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수-어른 버전의 전쟁 활극 잔혹 농담[시네프리뷰]
2023. 10. 18. 07:34
영화의 폭력 수위는 상당히 높다. 살인병기인 주인공이 자신을 위협하는 독일군의 칼을 뺏어 머리에 꽂아버리는 장면 같은 것들이다. 수위 높은 고어 신이 다수 등장하지만 신통하게도 영화는 마치 뮤직비디오처럼 스타일리시하다.
제목 시수(Sisu)
제작연도 2022
제작국 핀란드
상영시간 91분
장르 액션, 전쟁
감독 얄마리 헬렌더
출연 요르마 톰밀라, 엑셀 헨니, 잭 둘란, 미모사 윌라모, 온니 톰밀라
개봉 2023년 10월 25일
등급 청소년 관람 불가
수입 ㈜도키엔터테인먼트
배급 ㈜이놀미디어
황량한 벌판. 땅을 파는 남자. 폭격기가 하늘을 날고 있지만 개의치 않는다. 마침내 찾아낸 금맥. 금덩어리를 캐 가방에 넣고 말을 타고 귀로에 나선다. 길에서 마주치는 독일 나치 패잔병 무리. 탱크 1대와 2대의 트럭과 보병들, 오토바이로 이뤄져 있다. 자막에 따르면 때는 1944년, 모스크바 휴전협정으로 핀란드를 횡단해 노르웨이로 퇴각하던 독일군들은 소련군과 핀란드군의 추격을 막으려고 초토화 전술로 닥치는 대로 불태우고 죽이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전사(戰史)에 라플란드 전쟁으로 기록돼 있는 나치-핀란드 전쟁이다.
상대를 잘못 만난 나치군인들
무심코 지나치는 남자를 부하가 소총을 쏴 죽이려 하자 장교는 가로막는다. 어차피 죽을 목숨인데 총탄이라도 아끼자는 것. 과연 주인공인 사금 채취업자를 기다리고 있는 건 이미 비적 떼로 변한 다른 독일 패잔병 무리다.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금덩어리에 눈이 돌아간 나치잔당들이 뺏으려는 순간, 남자는 놀라운 실력을 발휘해 그들을 제압한다. 앞서 지나쳤던 SS(슈츠슈타펠·나치 친위대)군 장교 일당은 심상찮게 난사되는 총소리에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고 다시 돌아온다. 서둘러 현장을 떠나려 했으나, 주인공이 타고 있던 말이 대전차지뢰를 밟아 폭사(爆死)한다. 살아남은 주인공이 땅에 흩어진 금덩어리들을 허둥지둥 주워 담는 장면을 독일군 장교가 목격한다. 장교는 순간 판단한다. 전쟁 패배 후 귀환하는 그들을 기다리는 건 전범재판이다. 차라리 저 남자를 죽이고 금덩어리를 취해 각자도생하는 것이 낫다.
귀환은 유보되고 추격전이 시작된다. 탱크와 기관단총에 금 채취용 곡괭이로 맞선 남자. 무모해 보인다. 그런데 이 독일군들, 적을 잘못 골랐다. 현장에 남은 군번줄로 확인한 이 핀란드 남자의 정체는 아타미 코르피로 핀란드 특공대 출신이다. 무전으로 남자의 신원을 확인해준 독일군 장군은 “그는 너희들이 건드리지 말아야 할 유일한 개새끼”라고 말한다. 러시아군에 가족을 몰살당한 뒤 러시아군을 사냥해온 ‘죽음의 1인 부대’로 최소 300명 이상을 몰살시킨 자다. 러시아군 사이에서는 불사신이라는 뜻의 ‘코샤이’라는 별명까지 붙은 자다.
과연 이 남자의 괴력은 놀랍다. 강물 속으로 잠수한 이 남자의 사전엔 ‘익사’란 없다. 그를 잡으러 물속에 들어오는 독일군의 멱을 따고 죽어가는 와중에 목에서 나오는 공기 방울로 산소를 호흡한다. 결국 폐허가 된 주유소 앞에서 잡혀 밧줄에 목을 감아 공중에 매다는 식으로 즉결처형을 당하지만, 이 남자는 총상 입은 자기의 상처에 튀어나온 못을 거는 식으로 목숨을 부지한 뒤 아침이 밝아오자 다시 괴력을 발휘해 비행기를 탈취한다.
