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10억 지원한 전시에 ‘조선 폄하’ 일제 시선 담겼다

노지원 2023. 10. 18.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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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가 약 10억원에 달하는 예산을 지원한 독일 베를린 유명 박물관의 한국 특별전에 전시된 일부 사진 설명에 오류가 포함돼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일본인이 조선 여성을 찍은 '연출 사진'이 독일인이 실제 찍은 사진인 것처럼 전시되고 있어, 일본의 '제국주의적' 시선이 투영된 모습이 조선의 현실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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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훔볼트 포럼 특별전, 여인 사진 설명 오류
“조선, 아들만 상속…가슴 보여주며 아들 탄생 암시”
일본인이 의도적으로 촬영한 스튜디오 사진 가능성
주독일 대한민국대사관 한국문화원이 독일 베를린 훔볼트 포럼(Humboldt Forum)에서 개최한 ‘2023 한국 유물 특별전 아리 아리랑’ 전시 모습. 이 흑백 사진에는 “(1904∼1907년 베이징 주재 독일제국 공사관에 근무한) 아돌프 피셔가 1905년 한국을 약 5주 동안 방문한 계기에 직접 촬영했을 것”이라는 설명이 달렸지만 일본인이 연출 촬영한 뒤 인화해 판매한 ‘한국풍속풍경 사진첩’(1907년 경성사진관 발행)에도 포함된 사진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베를린/노지원 특파원

한국 정부가 약 10억원에 달하는 예산을 지원한 독일 베를린 유명 박물관의 한국 특별전에 전시된 일부 사진 설명에 오류가 포함돼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일본인이 조선 여성을 찍은 ‘연출 사진’이 독일인이 실제 찍은 사진인 것처럼 전시되고 있어, 일본의 ‘제국주의적’ 시선이 투영된 모습이 조선의 현실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커 보인다.

베를린 훔볼트 포럼에 있는 베를린 아시아미술관, 민속학박물관은 12일(현지시각)부터 ‘2023 한국 유물 특별전 아리 아리랑’ 전시회를 열고 있다. 한국 국립중앙박물관이 대여한 회화 4점 및 프로이센문화유산재단의 민속학 박물관이 소장한 조선시대 한국 유물 1800여점 중 120점을 선별해 내년 4월 중순까지 7개월 동안 이어진다.

여기에 투입된 한국 정부 예산만 약 10억원에 달한다. 훔볼트 포럼은 독일 등의 식민주의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겠다는 목표를 내세우며 2021년 9월 문을 열었다.

주독일 대한민국대사관 한국문화원이 독일 베를린 훔볼트 포럼(Humboldt Forum)에서 개최한 ‘2023 한국 유물 특별전 아리 아리랑’ 전시에 포함된 ‘물 긷는 여인’(Water Bearer)이라는 제목이 달린 흑백 사진에는 “(1904∼1907년 베이징 주재 독일제국 공사관에 근무한) 아돌프 피셔가 1905년 한국을 약 5주 동안 방문한 계기에 직접 촬영했을 것”이라는 설명이 달려 있다. 이 사진에는 “자랑스러운 엄마들”이라면서 “조선시대 중반부터 오직 아들만 상속받을 수 있었고 가족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게 여성들이 특히 아들을 낳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이유다. 하층민 여성들은 모유 수유를 위해 노출된 자신의 가슴을 보여주면서 아들의 탄생을 암시했다”라는 해설이 달려 있다. 베를린/노지원 특파원

전시에 포함된 사진 가운데는 물동이를 지고 가슴을 내놓은 ‘물 긷는 여인’(Water Bearer)이라는 제목이 달린 흑백 사진이 있다. “(1904∼1907년 베이징 주재 독일제국 공사관에 근무한) 아돌프 피셔가 1905년 한국을 약 5주 동안 방문한 계기에 직접 촬영했을 것”이라는 소개와 “조선시대 중반부터 오직 아들만 상속받을 수 있었고 가족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게 여성들이 특히 아들을 낳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이유다. 하층민 여성들은 모유 수유를 위해 노출된 자신의 가슴을 보여주면서 아들의 탄생을 암시했다”라는 해설이 달려 있다.

하지만 이 사진은 피셔가 아니라 1900년대 초반 일본인이 연출한 사진일 가능성이 높다. 1907년 경성사진관·일한서방이 펴낸 ‘한국풍속풍경 사진첩’에 해당 사진이 포함돼 있는 것은 물론, 이 사진의 ‘모델’로 추정되는 여성이 해당 사진첩에서 가슴을 드러낸 채로 양반과 서민 복장 등을 하고 여러 차례 등장하기 때문이다.

일본인이 조선 여성을 ‘대상화’하는 동시에 조선 문화가 ‘열등하다’는 것을 암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촬영한 연출 사진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2005년 ‘조선에서 온 사진엽서’라는 책을 펴낸 권혁희 강원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이 사진은 일본인 사진관들의 조선 풍속 사진”이라며 “여러 가지 사진을 촬영한 뒤 인화해서 주로 외국인에게 수집용으로 판매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물 긷는 여성 사진의 뒤쪽으로 화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스튜디오에서 작업한 것으로 보인다”라며 “장옷(쓰개치마)을 입은 (또 다른) 사진도 스튜디오 촬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훔볼트 포럼. 주독 한국문화원 제공

오직 아들만 상속받았다는 해석도 정확하지 않다. 권내현 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조선은 중기가 아닌 후기인 17세기 후반에 상속에서 아들, 딸 차이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그 이전엔 철저한 균분 상속이었다”며 “이후에도 딸들이 차별을 받더라도 상속은 계속 이뤄졌다”고 짚었다.

그 밖에 1차 세계 대전 중 독일 포로수용소에 잡혀 있던 한국인 전쟁 포로가 부른 ‘아리랑’ 노래 녹음이 “인기 있는 한국 민요”로 소개돼 배경음악으로 흐르는 점, 일본 여성의 머리 장식인으로 추정되는 유물이 한국 비녀로 소개되는 등 여러 문제와 오류가 발견됐다.

이번 전시를 총괄한 주체는 훔볼트 포럼 한국관의 큐레이터와 베를린 아시아미술관 및 민속학박물관이지만, 주독 한국대사관 한국문화관이 전시 예산을 대고 큐레이터 채용에 참여하는 등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

한겨레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한국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문체부가 훔볼트 포럼 내 한국관 운영을 지원하기 위해 들이는 돈은 총 9억2천200만원이다. 특히 전시를 담당한 한국관 전담 큐레이터의 3년 치 임금을 한국 정부가 대고 있다. 김경협 의원은 “대사관과 한국문화원은 즉각 책임을 지고 박물관에 문제제기를 하고 지원 사업 전면 재검토에 나서야 할 것”이라 말했다.

베를린/노지원 특파원

z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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