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불로 어둠을 밝힐 것인가, 불에 타 죽을 것인가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열두 번째 장편 영화 ‘오펜하이머’는 관객에게 여러 질문을 던진다. ‘원자폭탄의 아버지’ 오펜하이머는 인간에게 불을 건네고 희생한 프로메테우스인가, 재앙과 고통의 상자를 연 판도라인가.
인류는 왜 아직도 오펜하이머와 과학자들이 만든 핵폭탄 시대를 벗어나지 못하는가.
‘리틀보이’ 이후 전 세계 핵탄두는 1만 개를 넘고, 우리 머리 위로 미사일을 쏘아대는 북한도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다. 핵무기는 폐기해야 하지만 핵무기 없이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딜레마에 갇힌 인류는 이 영화를 어떻게 봐야 할까.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티탄족(族)의 영웅 프로메테우스. 그는 불을 훔쳐 인간에게 가져다준 일로 제우스의 노여움을 사 코카서스의 바위에서 날마다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고통을 받는다. 분노한 제우스는 최초의 여성 판도라를 만들어 프로메테우스의 형제 에피메테우스와 결혼시키면서 '판도라의 상자'를 열게 한다. 질병, 시기, 미움, 탐욕 같은 재앙이 인간 세계에 불어 닥친다.
프로메테우스의 불, 오펜하이머의 원자폭탄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오펜하이머'는 제우스에게서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처럼 물리학에서 양자역학을 훔쳐 인간에게 원자폭탄을 건넨 주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1904~1967)의 전기 영화다. 놀런 감독은 카이 버드와 마틴 셔윈이 25년간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쓴 오펜하이머의 평전을 완벽하게 재구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잘 알려진 것처럼, 오펜하이머는 1945년 원자탄 개발을 진두지휘해 제2차 세계대전을 끝낸 영웅으로 시사주간지 '타임' 표지에 등장한 인물이다. 프로메테우스가 훔쳐다 준 불이 인간의 생존과 번영을 가져왔다면 오펜하이머가 훔쳐다 준 원자폭탄이 종전(終戰)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평전 제목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American Prometheus: The Triumph and Tragedy of J. Robert Oppenheimer)'는 가슴에 와닿는다.매일 삼시 세끼로 생쌀과 육회, 푸성귀를 씹어 먹는 것과 밥 한 공기를 물에 말아 장조림과 데친 양배추를 먹는 장면을 생각해 보라. 지금도 하루의 절반(12시간)을 먹는 데 시간을 보내는 침팬지와 인간을 비교하면 불이 가져다준 '시간의 선물'은 금방 이해가 된다. 화식은 또한 생식보다 더 효율적이다. 생식은 씹어 먹으며 소화시키는 데 화식보다 에너지를 더 쓰지만 인체 흡수력은 더 떨어진다. 생식 다이어트가 회자되는 이유다.
어쨌든 프로메테우스가 건넨 불로 인류는 시간을 벌었고, 그 시간에 과학과 지식을 쌓고 문명을 이루면서 생존을 넘어 안전과 번영의 길로 향했다. 그 번영의 길 위에 과학의 최고 산물인 핵폭탄이 있었다는 건 참 아이러니다. 인간을 위해 희생한 프로메테우스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땅을 치고 한탄할 일이다.
오펜하이머도 이럴 줄 몰랐다. 그는 전쟁이 인간의 삶을 파괴하고 있고,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류의 생존이라고 믿었다. 공산당원은 아니었지만 공산주의 사상에 심취했던 오펜하이머는 1941년 일제의 진주만 침공을 계기로 국가에 대한 헌신을 생각했다. 전쟁의 비극을 빨리 끝내야 한다는 결심을 굳히고는 '자유의 원칙을 지키기 위한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원자폭탄 제조에 열을 올렸다. 당시 많은 사람이 그랬듯 그도 '맨해튼 프로젝트'가 독일 나치를 굴복시킬 거라고 믿었다. 물론 패망한 독일이 아니라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그 위력을 입증했다.
