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양말’ ‘난생처음 기타’… 사소하지만 더 깊어진 ‘취향 에세이’

박동미 기자 2023. 10. 18.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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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픽팬덤’ 겨냥한 출판가
2017년 시작한 ‘아무튼 시리즈’ 현재 59개 취향 ‘돌풍’
버킷리스트에 도전 ‘난생처음’·24가지 요리 취향 ‘띵’
향수수집 등 ‘경험들’… 잇단 시리즈 성공에 시장 커져
코로나19 거치며 취향 세분화로 저자 진입장벽도 낮아
게티이미지뱅크

부자 되기, 인맥 쌓기를 넘어 ‘나만의 취향 가꾸기’가 새로운 자기 계발이 된 시대. 직접 보고, 먹고, 써 보는 등 특정 관심사와 취향을 ‘파고들어 본’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가 인기다. 2010년대 후반부터 서점가엔 꾸준히 ‘취향 에세이’가 늘었는데, 다양성과 깊이 측면에서 지금은 ‘전성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업계에선 세상과 단절돼 ‘나’에 집중했던 코로나19 시기에 취향이 더 세분화되고, 취미의 종류가 늘어났다고 분석한다. 핵심은 ‘경험’과 ‘토픽’. 특정 ‘토픽’을 직접 체험한 사람들만의 관점과 실용 지식이 담기는 것. 즉, 최근 취향에세이는 삶의 중심이 ‘토픽’에 있고, 책도 이를 기준으로 선택하는 ‘토픽 팬덤’을 겨냥한다.

◇“같은 듯 조금씩 달라”…‘취향’의 탄생 = 취미, 취향, 덕질을 소재로 한 에세이가 일회성 단행본이 아닌 ‘시리즈’ 형태로 본격 출간된 것은 2017년 세 군데 출판사(제철소·위고·코난북스)가 의기투합해 선보인 ‘아무튼’ 시리즈의 성공이 영향을 끼쳤다. ‘아무튼, 피트니스’로 시작해 ‘아무튼, 당근마켓’까지 총 59개의 ‘취향’을 소개하며 신선한 돌풍을 일으켰고, 지금도 국내 ‘취향 에세이’ 시장을 이끌고 있다. 2020년 이후, 그 취향이나 취미가 음식에 특화된 ‘띵’ 시리즈(세미콜론)와 새로운 취미나 삶의 방식을 시도하는 과정을 그린 ‘난생처음’ 시리즈(티라미수 더북)가 나오며 ‘토픽 팬덤’ 시장은 더욱 확장됐다.

라면·카레·짜장면 등 특정 단품 요리를 주제로 지금까지 24개의 음식 취향을 소개한 ‘띵’ 시리즈는 세미콜론 브랜드 전환 시기에 가볍고 일상적인 에세이 붐이 맞물려 일어나 탄생했다. ‘먹방’ 콘텐츠의 유행도 한몫했다. 김지향 세미콜론 부장은 “브랜드 정체성을 살리면서도 대중적인 기획물을 고민했다. ‘음식 덕질’로 가닥이 잡혔다”고 설명했다. ‘난생처음’ 시리즈는 ‘도전’에 초점이 있다. 기타, 서핑, 베이킹, 시골살이 등 누군가의 ‘버킷리스트’를 먼저 실현해 본 이들의 이야기다.

최근 눈길을 끄는 건 논픽션 플랫폼 파이퍼의 ‘경험들’ 시리즈. 온라인 연재 후 종이책을 펴내는데, 도쿄·향수·뮤지컬 등 관심사를 보다 ‘좁고 깊게’ 설정한 게 주효했다. ‘이번 주말의 도쿄’ ‘마법 같은 뮤지컬 생활 안내서’ ‘향수 수집가의 향조 노트’ 세 권을 동시에 선보였는데, 한 달도 안 되어 전부 중쇄를 찍었다. 김하나 파이퍼 대표는 “가장 좁은 영역의 주제라고 여겨진 ‘향수’ 에세이가 가장 빨리 시장 반응을 보이고, 판매 속도도 무척 빠르다”면서 “자기만의 기준을 세우고 풍요롭게 사는 게 진정한 자기계발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난 것 같다”고 분석했다.

