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워 킬링 문’, 스코세이지 감독 영화에 대한 물음 [엄형준의 씬세계]
“영화는 끝났다”고 한 스코세이지의 고민 품은 역작
206분 러닝타임… 감각적 즐거움 아닌 사색 요구
미국 원주민에 대한 백인들의 만행은 많은 경우 죄의식 없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자행됐다. 19일 개봉하는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플라워 킬링 문’은 백인이 저지른 범죄를 그들이 어떻게 인식했는지 되짚는다.
영화에 대한 이해는 제목을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영화는 우리나라에 ‘플라워 문’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데이비드 그랜의 ‘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Killers of the flower moon)을 원작으로 한다.
원작의 한 대목으로 영화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플라워 킬링 문’은 오세이지족이 겪은 꽃을 죽이는 달에 관한 이야기이며, 큰 꽃인 백인이 작은 꽃인 원주민을 죽이는 이야기이다.
많은 미국 원주민이 그랬듯 백인들에게 자신들의 땅을 빼앗긴 오세이지족은 쫓기고 쫓겨 오클라호마에 정착했고 이곳에서 석유가 발견되며 부를 얻었지만, 많은 이들이 이를 욕심 낸 백인들에게 죽임을 당한다.
영화 속에서 이 지역을 막후 지배하며 ‘킹’으로 불리는 백인 권력자인 ‘로버트 헤일’(로버트 드 니로)은 군 제대 후 그를 찾아온 조카 ‘어니스트‘(리어나도 디캐프리오)를 앞세워 오세이지족인 ‘몰리 카일리’(릴리 글래드스턴) 집안의 재산을 빼앗으려 한다.
‘헤일’은 하나님의 이름 아래 죄의식 없이 인디언을 속이고 죽이는 마초적이고 인종 차별적인 인물이며, ‘어니스트’는 무지하고 수동적으로 ‘헤일’을 따라가는 추종자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을 친구라고 믿는 ‘몰리’는 살인을 당한 수많은 오세이지족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의미심장하게도 ‘몰리’는 사랑에 빠진 어니스트를 ‘코요테’라고 부른다. ‘어니스트’는 5월을 알리는 울음소리를 내는 짐승이다.
스코세이지 감독에 따르면 ‘플라워 킬링 문’은 권력, 배신, 백인 우월주의에 관한 이야기다. 감독은 “이 비극적인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었다. 국가적 관심을 받지 못했던 이야기”라고 했다. 영화는 백인의 폭력과 방관, 무지를 꼬집는다. 내내 불안한 화음이 깔린 영화는 동시에 오세이지족에 대한 한편의 진혼곡이자 위령제라고도 할 수 있다.
선악을 오가는 ‘헤일’을 마치 평소의 자신이기라도 한 것처럼 표현한 드 니로는 그가 왜 명배우인지를 다시금 확인시켜주고, ‘어니스트’에선 배우와 배역으로서 디캐프리오의 고뇌를 동시에 엿볼 수 있다. 이들과 함께 주목해야 할 배우는 연약함과 강인함을 겸비한 원주민 여성인 ‘카일리’ 역의 글래드스턴이다. 이 영화에 아카데미상을 준다면 글래드스턴이 수상 명단에 충분히 포함될 수 있다.
이 장면은 영화 중 “그들의 시대는 끝났다”는 헤일의 대사와 최근 스코세이지 감독이 “영화 업계는 끝났다”고 말한 남성잡지 GQ와의 인터뷰와 오버랩된다. 스코세이지 감독은 마치 큰 꽃에 생명력을 뺏기고 있는 작은 꽃처럼 깊은 사색을 요구하는 전통적인 방식의 영화가 고사 위기에 처했다고 믿는다. 그가 보기에 ‘마블 시리즈’ 같은 프랜차이즈는 ‘영화’(cinema)가 아니다. 스코세이지 감독은 할리우드 스튜디오가 “더는 큰 예산을 들여 감정이나 생각, 아이디어, 느낌을 개성적으로 표현하는 데 관심이 없다”고 했다. 그는 많은 영화인에게 “우리가 더 강하게 반격해야 한다”며 “사방에서 공격하고 재창조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영화를 구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호소했다.
‘플라워 킬링 문’은 그 자체로 ‘스코세이지식 영화’ 위기의 상징이다. 제작비가 2억달러에 달하는 이 영화는 파라마운트가 제작에 나섰다가 비용과 비상업성 문제로 감독과 갈등을 겪었고, 넷플릭스가 제작 협상에 나섰다가 손을 들었으며, 결국 애플이 제작비를 대며 완성될 수 있었다. 스코세이지 감독은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인물이지만, ‘플라워 킬링 문’은 극장 상영 후 이내 인터넷동영상서비스(OTT)인 ‘애플TV플러스’를 통해 공개될 전망이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껍데기만 화려한 콘텐츠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철학이 녹아있는 느린 템포의 영화는 만드는 것만큼이나 상업적으로 성공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누군가 이 영화를 볼 가치가 있느냐고 묻는다고 “그렇다”고 답할 수 있지만, 재미있느냐고 묻는다면 명쾌한 답을 주긴 힘들다. ‘플라워 킬링 문’은 극장 문을 나선 후 더 많은 걸 생각하게 하지만, 스코세이지 감독이 3시간26분의 러닝타임에 녹여낸 열정은 누군가에겐 과도할 수 있다.
엄형준 선임기자 ti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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