후회가 없을 것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는 것이 정우람의 말이다.
1000경기 대기록을 세운 뒤 수많은 축하 연락을 받으면서 “너라면 떳떳해도 된다”는 메시지들이 마음에 크게 와닿았다. 정우람은 “그런 말을 들었을 때 뭔가 고민이 해소된 느낌이었다. 마음이 편해졌다”며 “사실 지금도 여러 생각이 들긴 하는데 가족들이나 구단과 상의를 해야 한다. 지금까지 내 마음은 어느 위치든 상관없이 도전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고 현역 연장 의지를 확고히 했다.
비록 전성기가 지난 정우람이지만 여전히 왼손 투수로서 쓰임새가 있다. 올 시즌에도 좌타자 상대 피안타율은 2할3푼3리로 경쟁력이 있었다. 이름값이 높은 베테랑이지만 스스로 보직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고 후배들과 똑같은 선상에서 경쟁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선수 활용에 있어 코칭스태프도 있는 그대로 평가하면 된다.
무엇보다 후배들에게 존경받는 모범적인 선배로 존재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 이태양은 “나도 이제 베테랑에 접어드는데 볼수록 존경스럽다. 우람이형과 같이 야구 하는 것 자체가 영광이다”고 말했다. 1000경기 달성 기념으로 이태양을 비롯해 고참 선수 8명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반지를 선물할 만큼 팀 내에서 믿고 따르는 선수들이 많다. 후배 박상원은 명품 신발을, 강재민은 순금 한 돈을 따로 선물했다.
정우람은 “생각지도 못한 좋은 선물들을 받아 정말 놀랐다. 후배들이 이렇게까지 나를 생각해줄 줄은 몰랐다. 바라는 것 없이 베풀어주려 했는데 이렇게 잊지 못할 좋은 추억거리를 줘서 고맙다”며 “내년에는 후배들이 더 이상 8~9위가 아니라 5강을 목표로 준비했으면 한다. 충분히 그럴 준비가 돼 있다. 후배들과 같이 유니폼을 입고 잘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바랐다. /waw@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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