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회 김유정 백일장 통합대상] 낙타 - 산문

홍수현 2023. 10. 18.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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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틀에 넣으려던 반죽을 다시 도마에 던져 내려놓았다.

난 그런 너의 뒤에서 조용히 국수틀에 들어가 네 기숙사비를 들고 뽑아져 나왔다.

너의 인생 속 국수틀은 휘황찬란할 것이다.

그러나 너는 계속해서 새로운 틀을 찍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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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현·서울 금옥여고 2년

국수틀에 넣으려던 반죽을 다시 도마에 던져 내려놓았다. 넌 왜 계속 혼자 다른 길을 가려 해. 오랜만에 집으로 온 너에게 좋은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냥 부모님이 맞추어 놓은 틀에 맞게 살아가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너는 매번 새로운 길을 찾아 발걸음을 돌렸다.

나는 집에서 착한 언니였다. 8살에 몸 아픈 늦둥이 동생인 네가 태어난 뒤 나는 부모님의 칭찬만 찾게 됐다. 부모님의 말이, 내게 어떠하냐 묻는 질문이 좋았다. 그 말을 듣고 그에 맞게 행하면 언제나 내게 미소가 왔고 칭찬이 왔다. 그렇게 나는 자연스레 부모님께 믿음가는 첫째 딸이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부모님의 말씀을 들으며, 몸이 편찮으신 두 분을 대신해 국숫집까지 물려받게 된 나와 달리 너는 매번 새로운 걸 원했다. 예고에 가겠다며 중학교 때 입시 준비를 하던 너는 결국 한 자사고의 기숙사로 들어갔다. 너는 하고 싶은 게 많았다. 뭐 그리 용기가 많은지 부모님과 싸운 수가 열 손가락으로 부족할 정도였다. 난 그런 너의 뒤에서 조용히 국수틀에 들어가 네 기숙사비를 들고 뽑아져 나왔다. 이런 나를 네 삶이라는 육수에 넣은 것은 부모님이었다.

너는 내 외침에 놀라 나를 빤히 쳐다봤다. 나는 다시 반죽을 곱게 펴 국수틀에 넣으며 말했다.

“유학 꼭 가고 싶어?”

내 물음에 너의 표정은 다시 자신만만해졌다. 이번에도 자신은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표정이었다. 어딘가에서 무언가 끓는 소리가 들려왔다. 육수가 끓고 있었다. 뚜껑을 열자 구수한 멸치 육수 냄새가 얼굴을 가득 덮었다. 매일 맡는 진한 냄새에 속이 더부룩해졌다. 내 뒤에 서서 육수 냄새가 오랜만이라며 좋아하는 너와 내가 비교됐다.

문에 걸린 종이 청량한 소리를 내며 울렸다. 정오인 시각에 사람들이 서서히 몰려올 것이었다. 유학에 대한 얘기는 나중에 다시 하자고 말했다.

“내가 유학 비용 지원해 주는 거 당연한 게 아닌 거 알지?”

무거운 뜻이 담긴 말을 별거 아닌 듯 대충 흘리며 뱉었다. 국수 한 그릇 먹고 갈래?라는 질문에 너는 약속이 있다고 했다. 너는 웃으며 오랜만에 봐서 좋았다고, 다음에 또 보자며 손님 의자에 올려놓은 가방을 정리했다. 나는 그런 너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너의 인생 속 국수틀은 휘황찬란할 것이다. 육수의 향도 다양할 것이고, 면의 모양도 제각기일 테지. 하나의 국수틀에서 한 가지의 모양, 맛만 내며 살아온 내 인생이 조금은 씁쓸하게 느껴졌다. 입에서 잘못 우린 육수에서 날 법한 짠맛이 느껴졌다.

너의 뒷모습을 잠시 보다 뒤돌아서서 손님의 국수를 만들었다. 그때 문을 나서던 네가 내게 말했다.

“다음에 오면 시내 가서 데이트나 할까? 언니도 하고픈 거 하고 살아. 언제까지 여기서만 지낼 거야.”

너는 그 말을 하고 미소 한 번 지은 뒤 떠났다. 뒤에서 사장님이라며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저 말이 머리에 박혀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못했다. 내 삶은 그저 부모님이 돌린 국수틀에 들어가 그에 맞는 국수로 만들어지는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너는 계속해서 새로운 틀을 찍어갔다. 29살인 내가 이제와서 새로운 삶을 살 수도 있을까? 9년이나 쓴 국수틀, 이제 바꿀 때도 되었다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머리에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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