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운맛' 신동엽 VS '순한맛' 유재석, 누굴 택하시겠어요?
아이즈 ize 이설(킬럼니스트)
방송에서 음주 장면이 여과 없이 등장한 지는 꽤 오래된 것 같다. 7∼8년 전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음주나 흡연 장면이 상세히 묘사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나오더라도 모자이크 처리됐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이에 대한 시청자의 시선이 매우 관대해졌다. 방송심의와 규제도 느슨해졌다. 특히 술이 심하다. 담배는 미화하거나 조장하지 않아야 한다는 심의규정에 따라 여전히 모자이크 처리되지만 음주 장면은 아예 대놓고 등장한다. 심지어 그 자체가 프로그램의 테마가 돼 버렸다.
TV 방송에서 본격적으로 음주를 보여주기 시작한 것은 2016년 방송된 tvN '인생술집'이라고 할 수 있다. 신동엽, 김희철 등이 MC를 맡아 초청 게스트와 함께 술을 마시며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테이블과 마이크를 놓고 인터뷰하는 토크쇼야 흔했지만 '술상'을 앞에 두고 하는 것은 분명 파격이었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와, 이젠 TV에서 술도 마시면서 하는구나"하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전통적으로 '음주가무'를 좋아하는 민족이라 그런가? 이 음주 토크는 상당한 이목을 끌었다. '취중진담'이라는 말이 있듯, 술을 마시면서 자연스러운 대화가 유도되는 것처럼 보였다. 시청자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진짜로 출연자들의 볼이 빨개지는 것을 보면서 무척 신기해했다.
이후로 수년이 지난 요즘엔 음주 방송이 거의 일상적으로 퍼져 있다. 지상파나 케이블, 종편 등 TV 방송은 물론 유튜브, SNS 등에 관련 콘텐츠가 넘친다. 음주 방송은 '먹방'처럼 일과에 지친 현대인들의 피로를 풀어주는 스트레스 해소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출연자들이 술과 함께 지극히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에서 묘한 위안을 느낀다.
그중에서도 코미디언이자 MC 신동엽이 진행하는 새로운 유튜브 콘텐츠 '짠한 형'은 단연 눈길을 끈다. 우선 제목이 눈에 확 들어온다. '짠한'은 술잔을 부딪치는 행위이기도 하고, 술에 취해 '오징어'가 된 신동엽의 애처로운 모습이기도 하다. 신동엽은 시종일관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치지만, 개인적으론 제작진의 작명 센스에 90점 이상을 주고 싶다.
'짠한 형'은 신동엽의 '주당' 이미지를 영리하면서도 과감하게 활용한 콘텐츠다. 연예계에 소문난 애주가인 신동엽은 마치 물을 만난 듯 그 어느 때보다 펄펄 난다.
'하지원편'과 '이경영+김민종편'이 압권이다. 일반 TV 인터뷰에서도 잘 볼 수 없었던 배우들이 등장해서 정말 갈 데까지 간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미리 짜인 대본은 없다고 해도, 기획 의도가 있고 제작진의 편집이 있을 텐데 자유분방함의 수준이 상상을 초월한다. 신동엽을 비롯한 출연자들이 진짜로 흠뻑 취해서 모든 것을 다 내려놓기 때문이다.
이런 식이다. 하지원편에선 위스키를 섞은 하이볼이 메인 주종으로 나온다. 보조 MC 격인 개그맨 정호철이 쉴 새 없이 하이볼을 제조해 잔을 돌린다. 잔 수가 늘어나고 출연자들의 혀가 꼬인다. 얼굴은 이미 벌겋게 불타오르고 있다. 보는 사람이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우려스럽다. 하지만 취중에도 베테랑 신동엽은 개그 욕심을 잊지 않고 배꼽을 잡게 한다.
이경영과 김민종이 출연한 에피소드에선 술과 관련된 다양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쏟아진다. 영화 '내부자들'에서 이경영이 알몸으로 건배했던 장면에 관한 질문과 대답이 오가고, 이경영은 그 장면의 숨은 비밀을 들려준다. 자연산 송이로 '공사'를 했던 이야기까지 듣다 보면 거의 실신지경에 이른다. '내부자들'의 이 장면은 인터넷 밈으로 퍼지며 더욱 화제를 낳고 있다. 이경영이 건배할 때 동석자들과 "좋았어"를 돌림노래처럼 외치고 다같이 "영차"하며 마시는 장면은 요즘 MZ 세대들이 따라 하는 회식문화가 됐을 정도다. 술을 마시면서 술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풀어놓고, 또 그걸 패러디하니 웃지 않을 수 없다.