◇200∼300쪽 ‘숏폼’…그러나 경험은 짧지 않아요 = 취향 에세이들은 가볍고 작고 얇은 형태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내용의 깊이나, 저자의 경험 밀도는 만만치 않다. 특히, 취미나 취향이 자신의 ‘일’이 되는 ‘운 좋은’ 사람들의 이야기, 즉 ‘덕업일치’의 삶도 ‘토픽’이 된다. ‘일이 삶이 됐다’는 의미로 지어진 문학과지성사의 ‘일이삼’ 시리즈는 지난해 ‘게임기획자의 일’을 선보였고, 올해는 여행이 직업인 여행 작가의 일과 일상을 담은 책을 준비 중이다. 일은 매일 이어진다. 싱긋의 ‘날마다’ 시리즈도 오랜 세월 반복적으로 해 온 ‘일’이 주요 소재. 출판 편집자의 ‘날마다, 출판’ 응급의학과 의사가 쓴 ‘날마다, 응급실’ 등은 일과 나, 그리고 삶이 결코 별개가 아님을, 그 기쁨과 슬픔을 논한다.

종수가 급증하고 있지만, 같은 ‘토픽’도 경험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는 게 ‘취향 에세이’의 장점이기도 하다. 예컨대 요조 작가의 ‘아무튼, 떡볶이’(위고)와 김겨울 작가의 ‘언제나 다음 떡볶이가 기다리고 있지’(띵)는 주제가 겹치지만, 둘 다 독자들의 호응을 얻으며 판매가 순조롭다.

김태형 제철소 대표는 “다른 출판사의 주제와 겹쳐지는 것이나, 지금 유행하는 키워드를 크게 신경 쓰지는 않는다”면서 “내가 궁금한 걸 독자도 읽고 싶겠지 하는 마음으로 책을 만들고, 그게 어느 순간 시대적 키워드로 맞아떨어질 때가 있다”고 전했다. 파이퍼의 김하나 대표 역시 “누구에게나 배울 만한 경험은 있고, 어떤 경험이든 콘텐츠가 될 수 있기에 ‘토픽’은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술, 피트니스, 비건, 도쿄, 향수… 당신의 ‘취향’은? = 그렇다면 어떤 ‘토픽’이 가장 큰 사랑을 받았을까. ‘띵’ 시리즈에서는 가장 대중적인 음식인 라면이나 짜장면을 제치고, ‘엄마의 밥’이 독자들의 선택을 받았다. 고 박완서 작가의 딸인 호원숙 작가가 쓴 ‘엄마의 부엌’이 특별판을 포함해 6쇄를 찍었다. 두 작가의 이름도 한몫했음이 분명하지만, 출판사 내부에선 조금 다르게 해석한다. ‘키워드’의 확장 가능성을 본 것. 취향은 미묘하고 복잡한 것이기 때문이다. 세미콜론은 정이현 작가의 ‘투 포 테이블’ 등 특정 음식뿐 아니라, 음식을 매개로 한 관계 등 다양한 주제도 포함할 예정이다.

‘아무튼’ 시리즈에선 김혼비 작가의 ‘아무튼, 술’을 비롯해 ‘아무튼, 피트니스’ ‘아무튼, 비건’ 등이 스테디셀러다. 파이퍼의 ‘경험들’ 시리즈에선 ‘향수 수집가의 향조 노트’가 가장 인기. 흥미로운 건, 이 책이 저자의 첫 책이라는 점인데, 파이퍼뿐 아니라, ‘취향 에세이’는 유독 첫 책으로 쓴 저자가 많다. 한 달에 십수 건에 이를 만큼 출판사에 투고가 많은 것도 이 분야다.

김태형 제철소 대표는 “자기 이야기, 자기가 좋아하는 이야기가 가장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라며 “작가가 되려는 이들이 첫 책으로 취향 에세이를 선호하는 건 자연스럽다”고 말했다. ‘아무튼, 양말’과 ‘아무튼, 싸이월드’가 투고 형식으로 출간된 대표 사례. 이는 소재뿐 아니라 저자도 풍성하다는 의미가 된다. 세미콜론 김 부장은 “시리즈 론칭 때부터 새로운 얼굴 발굴에 역점을 두고 있다. 숨은 덕후, 고수를 찾는 게 관건이다”라고 전했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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