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4년 마치고 일본으로... 안권수의 네버 엔딩 스토리
#11일 부산 사직야구장. 7회초 두산 정수빈이 때린 파울 타구를 롯데 좌익수 안권수(30)가 펜스까지 쫓아가 슬라이딩 캐치로 아웃카운트를 만들어냈다. 정수빈이 어이없다는 듯 좌익수 쪽을 한참 쳐다봤다. 몸을 사리지 않는 안권수표 야구를 단적으로 보여준 장면. 11일 경기는 롯데의 올 시즌 마지막 홈 경기, 그리고 안권수가 사직 홈 팬들 앞에 서는 마지막 경기였다. 안권수는 경기 후 자신의 이름을 외치는 팬들 앞에서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16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 6-2로 앞선 롯데의 8회초 공격. 타석에 등장한 안권수가 다섯 번째 타석 만에 경기 첫 안타를 뽑아내며 주자를 홈으로 불러들였다. 7대2. 7위 롯데의 정규 시즌 마지막 경기, 마지막 득점이 안권수의 방망이에서 나왔다. 롯데 전준호 코치는 안타를 때린 공을 한화 선수에게 건네받아 더그아웃에 있던 안권수에게 전달했다.
올 시즌 롯데 톱 타자로 활약한 안권수가 16일 경기를 끝으로 한국 야구 4년을 마감하고 20일 일본으로 돌아간다. 재일교포 3세인 그는 한국에서 3년 이상 거주하면 병역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는 현행 병역법의 벽에 부딪혔다. 한때 군 입대도 생각해 봤지만, 가장으로서 일본에 거주하는 아내와 한 살 된 아들을 그냥 놔두긴 어려웠다고 한다. 지난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만난 안권수는 “한국에 처음 도전할 때부터 병역법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다. 원래 일본에서 은퇴하려고 했지만, 수준 높은 리그에서 한번 뛰고 싶은 마음이 있어 도전한 것”이라고 했다. 그가 한국행을 결심한 계기는 바로 5년 전 열린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이다. “아시안게임 때 TV로 한일전을 봤죠. 일본 실업 팀도 수준이 상당한데, 한국이 두 번 다 이기더라고요. 은퇴하려던 생각을 접고 KBO 리그에서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그때 들었습니다. 그래도 진짜 드래프트에서 지명될 거라고는 기대도 안 했어요.”
안권수는 4년 동안 가장 기억에 남은 순간 중 하나로 두산 소속이던 지난해 4월 30일 SSG와 벌인 인천 경기에서 3안타를 때린 것을 꼽았다. “내가 과연 한국에서 야구로 성공할 수 있을지 고민이었어요. 작년에도 못하면 그냥 유니폼을 벗으려고 했죠. 그런데 SSG와 경기하면서 ‘아 내 야구가 통하는구나. 해볼 만하다’고 자신감을 얻게 됐어요.”
2020년 드래프트 99번째로 두산에 지명된 안권수는 2년 동안 타석에 설 기회를 잡지 못했다. 코로나로 리그가 멈춰진 것도 한국 생활 적응을 어렵게 만들었다. 그러다 2022년 3할에 가까운 타율(0.297)을 기록하면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정교한 타격과 주루와 수비에서 몸을 사리지 않는 허슬플레이가 돋보였다. 하지만 병역법이 걸림돌이 돼 지난 시즌 후 일본으로 돌아가려 할 때 롯데의 제의로 1년간 더 그라운드를 누빌 수 있게 됐다. 안권수가 톱 타자로 활약한 롯데는 시즌 초 상위권을 달리며 사직야구장을 함성으로 들끓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의 질주는 부상으로 제동이 걸렸다. 본인이 가장 아쉬운 순간으로 꼽은 때였다.
“4월 말부터 계속 오른쪽 팔꿈치 부분이 아팠어요. 그런데 아시안게임 출전 가능성도 있고 해서 참고 뛰었죠. 통증을 줄이려고 주사를 맞았는데 그게 오히려 상태를 악화시켰어요. 주사를 안 맞았다면 어땠을지… 돌이켜 보면 그때가 가장 후회스러워요.” 롯데는 공교롭게 안권수의 부상과 맞물려 서서히 추락했다. 안권수는 수술 후 재활에 3개월 정도 걸린다는 예상을 깨고 한 달 반 만에 그라운드에 돌아왔다.
“팀이 계속 지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조급해졌어요. 복귀 후 첫 일주일 정도는 통증을 못 느꼈는데, 다시 통증이 생겼어요. 방망이 칠 때 무섭기도 했고, 수비에서도 실수가 나왔어요. 경기를 나갔다 안 나갔다 하니 감도 떨어졌고요. 그러다 9월 중순부터 좀 살아나기 시작했어요. 비록 롯데는 포스트시즌에 나가지 못하지만 후배들이 다 지켜보는 앞에서 열심히 하는 모습, 끝까지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끝까지 전력을 다했습니다.” 야구를 접기엔 아쉬운 만 서른 나이. 그래도 안권수는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다”고 했다.
“사직 마지막 홈 경기 때 팬들과 작별하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많이 흘렸어요. 일본에서 한국에 도착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4년이란 시간이 말 그대로 머릿속에서 휙 하고 스쳐 지나갔습니다. 한국에 와서 야구도 많이 늘었고, 좋은 친구들도 많이 만났습니다. 절대 못 잊을 겁니다.” 안권수는 사직 홈 마지막 경기 때 구단에 요청해 평소 틀던 흥겨운 댄스 음악 대신 이승철의 ‘네버 엔딩 스토리’를 등장곡으로 틀었다. ‘그리워하면 언젠간 만나게 되는 어느 영화와 같은 일들이 이뤄져 가기를~’이란 가사처럼 롯데, 한국 야구에 대한 애정이 절대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마음, 그리고 언젠가는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감을 담았다고 했다.
“한국에서 살면서 일본하고는 다른 문화에 힘들기도 했어요. 최근에도 일본 돌아가는데 연락도 안 하냐고 섭섭하다는 사람이 많아요. 그런데 일본에선 보통 이별해도 ‘어차피 또 만날 건데’라고 하죠. 일단 일본 돌아가서 컨설팅 회사에서 내 남은 인생에 도움이 되도록 공부도 하고, 사람도 많이 만나고, 경험도 많이 쌓을 겁니다. 그리고 한국에 자주 올 겁니다. 올 초에 제 인생을 야구에 비유하면 패배 위기에 몰린 9회말 투아웃이고, 연장전까지 가면 좋겠다고 했어요. 지금은 3볼 2스트라이크. 아직 타석에 서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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