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잃은 소년, 시와 자연으로 위로받다…다큐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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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데뷔작 '벌이 날다'를 시작으로 예술영화를 추구해온 민병훈 감독에겐 '작가주의'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민 감독의 신작 '약속'은 시작(詩作)을 통해 상실의 아픔을 치유해나가는 시우와 민 감독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그렇게 영화를 보다 보면 엄마를 잃은 아이의 아픔을 치유한 건 아름다운 자연, 시라고 하는 예술, 그리고 아빠의 사랑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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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1998년 데뷔작 '벌이 날다'를 시작으로 예술영화를 추구해온 민병훈 감독에겐 '작가주의'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그는 5년 전 폐암으로 투병하던 아내 안은미 작가와 함께 제주도로 이사했지만, 안 작가는 얼마 못 가 세상을 떠났다.
당시 아들 시우는 여섯 살이었다.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은 시우는 밤이면 엄마를 보고 싶다며 아빠에게 보채곤 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시우가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슬픈 비'라는 제목의 시를 연습장에서 써놓은 걸 우연히 읽게 된 민 감독은 아들에게 엄마를 생각하며 계속 시를 써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민 감독의 신작 '약속'은 시작(詩作)을 통해 상실의 아픔을 치유해나가는 시우와 민 감독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이 영화는 시우가 초등학교 2학년부터 4학년까지 약 3년에 걸쳐 쓴 스물세 편의 시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시우의 시가 피어난 토양이라고 할 수 있는 소소한 일상이 영상에 담겼다. 민 감독은 아침에 시우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오후엔 숲길을 산책하거나 공놀이를 함께 하며, 밤엔 침대에서 대화한다.
영상 하나하나엔 어딘가 모르게 슬픔이 배어 있지만, 이 영화는 그것을 굳이 터뜨리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담담하게 보여주는 데서 슬픔을 애써 인내하는 게 느껴진다.
러시아에서 영화 촬영을 공부한 민 감독이 수시로 찍은 제주도의 아름다운 자연이 담긴 영상도 이 영화의 중요한 부분을 이룬다.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나뭇잎 사이를 날아다니는 하얀 나비, 비 오는 날 나무에 맺혔다가 떨어지는 빗방울, 눈발이 휘날리는 바다와 같은 것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렇게 영화를 보다 보면 엄마를 잃은 아이의 아픔을 치유한 건 아름다운 자연, 시라고 하는 예술, 그리고 아빠의 사랑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시우가 엄마를 그리며 쓴 시들은 이 영화와 같은 제목의 시집으로도 출간됐다. 시우는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시 쓰는 제주 소년'으로 출연해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주기도 했다.
영화 '약속'은 이달 초 열린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 다큐멘터리 쇼케이스 부문에 초청돼 관객들의 호평을 받았다.
민 감독의 열한 번째 장편이다. 데뷔작 '벌이 날다'로 이탈리아 토리노 영화제에서 대상을 포함한 3관왕을 차지하고 그리스 테살로니키 영화제 은상을 받아 주목받은 그는 '괜찮아, 울지마'(2007), '포도나무를 베어라'(2007), '터치'(2012), '사랑이 이긴다'(2015), '설계자'(2017), '기적'(2020) 등의 작품으로 작가주의 감독의 입지를 굳혔다.
민 감독은 지난 17일 시사회에서 "시우와 저의 이야기가 특별할 수 있지만, 모든 사람은 죽음과 이별을 겪는다는 점에서 보편적인 이야기"라며 "관객들에게 공감과 위로가 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11월 1일 개봉. 83분. 전체 관람가.
ljglor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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