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가 뭘까[편집실에서]
오묘한 책이 나왔습니다. 반성도 아니고, 반박도 아닙니다. 자초지종을 해명하는 것 같기도, 억울함을 호소하는 듯도 합니다. 진짜 원인은 따로 있었다고 항변하더니 책임을 회피할 생각은 없다고 한발 물러섭니다. 도무지 뭘 말하려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여러 주장을 뒤섞어놨습니다. 윽박지르지만 말고 차분히 현상의 본질을 짚어보자며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소재로 내놓은 신간 <부동산과 정치>(오월의봄) 이야깁니다.
저자는 문재인 정권의 부동산 정책을 입안하고 진두지휘한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입니다. 그는 참여정부 때도 관련 비서관으로 재직하며 종합부동산세를 설계하는 등 부동산 정책에 깊숙이 관여했습니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큰 표차로 정권을 내줄 정도로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성적표는 엉망이었습니다. 이명박·박근혜를 거쳐 근 10년 만에 저자는 직위를 높여 다시 화려하게 복귀합니다. 책에는 “뭐가 문제였는지 복기해봤을 테니 그걸 거울삼아 이번에는 제대로 한번 해보라”는 취지로 문재인 정부의 부름을 받았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결과는 그러나… 또 참담한 실패.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같은 잘못을 저질러 지지층 사이에서도 십자포화를 맞고 있는 사람이 지금 이 시점에 ‘정체불명의’ 책을 들고 공론장의 한가운데로 뛰어든 배경은 무엇일까.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 무슨 할 말이 있기는 할까. 답을 찾고자 책을 펼쳐들었습니다. 마지막 장까지 넘겨봤지만 끝내 알 수는 없었습니다.
굳이 이 책의 결론을 끄집어내자면 부동산이라는 분야가 고려할 지점이 이리 많고, 발생 가능한 변수가 한두 가지가 아니니 나라님도 구제 못 한다 정도로 요약됩니다. 역대 정권이 다 그랬답니다. 횡으로는 야당, 시민단체, 언론, 부동산 전문가의 포퓰리즘을 지적합니다. 이는 한국은행, 기획재정부, 이재명과 송영길 등 당시 여당 ‘지도부’를 향해서도 이어집니다. 본질은 전 세계적으로 넘쳐나는 유동성이었는데 근시안적인 세제, 공급, 임대차보호 등에 얽매여 헛다리를 짚는 바람에 갈팡질팡 정책으로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고 자성인지, 핑계인지 모를 진단을 내립니다.
부동산만큼은 자신 있다던 정권 핵심관계자의 ‘참회록’은 정부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줍니다. 국가가 나서 그렇게 잡으려고 했는데도 놓쳐버린 것처럼 앞으로도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집값은 주택의 금융화, 금리, 사이클에 따라 요동칠 수밖에 없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가 이렇게 마치 남 얘기하듯 해서야 될 일인가. ‘문재인 정부의 좌절을 통해 한국사회의 과제를 짚어본다’는 공언과 달리 총선을 앞두고 부동산 정책 실패의 책임을 물타기하면서 이에 직·간접적으로 얽혀 있는 전 정권 관계자들의 정치적 재기를 모색하려는 전략의 일환으로 탄생한 책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권재현 편집장 jaynew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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