그러나 영광도 잠시, 평전 제목처럼 오펜하이머가 갈망한 '승리(Triumph)'는 곧 '비극(Tragedy)'을 불렀다. 프로메테우스의 불이 판도라의 상자로 이어졌다면, 오펜하이머의 원자폭탄은 수소폭탄 개발과 핵무기 확산으로 이어졌다. 핵무기는 군비 경쟁을 가속화하고 인류에 걷잡을 수 없는 위기를 던진 또 다른 '판도라의 상자'였던 것이다. 상자에 열쇠를 꽂은 오펜하이머는 회한에 잠기며 이렇게 되묻는다.
"우리는 과연 과학이 인간에게 유익하기만 한 것이냐는 질문을 하게 됐다."
인류 생멸 결정할 최후의 판도라 상자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오펜하이머는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며 수소폭탄 개발과 핵무기 확산에 비판의 목소리를 낸다. 미국 공화당 보수 인사들로부터 '소련의 스파이'라는 누명을 쓰기도 했다. 이 대목에서 또다시 시선이 멈춘다. '아, 오펜하이머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나'라는 질문이 날아든다. 오펜하이머가 원자폭탄의 이중성을 깨닫고 성찰하면서 핵무기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취했다고 해도, 그가 애국심이 투철한 과학자라고 해도, 인류에 핵폭탄의 시대를 선사한 인물이라는 점은 바뀌지 않는다.78년이 흐른 2023년 전 세계 핵탄두는 1만 개를 넘는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 전 세계 핵탄두는 1만2512개로, 이 중 9576개가 군사용으로 비축돼 있다. 이는 1년 전과 비교해 86개 증가한 수치다. 세계 핵탄두의 약 90%는 미국과 러시아가 갖고 있다. 연일 우리 머리 위로 미사일 발사 실험에 한창인 북한도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다.
이처럼 오펜하이머의 1945년 '작품'은 우리는 물론 우리의 근심거리이자 인류 생멸을 결정할 최후의 판도라의 상자가 됐다. 불로 어둠을 밝힐 것인지, 불에 타 죽을 것인지는 이제 그 불을 사용하는 인류가 결정해야 할 숙명처럼 다가온다.
인간에게 새로운 세계로 진입할 기회와 함께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고통을 건넨 프로메테우스처럼 위대한 업적과 비극을 동시에 낳은 오펜하이머. 과연 그는 현대판 프로메테우스일까. 놀런 감독은 왜 2023년에 프로메테우스를 앞세웠을까.
영화 '오펜하이머'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며 일어나는 웅장한 핵폭발 슬로모션 장면으로 시작된다. 영화는 세 가지 시간대가 서로 오가며 뒤섞여 진행된다. 하나는 오펜하이머의 케임브리지대학 유학 시절부터 맨해튼 프로젝트가 성공해 모든 찬사를 한 몸에 받는 기본 시간대이고, 다른 하나는 1954년 미국 원자력에너지위원회에서 진행한 '보안 청문회' 장면, 나머지 하나는 1959년 열린 루이스 스트로스(1896~1974) 제독의 인사청문회 장면이다.
‘원자폭탄의 아버지'가 짊어진 성공과 몰락
오펜하이머 전기 영화이니 최대 업적인 '맨해튼 프로젝트' 여정을 담은 것은 당연지사. 승승가도를 달리던 그에게 스파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누명을 씌워 나락으로 떨어뜨린 청문회 이야기도 빠질 수 없다. 놀런 감독은 오펜하이머의 시점을 Fission(핵분열)이라는 소제목으로 조명한다. 영화 초반 오펜하이머는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지도교수 패트릭 블래킷(1897~1974)을 사과로 독살하려 시도한다. 그는 뉴욕에서 성공한 유대인 사업가의 장남으로 태어나 금이야 옥이야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라다가 하버드대 화학과를 3년 만에 졸업하고 의기양양하게 유럽으로 유학 왔다. 영화에서는 달려온 오펜하이머가 누군가 먹으려는 찰나 독사과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으로 살인미수가 유아무야 넘어가지만 실제로는 발각돼 학내에서 큰 이슈가 됐다. 미국에서 날아온 그의 부모가 모든 수단을 동원해 사건은 겨우 무마될 수 있었다. 하마터면 22세의 오펜하이머는 엽기적 살인자가, 블래킷 교수는 1947년 노벨 물리학상도 못 받고 백설공주처럼 독사과로 비명횡사한 학자가 뻔했다.
