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사나이' SSG 김태훈, 미련 없이 정든 마운드 내려왔다
"이젠 이런 자리가 다시는 안 오겠죠"
프로야구 SSG 랜더스 좌완 김태훈이 여운 가득한 눈으로 정든 그라운드, 마운드, 더그아웃을 훑었다. 선수로서 기자의 질문을 받는 마지막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고교 시절 퍼펙트게임을 기록하며 한국 야구의 유망주로 기대를 받았던 김태훈. 프로 생활 15시즌 동안 한번도 팀을 옮기지 않고 SSG에서만 '원 클럽맨'으로 활약했다.
총 302경기에서 마운드에 올라 18승 64홀드 326탈삼진을 기록한 김태훈. 특히 그의 2018시즌을 기억하는 팬들이 많다. 불펜의 주축으로 맹활약하며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어서다.
그런 그가 많은 추억이 담겼을 마운드를 떠나 글러브를 벗기로 마음먹었다. 김태훈은 17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취재진과 만나 "2군에 오랜 기간 있다 보니 많은 생각이 들었다. 좋은 후배들이 많아서 이제 경쟁력이 떨어지겠다고 느꼈다"며 은퇴를 결심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1990년생 33살. 김태훈의 은퇴는 아직 이른 감이 없진 않다. 1983년생 40살 고효준, 1984년생 39살 노경은, 1988년생 35살 김광현까지 SSG 투수들 중 김태훈보다 나이 많은 형들도 아직 마운드에서 건재하기 때문이다. 아쉬운 마음은 전혀 없을까.
김태훈은 오히려 "후련하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김태훈은 "효준이 형이나 경은이 형이나 광현이 형은 워낙 아직까지도 구위가 좋은 선수들"이라며 "대단한 선수들이라서 존경스럽다"고 경의를 표했다.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다"는 김태훈은 자신의 결정에 대한 미련을 보이진 않았다. "프로야구에서 할 건 다 해본 것 같다. 항상 열심히 해서 아쉬운 건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제 벽에 부딪혀서 깔끔하게 그만하기로 했다"고 재차 은퇴 이유를 설명했다.
김태훈은 지난달 23일 퓨처스(2군) 리그에서 현역 마지막 공식 경기에 등판했다. 그의 은퇴 경기였던 것이다. 김태훈은 그 경기를 "오늘 진짜 한번 죽어보자"는 마음으로 임했다고 한다. "팔 생각 안 하고 전력으로 던졌더니 구속이 145km까지 나왔다"며 당시를 돌이킨 김태훈은 "은퇴 번복을 순간 고민했는데 이미 후배들이 은퇴식을 하려고 맥주를 부어버려서 마음을 접었다"고 유쾌한 웃음을 지었다.
현재도 나쁘지 않은 팔 상태라고는 하지만, 김태훈은 "그냥 던지면 되긴 하는데, 풀 타임은 힘들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태훈은 선수로서 야구 인생을 끝낸 뒤, 후배 양성에 전념할 생각이라고 한다. 김태훈은 "대한민국 야구 발전을 위해 인천에서 야구 후배들을 양성하기 위한 레슨을 시작할 것"이라고 계획을 밝혔다. 올 시즌 2군 경기를 뛰면서부터 은퇴 후의 삶을 구상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김태훈은 선수 시절 어떤 순간을 가장 기억하고 싶을까. 김태훈은 "고교 야구 퍼펙트, 그리고 한국 시리즈 우승"라고 즉답했다.
인창고등학교 출신 김태훈은 고교 시절이던 지난 2008년 제6회 미추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 출전해 2회전 제6경기 부경고와 경기에서 무려 삼진을 15개나 잡으며 퍼펙트게임을 기록했다. 당시 기록으로 대회 특별상도 수상한 바 있다.
프로 선수로서는 2018년 한국시리즈 우승의 주역이었다. 당시 포스트 시즌에서 플레이오프와 한국시리즈 도합 8경기에 마운드에 올라 11이닝 동안 허용한 점수는 단 1개다. 이듬해인 2019년에도 '서태훈 트리오'라 불리는 SSG의 필승조로 활약했다. 당시 27홀드를 기록하며 든든한 불펜 자원이었다.
선배 김광현도 그의 은퇴를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김광현은 "무엇보다 태훈이한테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전해주고 싶다. 첫 좌완 후배로서 오랫동안 함께 팀에서 추억도 많이 쌓았고, 여러 가지 장점 많은 선수인데 이렇게 은퇴하게 되어 아쉽다"며 "앞으로 제2의 인생에도 좋은 일만 있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후배를 떠나보냈다.
SSG 1990년생 친구 하재훈도 이날 경기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김태훈은 항상 밝았던 친구"라며 운을 뗐다. 그러면서 "언제나 열심히 하고 후배들을 잘 챙기는 분위기 메이커였다"고 기억했다. "잔부상이 많아서 거기에 김태훈이 휘청거렸다. 좋은 선수였는데…"라며 아쉬운 감정도 덧붙였다.
"꾸준하지 못했던 것"이 가장 아쉽다고 밝힌 김태훈은 "이제 이런 자리가 다신 안 올 것"이라며 "그래도 마지막까지 이렇게 관심을 많이 가져주셔서 감사하다"고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그는 "유쾌하고 밝았던 선수, 에너지 넘치는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바랐다.
김태훈은 마운드를 떠나 한국 야구 발전을 위한 야구 선생님으로, 남편이자 가장으로, 한 아이의 아버지로 제2의 인생을 약속했다. 그를 떠나보내는 모든 이들이 아쉬운 마음이지만, 새로 펼쳐질 앞날을 응원받으며 화려하게 선수 인생을 끝냈다.
인천=CBS노컷뉴스 이우섭 기자 woosubwaysandwiches@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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