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순 칼럼] 절대반지의 저주
이진순 | 재단법인 와글 이사장
“모든 반지를 지배하고 찾아내며, 모든 반지를 불러모아 암흑에 가두는 하나의 반지.”
톨킨의 판타지 소설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절대반지에 새겨진 비밀 문구이다. 톨킨은 1차대전에 참전해 처참한 살육의 현장을 목도하고 그 체험을 토대로 이 소설을 썼다. 기관총이 난사되는 참호전에서 목숨은 낙엽처럼 부질없고, 빗물과 핏물이 범벅된 죽음의 늪에는 눈을 감지 못한 주검들이 피아 구분 없이 엉겨 있었다. 혼돈의 생지옥을 만드는 인간의 탐욕을 그는 소설에서 ‘절대반지’로 형상화했다. 강력한 초월적 능력과 함께 타락과 파멸을 부추기는 악령의 힘. 절대반지는 절대권력이다.
통치자가 언론을 장악하려는 욕망은 절대반지의 유혹처럼 강렬하고 파괴적이다. 사람들의 말과 글을 지배하고 통제한다는 것은 다른 모든 권력을 순치시키는 절대권력의 완결판이자 스스로 파국을 부르는 독배와 같다. 언론통제라는 절대반지의 권력을 휘두른 통치자들 모두 권력의 정점을 찍고 또 그로 인해 몰락했다.
박정희 정권은 유신 시절 긴급조치 1호와 9호로 ‘유언비어를 날조·유포하거나 사실을 왜곡·전파하는 행위’를 15년 이하 1년 이상의 징역으로 처벌했다. “자주국방은 말뿐이다. 박정희가 독재를 한다”고 푸념한 퇴역 장교, “이후락이 돈을 빼돌려 스위스은행에 예금하고 대통령에게 정치자금으로 제공한다”고 말한 청년이 유언비어 유포죄로 징역을 살았다. 이들은 40여년이 지난 뒤 재심을 통해 무죄판결을 받았다.
전두환 정권은 1983년 전기통신기본법을 제정하면서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전기통신설비에 의하여 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한 자’를 처벌하도록 했다. 이명박 정권하의 서울중앙지검은 2009년 이 조항을 적용해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박대성)를 기소했지만 무죄가 선고되었고 평범한 시민의 경제 전망에 벌벌 떤 정부기관만 희대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유언비어 유포죄(긴급조치 제1호와 제9호), 국가모독죄(형법 제104조의2), 불온통신 규정(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 허위통신죄(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제1항)에 대해서 그간 헌법재판소는 차례차례 위헌 결정을 내렸다. 강력한 법과 검열로 국민의 입단속 글단속을 하겠다는 통치자의 발상은 일종의 망상일 뿐, 명분도 실효성도 없어 권력의 치부만 드러낼 뿐이다.
그런데 다시금 절대반지의 악령이 되살아나는 것일까? 정부, 여당, 검찰 등 국가기관이 총동원된 가짜뉴스와의 전쟁으로 언론이 초토화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허위선동, 가짜뉴스가 자유 대한민국을 위협”한다고 규정하고 강도 높은 근절 대책을 주문했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는 최근 뉴스타파를 향해 ‘사형에 처해야 할 만큼의 국가반역죄’를 범했다고 했고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은 언론사에 대해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도입을 선언했으며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은 사상 처음 인터넷언론까지 심의 대상으로 포괄하는 변칙적 제재에 착수했다. 고소 고발과 압수수색, 구속과 무더기 해임이 기관총처럼 난사된다.
허위조작 정보의 폐해를 줄이고 피해자의 인권을 지키는 일은 디지털시대 세계 공통의 과제이다. 그러나 지금 벌어지는 가짜뉴스 소탕 작전은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것’을 뛰어넘어 처음부터 ‘초가삼간 태우려고 빈대 핑계를 대는 모양새’이다. 2021년 8월 당시 야당이던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가짜뉴스처벌법’으로 추진하던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현대판 분서갱유’라며 맹렬히 반대했고, 대선 경선을 앞둔 윤석열 예비주자도 기자회견을 자청해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언론재갈법’의 진짜 목적은 ‘(문재인 정부의) 집권연장에 있다’고 성토했다. 반면, 당시 민주당의 대선 유력주자이던 이재명 경기지사는 ‘언론사를 망하게 할 정도로 강력한 징벌을 해야 한다’고 언론중재법 개정 필요성을 역설했다. 권력을 잡았느냐 안 잡았느냐에 따라서 입장이 달라지는 법과 제도는 그 자체로 악법이 될 소지가 크다.
절대권력의 유혹 앞에서는 누구도 자유롭지 않다. 암흑의 군주 사우론은 물론이고 사우론에 대항해서 자신의 나라와 백성을 지키고 싶어하던 충직한 전사 보로미르나 반지원정대를 이끄는 주인공 프로도마저 절대반지를 끼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을 이겨내지 못한다. 절대반지를 제압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무도 소유하지 못하도록 불화산에 던져서 없애버리는 길뿐이다. 누가 권력을 잡든 언론을 내 편으로 만들려는 시도는 불순하고 허망하다. 절대권력을 탐하지 말라. 결과는 파국이다. 그렇게 되기까지 국민으로 살기가 너무 고달파서 하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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