'짠한 형'은 지난 8월 초부터 공개됐다. 지금까지 올라온 동영상도 10개 정도다. 그런데 구독자 수는 벌써 63만 명을 넘었다. 증가 속도가 매우 빠르다. 신동엽이 자신의 치부를 먼저 드러내고, 술을 마시다가 매니저에게 번쩍 들려 밴으로 끌려갈 정도로 취하며, 그 와중에 '19금' 토크가 이어지니 눈을 뗄 수 없다. 그야말로 지독한 '매운 맛', '마라 맛'이다.
반면, 유재석의 유튜브 동영상 '핑계고'는 예상대로 '순한 맛'이다.
2022년 10월부터 공개됐다. 신동엽 유튜브보다 먼저 시작했다. 구독자 수도 이미 100만 명을 넘어 140만 명에 이르고 있다.
'핑계고'에는 술 대신 커피와 과자, 라면이 등장한다. 매회 어떤 특정 콘셉트로 장소를 꾸며놓고 게스트를 초청해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는 콘텐츠다. 그저 유재석의 자유롭고 트렌디한 질문, 조세호·양세찬 등 보조 출연자들의 지원 사격, 그리고 메인 게스트의 솔직한 입담이 전부다. 기존 TV 방송에서도 자주 보던 포맷이다. 하지만 대본이 없고, 별다른 형식도 없다는 점에서 다르다. '좋은 사람, 좋은 이야기, 좋은 웃음'이라는 캐치 프레이즈 아래 서로 칭찬하고 덕담하며 시종일관 수다를 떤다.
'공유편'과 '오나라+제시편'이 특히 눈길을 끈다. 공유는 추석 연휴에 찾아간 할머니집처럼 꾸며진 세트에서 편안한 복장으로 근황 토크를 했다. 유재석이 이끌면 조세호와 양세찬이 양념을 더하는 식이었다. 유재석과 공유, 조세호는 평소 헬스클럽에서 만나는 사이다. 이런 개인적인 인연을 소재로 끝도 없는 대화를 1시간 넘게 이어갔다. 심지어 중간에 짜장라면을 직접 끓여 먹었다. 휴일에 놀러간 할머니집에서 가족과 친척들이 벌일 법한 에피소드였다. 그만큼 친숙하고 편안했다. 유튜브치곤 제법 긴 시간의 토크인데도 지루하다는 느낌은 없었다. 게스트와의 폭넓은 인연을 바탕으로, 출연자를 편안하게 리드하는 유재석의 힘이 다시 빛을 발했다.
오나라와 제시의 조합도 매력적이었다. 이번엔 대학축제 매점 콘셉트로 차려놓고 커피에 회오리 감자를 먹으며 출연자간의 소소한 인연을 풀어냈다. 유재석까지 셋은 한 TV 프로그램에서 만난 인연이 있는데, 그 이후로도 서로 선물을 주고받으며 챙기는 사이가 됐다. 역시 50분이 넘게 진행되는 인터뷰였으나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잃지 않았다. 편안하고 순한데 중독성이 있었다.
그래도 굳이 어느 한쪽을 골라야 한다면 필자는 '짠한 형'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핑계고'는 TV에서 보여주던 유재석의 장점을 유튜브에서 더욱 심화시켰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요란을 떨지 않더라도 점잖게 구독자를 끌어모을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하지만 '짠한 형'은 유튜브에 최적화된 소재다. TV 방송에서 혀가 꼬인 발음을 하고, 술에 취해 비틀거렸다면 당장 심의 경고는 물론 시청자들의 항의에 부딪혔을 것이다. 그러나 유튜브에선 그런 일이 일부 용인됐고, 신동엽은 이를 참으로 영리하게 이용한 것 같다. 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신동엽과 함께라면 자기도 모르게 어느새 한 손에 술잔을 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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