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더 뛰고, "넓은 집 왜 가" 공무원이 이사 '불허'…토허제 실효성은
[편집자주] 2020년 6월 잠실·대치·청담·삼성동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였다. 2021년 4월에는 압구정·목동·여의도·성수동이 추가로 지정됐다. 이들 지역은 지금까지도 부동산 거래 시 지자체의 허가가 필요하다. 투기 차단에 효과적이었다는 긍정 평가와 사유재산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지적이 맞서는 가운데, 서울시가 3년 만에 규제 완화에 나선다. 지난 3년 간의 정책 효과와 앞으로의 방향성을 짚어본다.
이르면 다음달부터 서울시 토지거래허가구역 내에서도 상가·오피스텔 등 비주거 시설은 허가 없이 거래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그간 최소 1개층을 실사용 하는 조건으로만 허가를 받을 수 있었는데 이같은 규제가 사라지는 셈이다. 반면 아파트, 주거용 오피스텔 등 주거시설의 경우 현행 규제가 그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17일 서울시 등에 따르면 시는 오는 19일부터 시행되는 '부동산거래신고 등에 관한 법률' 개정에 맞춰 토지거래허가구역에 대한 종합적인 재검토에 나선다. 법 시행에 따라 앞으로는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권자가 허가대상자, 허가대상 용도와 지목 등을 특정해 허가구역을 지정할 수 있게 된다.
국토교통부는 이번 법 시행에 맞춰 가이드라인을 재수립할 계획이다. 가이드라인은 토지거래허가구역을 통일된 기준으로 지정·해제하기 위해 마련된 정성·정량 지표인데, 이를 개선하기 위한 연구용역이 진행 중이다. 이번 용역을 통해 허가대상자, 허가대상 용도와 지목을 구분하는 내용이 추가로 담긴다.
국토부 관계자는 "가령 기획부동산 투기가 예상되는 지역이라면 허가대상자를 '법인'으로, 허가대상 지목을 '임야'로 특정해서 해당 토지거래허가구역 내에서는 '법인이 임야를 거래할 때' 허가를 받아야 하도록 규제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이때 지목과 용도 구분은 한국부동산원 통계 관리 시스템에 따라 카테고리화 한다. 지목의 경우 △전 △답 △대 △임야 △공장용지 △기타로 구분하며, 건물용도는 △주거용 △상업업무용 △공업용 △기타건물 △나지로 분류한다. 국토부는 이달 중 관련 용역을 완료하고 재수립된 가이드라인을 지자체에 배포한다는 계획이다.
서울시는 가이드라인을 참고해 허가구역에서 제외할 수 있는 대상지가 있는지 검토한 후 이르면 11월 중 도시계획위원회에 관련 안건을 상정할 예정이다. 용도별 지정을 통해 상업업무용 시설은 제외할 것으로 보인다. 상업업무용 시설의 매입은 시장을 교란시키는 주택 매입과 달리, 투기가 아닌 '투자'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게 시의 판단이다.
반면 투기 우려가 있는 아파트 등 주거용 시설과 재건축 단지 내 상가, 오피스 시설 중 주거용 오피스텔 등은 현행 규제가 그대로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서울시에서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있는 대표 지역은 '국제교류복합지구' 인근인 삼성·청담·대치·잠실동을 비롯, 재건축 개발 이슈가 있는 압구정 아파트지구·여의도 아파트지구·목동택지개발지구·성수전략정비구역 1~4구역 등이다.
규제가 완화될 수도 있다는 소식에 이 지역 상가·상가 오피스 시장은 벌써부터 꿈틀대는 분위기다. 현재 토지거래허가구역 내에서 상가나 오피스텔을 매입하기 위해서는 '자기경영' '자기거주'의 의무를 이행해야 거래 허가를 받을 수 있다. 근린시설이라면 1개층을 실사용 해야 하고 업무시설이나 교육연구시설이라면 전층을 사용해야 한다.
