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가 넘쳐난다... 스포츠도 예외가 아니다
한 정당대표의 연설 뒤에 내걸린 현수막에는 '가짜뉴스 근절'이라는 문구가 대문짝만하게 쓰여 있다.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가짜뉴스' 공방전이 펼쳐진다. 지난 4~13일 열린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했던 영화배우 주윤발과 판빙빙은 한때 사망설에 휘말렸었다. 부산국제영화제에 멀쩡하게 등장했으니, 당연히 '가짜뉴스'였다.
문제는 가짜뉴스인지, 진짜뉴스인지 진위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속도전으로 치닫고 있는 언론 환경, 어느 때나 어디에서나 쉽게 접속할 수 있는 인터넷, 온갖 정보가 넘쳐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창작과 조작의 경계를 허물고 있는 인공지능(AI) 등은 가짜뉴스의 분별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여기에 '확증 편향'까지 더하면 가짜뉴스를 '진짜'로 굳게 믿는 현상까지 나온다.
포르투갈의 축구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8·알나스르)는 황당한 '가짜뉴스'에 한두 번도 아니고, 여러 차례 등장했다.
가장 최근 가짜뉴스는 '호날두가 이란을 방문했을 때 한 여성 팬과 포옹하고 머리에 입맞춤했다는 이유로 99대의 태형이 선고됐다'는 것이었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호날두는 지난달 18일 이란 프로축구팀 페르세폴리스와 2023~2024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E조 경기를 위해 이란 테헤란을 방문했을 때, 발로 그림을 그리는 장애인 화가 파타미 하마미를 만나 그림을 선물 받고 포옹을 했다.
그 장면은 구단 SNS를 통해 공유됐는데, 이를 두고 이란 언론 등에서 '호날두를 태형에 처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란에서는 배우자가 아닌 여성과 신체 접촉을 하는 것을 간통죄로 여긴다는 것이 근거였다. 이란 율법 변호사들이 호날두를 법적으로 고소했다는 소식도 더해졌다.
이에 뉴욕포스트는 '호날두가 태형 99대의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고 보도했고, 일부 외신은 이미 이란 사법부가 호날두에게 채찍형을 선고했으며 호날두가 이란에 재입국할 때 형이 집행될 것이라고 구체적인 내용까지 전했다.
이 같은 뉴스가 퍼져나가자, 이란 당국이 진화에 나섰다. 스페인 마드리드 주재 이란 대사관은 SNS를 통해 "근거 없는 주장에 반박해야 하는 것이 화가 난다. 우리는 세계적인 선수에 대한 어떠한 처벌도 강력히 거부한다"라며 "이러한 근거 없는 뉴스의 발표가 억압받는 팔레스타인 등 이슬람 국가에 대한 반인도적 범죄를 일으킬 수 있다"라고 밝혔다.
스페인 언론들은 지난 13일 호날두의 태형 논란은 '가짜뉴스'였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스페인 매체 마르카는 지난달 10일 "모로코 마라케시 외곽에 위치한 호날두의 호텔 페스타나 CR7 마라케시가 모로코 지진 이후 피난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호텔측에서는 "일부 이재민이 호텔 밖이나 로비에 앉아 있었을 수는 있지만 이재민을 수용하지는 않았다. 지진의 영향 때문에 투숙객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나 이재민을 수용한 것은 아니다"라고 바로잡았다.
호날두의 호텔 관련 가짜뉴스는 처음이 아니었다. 호날두가 운영하는 호텔 CR7은 2020년에도 한 차례 가짜뉴스 논란을 겪었다.
마르카 인터넷판은 2020년 3월 14일에도 호날두가 포르투갈 리스본 등지에 있는 자신의 호텔 CR7을 당분간 병원으로 바꿔 운영하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호날두가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자비를 들여 자신의 호텔을 병원으로 바꾸기로 했고, 의료진 급여와 진료비까지 모든 비용을 부담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포르투갈 방송사 TVI의 필리페 카에스타노 기자가 "마르카의 기사는 또 하나의 가짜 뉴스에 불과하다. 왜 사실 확인을 하지 않고 기사를 쓰는지 모르겠다"라고 자신의 SNS에서 주장했다. 이후 마르카는 문제의 인터넷판 기사를 링크한 자사 SNS 게시물을 삭제했다.
호날두는 지난 4월 무살리 알 무암마르 알나스르 회장이 자신에 대해 공개적으로 불만을 터뜨렸다는 가짜뉴스도 만났다. 알나스르 회장이 사우디아라비아 매체인 '아라비아뉴스50'과 인터뷰에서 "내 평생 사기를 두 번 당했다. 처음은 케밥 3개를 시켰는데 2개만 왔던 것이고 두 번째는 호날두 영입에 사인한 것"이라며 분노했다는 내용이 SNS에 떠돌았다. 스페인 매체 '문도 데포르티보'가 이를 보도하면서 마치 사실처럼 알려졌다. 하지만 가짜뉴스였다.
한국이 조별리그 E조 경기를 마치고 키르기스스탄과 16강전을 앞두고 있던 때였다. 한국이 16강전에서 이기면 중국-카타르의 16강전 승자와 대결하는데, 주최국 중국이 한국을 피하기 위해 8강 대진을 변경했다는 것이었다. 여자축구에서 불참국 발생으로 일정 변경 요구와 불공정 논란이 있었고 농구에서는 일정 변경이 실제로 발생한 뒤라서, 충분히 있을 수도 있는 일로 여겨졌다. 몇몇 인터넷 언론은 발빠르게 관련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대한축구협회에 진위 여부를 확인하는 한국 언론 매체의 문의가 이어졌다.
대한축구협회에 전달된 관련 내용은 없었다. 터무니없는 헛소문이었다. 중국은 16강전에서 카타르를 1-0으로 물리친 뒤 지난 1일 한국과 8강전을 예정대로 치렀다. 결과는 한국의 2-0 승리. 한국은 4강전에서 우크라이나에 2-1로 이긴 데 이어 결승전에서도 일본을 2-1로 꺾고 3연속 금메달의 목표를 달성했다.
가짜뉴스는 지난 7월 개봉한 영화 '좋.댓.구'에서 보듯, '좋아요'와 '댓글', '구독'을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 유튜브나 SNS 등을 통해 생산되고 확산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회자되는 가짜뉴스는 인터넷 매체와 신문 방송 등 올드 미디어를 거치면서 사실처럼 포장된다. '빅 마우스'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이와 반대의 흐름으로 가짜뉴스가 펴져나가기도 한다. 김연아의 라이벌이던 아사다 마오(일본)가 한국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거나 한국으로 귀화했다는 등의 가짜뉴스가 이렇게 조회수를 늘리기 위해 생산되고 유통된 대표적인 사례다. 의도하지 않은 오보 등도 '넓은 의미'의 가짜뉴스에 포함된다.
가짜뉴스가 판치는 세상에서 슬기롭게 사는 방법은 무엇일까. 인터넷을 끊고, 휴대폰을 손에서 놓고, 세상과 등지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의심하고 확인하고, 또 의심하고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불통과 불신을 더 키우는 세상이 될 수도 있겠지만.
박정욱 기자 star@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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