1시간 30분짜리 뮤직비디오 같은 액션영화
영화의 폭력 수위는 상당히 높다. 예컨대 살인병기인 주인공이 자신을 위협하는 독일군이 차고 있던 칼을 뺏어 머리에 꽂아버리는 관통 장면 같은 것들이다. 위에서 언급한 자신의 상처에 다시 못을 건다든가, 캐더필더(탱크 바퀴)에 머리가 터지는 장면 등 수위 높은 고어 장면이 다수 등장하지만, 신통하게도 영화는 마치 뮤직비디오처럼 스타일리시하다.
20세기 두 세계대전하면 떠오르는 진흙 구덩이 진지전이나 뼛속까지 사무치는 추위로 고전을 면하지 못했던 모스크바 공방전(1941~1942) 같은 전쟁이 아니라 그냥 깔끔하다. 마치 타란티노 영화에서 과장돼 뿜어져 나오는 피분수처럼 리얼리즘이라기보다 초현실적이다. 어른 버전의 전쟁 활극 잔혹 농담이라고나 할까. 예컨대 앞서 주유소 시퀀스에서 보다 확실한 건 총으로 확인 사살하는 것인데 굳이 목을 매달아 살아날 여지를 만드는 것 같은 장면이 그렇다. 자신의 악당다움을 한껏 뽐내다가 주인공 제압기회를 놓치는 빌런 영화에서 흔하게 나오는 클리셰다. 독일군의 트럭엔 그들이 납치한 여자들이 실려 있다. 이건 그들 패잔병의 ‘악당다움’을 쉽게 만들기 위한 장치리라. 복잡한 복선이나 서브플롯 따위 생각할 거 없다. 스타일리시한 뮤직비디오 같은 1시간 30분짜리 액션영화.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핀란드판 <존 윅> 시리즈를 보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분명 좋아할 사람은 좋아할 영화긴 하다.
소련군을 공포에 떨게 한 전설의 핀란드 스나이퍼 ‘시모 해위해’
영화는 제목 <시수>(Sisu) 뜻풀이를 자막으로 제공하며 시작한다. ‘무시무시한 결단력으로 주먹을 불끈 쥐는 것’ 정도의 뜻으로, 다른 언어로 정확하게 번역하기는 어려운 핀란드 단어라고 한다. 부연해 ‘모든 희망이 사라졌을 때 나타나는 불굴의 용기 같은 것’이라고도 설명한다. 인터넷 영화사이트에 올라온 영화 정보에 따르면 제작과정에서 이 영화에 붙은 가제는 ‘불사신(The Immortal)’이었다.
실제 인터넷에서 핀란드어 ‘시수’를 찾아보면 뜻풀이는 대체로 위의 정의와 비슷하다. 유튜브에 보면 1928년부터 나온 ‘시수’라는 이름의 전통 캔디 광고가 눈길을 끈다. 시수 캔디를 먹은 마초들이 괴력을 발휘해 문제를 해결한다는 내용이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이어져 온 광고다. 물론 이것은 과장이다. 영화의 엔딩크레딧 자막을 보면 ‘영화의 주인공을 비롯해 사건이나 등장인물은 다 허구의 창작이었으며, 영화에 등장한 동물들은 대부분 가이드라인에 따라 학대하지 않고 안전하게 찍었다’는 요지의 설명이 붙어 있다. 요컨대 아타미 코르피는 허구의 인물이다.
현실 전쟁사에서 참조했을 만한 인물은 있다. 시모 해위해(Simo Hyh·사진)라는 핀란드 저격병이다. 그의 활약 시기는 1939년에서 1940년이었다. 이때 핀란드와 소련은 ‘겨울전쟁’을 벌였다. 자료에 따르면 그는 3개월간 최대 542명의 소련군을 사살했다고 나온다(기록에 따라 다르긴 한데 어떤 자료는 최대 602명이라고도 돼 있다). 영화에서 주인공의 설정은 ‘가족을 살해한 것에 대한 앙갚음으로 300명 이상의 소련군을 죽인 불사신’이다. 소련군으로부터 ‘백사신(白死神·White death)’이라는 별명을 얻은 이 전설의 저격병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전역해 시골에서 사냥 등 소일로 보내다가 2002년 향년 9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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