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회 김유정 백일장 최우수상] 낙타 - 고등부 산문
복도를 지나가는 아이들이 서로의 귓가에 속삭였다. 야, 저기 쟤가 낙타야. 일순간 아이들의 시선이 한데 모였다. 힐끔대는 눈짓에 내 어깨와 등은 더욱 움츠러들었다. 오래도록 들은 저런 말들이 모여 나는 낙타가 되었다.
최대한 눈에 띄지 않기 위해 한껏 움츠러든 어깨와 굽은 등. 흙먼지가 날리는 사막 같은 운동장 한가운데에 서서 어쩌면 내가 진짜 낙타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학교가 끝나자 아이들은 제각기 학원으로 흩어졌다. 동네에 몇 안 되는 학원에 모인 아이들은 그곳에서 더욱 친해지곤 했다. 나는 그런 아이들을 뒤로 하고 집으로 향했다. 여전히 잔뜩 웅크린 몸을 하고 집으로 들어오는 나를 본 엄마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이리와 앉아보라며 소파를 두드렸다. 그러고는 내게 전단지 한 장을 내밀었다. 우리 동네에 수영장이 생겼다는데 한 번 다녀보는 게 어때? …… 어깨도 좀 필 겸. 잠시 말이 없었던 그 찰나에 느껴지는 엄마의 고민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한층 밝아진 표정으로 수영의 장점에 대해 늘어놓는 엄마의 말을 들으며 전단지를 들여다보았다. 우리 동네의 유일무이 수영장, 오아시스. 손에 쥔 전단지가 조금 구깃해졌다. 무슨 낙타가 수영이야. 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주말 아침, 엄마의 손에 이끌려 온 수영장에서는 새 건물 냄새와 락스 냄새가 폴폴 풍겼다. 커다랗게 걸린 간판 속 오아시스라는 글자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몸에 딱 달라붙는 수영복이 낯설었다. 훤히 드러난 등이 걱정이었지만 오픈 첫날인 덕에 사람이 많지 않다는 사실은 작은 위안이 되었다.
학생부를 가르치는 수영 강사는 내가 수영을 전혀 모른다고 하자 우선 영법부터 알려주겠다며 망설임 없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물을 가로지르며 자유형과 배영 같은 것을 보여주다가, 마지막으로 처음 보는 낯선 몸짓으로 수영해 내가 서 있는 쪽으로 돌아왔다. 팔을 쭉 뻗어 돌리는 어깨는 넓었고 수면 위로 올라오는 곧게 펴져 있었다. 마지막에 보여준 건 뭐냐고 묻자 접영이라고 했다. 그건 얼마나 배워야 할 수 있어요? 내가 다급히 묻자 강사는 웃으며 대답했다. 잘하시는 분들은 보통 삼 개월이면 배울 수 있어요.
생각보다 양팔로 물살을 가르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비록 발차기 연습이 전부였지만, 강사는 내게 말했다. 수영에 소질이 있는 것 같다고, 접영까지 금세 배우겠다고. 접영이 내 몸의 혹을 떼어내 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젖은 머리카락이 채 마르기도 전에 나는 휴대전화를 켜 수영을 검색했다. 그러자 인기순으로 정렬된 동영상들이 보였다. 그런데 가장 위에 보이는 동영상의 제목은 의외였다. ‘바다에서 능숙하게 수영하는 낙타’. 40초가량의 짧은 동영상 속 낙타는 깊은 물 속에서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사막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는 듯이, 여유롭게. 나는 그날 저녁 그 짧은 동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보기를 반복했다.
어느덧 코끝에 맴도는 락스 냄새가 익숙해졌을 때쯤, 나는 더 이상 학교에서 웅크리고 다니지 않으려 노력했다. 학교를 마치고 오아시스에 가기만을 기다리며 버텼다. 낙타는 원래 잘 버티니까. 훗날 멋지게 물살을 가로지르며 수영할 나를 상상하며 지루한 수업을 견뎠다.
머릿속으로 접영 자세를 그려보고 있는데 내 번호를 부르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곧장 대답하지 못하자 아이들은 얼른 발표하라며 나를 채근했다. 떨리는 손을 애써 감추고 발표를 마치자 아이들은 낙타가 웬일이냐며 수군대기 바빴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저 말에 움츠러들지 않았다. 내가 있을 곳은 흙먼지가 날리는 사막이 아니라, 오아시스의 물속이니까. 낙타의 고향은 사실 사막이 아니다. 나는 이제 사막 속 오아시스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낙타가 되었다.
학교가 끝나고 나는 사막에서 걸어 나왔다.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한 걸음 한 걸음씩 걷다 보면 마침내 보일 오아시스를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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