독일 괴팅겐 대학에서 이론물리학과 양자역학을 접한 오펜하이머는 귀국 후 UC버클리 강단에 섰다. 핵분열에 성공한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며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미국 정부는 히틀러의 과학자들이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신무기를 개발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해 서둘러 원자폭탄을 제조하기 위한 '맨해튼 프로젝트'를 출범한다. 사상이 미심쩍은 오펜하이머였지만 전쟁 종식을 위해 미국 정부는 그를 프로젝트 책임자로 임명한다. 인적이 드믄 뉴멕시코 사막 한복판의 작은 마을 로스앨러모스에 건설된 연구소는 모든 환경시설이 낙후되고 열악했지만 높은 산과 골짜기, 사막으로 에워싸여 비밀 프로젝트를 진행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당시에도 죄 없는 민간인 살상을 우려한 과학자들은 오펜하이머의 행로에 깊은 우려를 표하고 핵무기 저지를 위한 단체 서명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미국 정부는 이 프로젝트에 3년 동안 20만 달러(2020년대 화폐가치로는 약 230억 달러, 약 30조4000억 원)를 아낌없이 투자했으며 전쟁 막바지에는 고용 인구만 13만 명에 이를 정도로 인적·물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에 보답하듯 오펜하이머는 최초의 핵실험인 트리니티를 성공시킨다. 하루아침에 그는 나라를 구한 영웅으로 추앙받게 된다.
1949년 소련이 원자폭탄 개발에 성공한 이후 오펜하이머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는 급변한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오펜하이머에게 톡톡히 망신당한 원자력에너지위원회 의장 루이스 스트로스는 이를 복수하기 위해 그를 소련 간첩으로 몰아 청문회까지 개최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출발한 청문회는 그에게서 공직과 기밀 접근 권한을 박탈한다. 영화 '오펜하이머'는 러닝타임 3시간 동안 오펜하이머라는 인물을 다각도로 최대한 촘촘하게 담아내려 했다.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실존 인물 간의 갈등을 지극히 오펜하이머 중심으로 해석한다. 청문회 과정에서 그와 동고동락했던 과학자들은 두 패로 나뉘어 그를 옹호하든지 비난했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단순히 자신들의 자리 보존을 위해 권력에 영합한 것은 아니다. 오펜하이머의 안하무인 돌출 행동이나 복잡한 사생활에 오만 정이 떨어져 편견 없이 자신들의 의견을 사실 그대로 피력했을 수 있다. 다만 스트로스의 경우는 조작 증거가 명백했다.
사후 55년 만에 '소련 스파이' 혐의 벗어
영화에서는 Fission(핵분열)이라는 흑백 파트로 1959년 상무장관으로 지명된 스트로스의 상원 청문회를 비중 있게 다룬다. 5년 전 자신이 오펜하이머에게 행한 과오가 낱낱이 밝혀진 스트로스는 입각도 못 하고 정치 무대에서 퇴출돼 낙향한다. 명예를 회복한 오펜하이머는 1963년 린든 존슨 대통령으로부터 '엔리코 페르미' 상을 수여받는다. 권위 있는 과학자에게 주는 상이다. 그러나 진정한 그의 명예 회복은 영화 개봉으로 오펜하이머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기 직전인 2022년 12월 미국 정부가 '소련 스파이 의혹을 이유로 원자력 관련 기밀에 대한 오펜하이머의 접근 권한을 차단한 원자력에너지위원회의 1954년 결정을 공식적으로 취소한다'는 행정명령을 내린 것이다. 이로써 오펜하이머는 1967년 사망한 지 55년 만에 '소련 스파이' 혐의를 완전히 벗었다.*‘황승경의 Into the Arte'는 이번 호가 마지막회입니다. 애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황승경
●1976년 서울 출생
●이탈리아 레피체국립음악원 디플럼,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성균관대 공연예술학 박사
●국제오페라단 단장
●前 이탈리아 노베 방송국 리포터, 월간 '영카페' 편집장
●저서 : '3S 보컬트레이닝' '무한한 상상과 놀이의 변주' 外
황승경 공연칼럼니스트·공연예술학 박사 lunapiena7@naver.com
Copyright © 신동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