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밭춘추] 나의 린드그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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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수거일에 이웃 세대가 내놓은 어린이책 묶음을 보면 기웃거리게 된다.
말짱한 책들이 버려진다는 것이 안타깝고, 혹여 읽을거리가 있지 않을까 종종 책더미를 들추거나 헤집어 놓는다.
번안 동화에 의존했던 독서 체험은 열악했고 여전한 결핍에 곤궁했던 성장기를 거쳐 어른이 돼서야 비로소 나는 동화책을 제대로 새롭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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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수거일에 이웃 세대가 내놓은 어린이책 묶음을 보면 기웃거리게 된다. 말짱한 책들이 버려진다는 것이 안타깝고, 혹여 읽을거리가 있지 않을까 종종 책더미를 들추거나 헤집어 놓는다. 내 유년의 독서 환경은 척박했다. 번안 동화에 의존했던 독서 체험은 열악했고 여전한 결핍에 곤궁했던 성장기를 거쳐 어른이 돼서야 비로소 나는 동화책을 제대로 새롭게 읽었다. 동심의 숲에 들어 소롯한 길을 따라 걷는 느낌은 오붓하고 충만했다.
게다가 동화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Astrid Lindgren)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그가 태어난 나라 스웨덴 일부는 백야(白夜) 현상으로 여름에는 한밤중에도 하늘이 희부윰하며 겨울에는 해가 솟아도 이내 어두워진다니 동화적 상상력을 더해 줬다. 기후와 계절의 변화가 지배하는 환경이야말로 삶의 터전이 되는 모태와 같다. 일상의 빛과 어둠은 선과 악의 대결 구도로, 어쩌면 작품을 관통하는 극명한 주제가 됐는지 모른다.
어른이 되는 것이 시시하다는 말괄량이 삐삐와 개구쟁이 에밀이야 말할 나위가 없지만, 사자왕 형제와 사랑에 굶주린 가엾은 고아 소년 미오를 만나고 현실을 이기게 해주는 이야기의 힘을 더욱 믿게 됐다. 특히 병으로 죽음을 앞둔 동생 카알에게 참된 희망을 전해주었던 요나탄 형은 얼마나 늠름했는지 모른다. '땅속에 남는 것은 다만 너의 껍데기뿐이거든. 진짜의 너는 어딘가 전혀 새로운 세계로 날아가는 거'라니! 책 뒷장에 적어놓은 날짜는 책을 만난 첫날로 생일처럼 기억했다.
아이의 현재는 어른의 과거와 같지 않은데도, 성마른 고집과 무력감에 사로잡힐 때 린드그렌 동화를 읽으면서 말랑해진 마음으로 조금은 괜찮은 어른이 될 거라는 용기를 다잡곤 했다. 어린 세계 속에 금기시하던 죽음이나 자유와 모험 같은 덕목이 담긴 문장에 밑줄을 치고 페이지를 접어 도 그지 어를 지으면 마음의 귀가 쫑긋거렸다. 햇솜 같은 구름 사이로 투명한 가을볕이 쏟아져 내리고 있는 오늘, 낭길리마에서 린드그렌 선생님이 웃고 있는 게 분명하다. 하인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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