이 때문에 건물주들은 건물을 매수하고도 최소 1개층은 임차인을 들이지 못해 월세를 받을 수 없었다. 자기경영 의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명목상 간판을 달고 내부에 책상 서너개를 둔 채 비워두는 경우가 태반이었다는 전언이다. 매수자가 법인일 경우에는, 대도시에서의 지점 설치로 인한 취득세 중과까지 적용됐다. 허가 유효기간이 3~4개월 밖에 안돼 단기간에 소유권 이전을 위한 명도·잔금 등을 처리해야 하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이유라 원빌딩 이사는 "그간 허가절차 자체가 워낙 부담스럽고 복잡하다보니 거래가 성사되기 쉽지 않았고 강남권에서는 오히려 허가가 필요 없는 신사동, 논현동 건물가격이 많이 뛰는 풍선효과가 나타났다"며 "이번에 규제가 완화되면 허가구역 내에서도 거래가 활성화 될 것으로 기대하는 매도자들이 많다"고 말했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과 강남구 청담동·대치동·삼성동(잠청대삼). 부동산 시장이 과열됐던 때는 가장 높은 곳까지 올랐고, 최근 침체기를 겪은 뒤에는 떨어졌던 가격을 빠르게 회복한 곳이다. 오히려 이 와중에 신고가 거래가 나오는 한국 부동산의 '노른자'다.
국내 부동산 시장이 '격동의 시기'를 겪는 동안, 이 지역들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 있었다. 거래가 불편해졌다. 이 지역에서 집을 사고 팔려면 허락을 받아야 한다. 재건축을 앞둔 낡은 아파트더라도 직접 살아야 하는 실거주 의무도 있다. 실거주자 중심 시장으로 재편한다는 정책의도다. 하지만 같은 지역 안에서 큰집이나 작은집으로 옮기는 등 갈아타기가 필요한 실거주자들까지 불편해진 상황이다.
그럼에도 서울시가 해당지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어놓은 더 큰 목적은 과도한 집값 상승을 막기 위해서다. 서울시는 지난 4월 압구정·여의도·목동·성수(압여목성) 등 4곳에 대해 토지거래허가구역 재지정 결정을 내린데 이어 지난 6월에는 '잠청대삼'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기간을 1년 연장했다. 이 지역들은 적어도 내년까지 토지거래허가구역에 묶인다.
정책의도와 달리 집값은 오히려 더 올랐다. 한국부동산원 '지역별 아파트 중위매매 가격(2020년 6월~2023년 9월)' 자료를 분석한 결과,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8억4000만원에서 8억5000만원으로 1.9% 올랐는데 이 기간 목동이 포함된 양천구는 무려 36.3% 치솟았다. 같은 기간 여의도가 있는 영등포구는 32.9%, 전체 지역의 42%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인 강남구는 28.8%, 잠실을 품고있는 송파구는 24.3% 올랐다. 이 기간 전국 아파트 중위가격은 3억5000만원에서 2023년 9월 3억1700만원으로 오히려 9.6% 내렸다. 서울-지방 사이는 물론, 서울 내에서도 쏠림현상이 더 심화된 것이다.
더구나 서울 핵심지를 중심으로 재건축·재개발 예정지에 수요가 집중되며 쏠림현상은 더 심해진다. 서울시는 2040도시기본계획과 신속통합기획(신통기획)으로 압구정과 여의도, 목동 등 주요 정비사업을 추진중이다. 이 지역에 대규모 초고층 아파트가 들어설것이라는 기대감까지 더해져 가격이 치솟는다.
준공 후 30년이 넘은 노후단지들은 실수요 목적보다는 재건축 이후를 기대하는 투자가 많다. '초상급지'로 분류되는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선 연일 신고가가 속출하는 이유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선 더 많은 자본이 필요한데,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수요자만 접근이 가능한 상태다.
현재 강남구 면적의 약 절반(42%)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 있다. 토지거래허가구역과 바로 맞닿아있는 용산구 한남동이나 서초구 반포동 부동산이 주목받는 '풍선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잠실 파크리오 아파트는 잠실 생활권이면서도 신천동에 포함돼 '갭투자 성지'로 꼽힌다. 토지거래허가구역에 묶인 자치구들과 주민들은 바로 옆 지역과의 형평성 문제를 제기한다.
업계 관계자는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거래 자체가 불편해졌는데 그렇다고 부동산 자체의 매력이 줄어드는건 아니다"며 "그결과 자금력 있는 수요자들만 접근이 가능해지고 가격은 더 오르는 '그들만의 리그'가 생긴 셈"이라고 지적했다.
아파트 등 주거용 시설에 대한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는 요원해보인다. 이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집값 안정화라는 정책 효과가 제한적이고 과도한 재산권 침해와 거래 위축 등 부작용이 더 크다고 진단했다. 차라리 규제를 풀고 서울 핵심 지역에 공급을 활성화해 중장기적으로 집값 안정화를 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17일 서울시 관계자는 향후 주거용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해제 가능성에 대해 "전체적인 부동산 동향과 정부의 정책 등 거시적인 차원에서 두루 살펴봐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오세훈 서울 시장은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 대신 "집값은 문재인 정부 초기 정도로 회귀해야 한다. 서울 아파트값은 더 떨어져야 한다"는 입장을 재차 밝혔다. 대권 도전을 노리고 있는 오 시장 입장에서 부동산 시장 가격 상승 우려에 토지거래허가구역을 해제하는 것은 부담이 될 수 있어 당분간 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높다.
문제는 언제까지 유지할지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은 원래 신도시, 산업단지 등 개발계획이 발표되면 해당 지역의 땅값이 오르기 때문에 가격 급등과 이로 인한 사업 추진이 지체되는 상황을 막기 위한 일시적인 용도의 제도다. 계속 연장되면서 헌법으로 보장된 주거 이전의 자유와 사유재산권을 침해하는 조치라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된다. 실제로 실수요자가 평수를 늘려 이사하기 위해 해당 구청에 허가를 받는데 더 넓은 아파트로 옮길 필요가 없다며 담당 공무원이 불허해 이슈가 된 적도 있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은 최대 5년까지지만 무한반복이 가능하다. 서울시장 명령으로 지정된 허가구역을 국토교통부 장관이 다시 지정하면 기간 연장이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실효성이 제한적인 '과잉규제'라고 지적한다. 박합수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겸임교수는 "재건축·재개발은 집값 급등을 막기 위해서라는 명분이 있지만 국제교류복합지구 조성 때문에 송파구 잠실동, 강남구 삼성동·청담동·대치동의 모든 주택 거래를 제한하는 건 지나친 과잉 행정"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토지거래허가구역을 집값 안정화의 도구를 삼는 것도 제도 취지에 맞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도 집값 상승 가능성이 높은 재건축 등 지역을 세부적으로 분리하는 것도 없이 무차별적인 규제는 바람직한 정책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특히 토지거래허가구역을 유지해도 해당 지역의 집값 상승이 이뤄지고, 해제하더라도 예전처럼 집값 급등의 우려가 낮다는 것도 전문가들이 해제의 필요성을 언급하는 이유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문재인 정부 시절엔 서울뿐 아니라 전국 어디에도 집값이 다 올랐지만, 지금은 그런 시장이 아니다"라면서 "고금리로 인한 집값 상승과 거래가 제한적이고 재건축 시장도 추가 분담금 때문에 진행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재건축은 계속 진행되는 이슈인데 재건축 단지라는 이유로 거래를 제한하는 게 과연 맞는 일인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오히려 해제해 거래를 활성화하고 서울 도심 핵심지에 공급을 활성화하는 것이 중장기적으로 집값 안정화를 위해 긍정적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이창무 한양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는 "전 정권이 그동안 집값이 오른다는 이유로 계속된 규제를 반복하면서 오히려 집값은 뛰고 장기간 공급은 위축됐다"면서 "토지거래허가구역을 풀면 일시적인 가격 상승이 있을 수도 있지만 오히려 시장이 살아나고 정비사업이 속도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집값은 시장 논리에 따라 움직인다"면서 "언젠가는 해제가 필요한 규제인데 거래량이 제한적일 때 해제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핀셋 규제로 지역 전체가 아닌 투기 수요가 높은 일부분만 토지거래허가제로 묶는 방안도 대안으로 제시된다. 토지거래허가제를 정교화해 구역 전체가 아닌 특정 투기를 정조준해 규제할 수 있는 수단을 부여하자는 내용이다.
이소은 기자 luckysso@mt.co.kr 김평화 기자 peace@mt.co.kr 배규민 기자 bk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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