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를 직조하는 직선과 곡선

천소현 2023. 10. 1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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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안미로재단 #카사바트요 #가우디 #바르셀로나현대미술관 #도스팔리요스 #에스티마르

호안미로재단에서는 미처 몰랐던 미로의 미술 언어를 이해할 수 있다

●'미로'에 처음 눈 뜨다

제각각 뻗어 있는 직선과 화살표, 동그라미와 촉수들이 읽히기 시작했다. 호안 미로(Joan Miro, 1893~1983년)의 작품에서 남자와 여자, 별과 태양, 날아가는 새가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호안미로파운데이션 도슨트의 힘이었다. '길고 지루한 시간이 될까 봐, 어차피 들어도 모를까 봐'의 핑계를 버리고 적극적으로 도슨트의 설명에 귀를 기울인 결과 난생 처음 초현실주의 화가이자 조각가, 도예가인 호안 미로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정작 호안 미로 자신은 특정 사조로 규정되기를 거부하고 말년까지 거침없이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도 감동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바르셀로나 호안 미로 파운데이션은 여든이 넘은 화가가 평생 모은 사재를 털어 만든 미술관이다. 가까운 친구이자 아방가르드 건축가인 조셉 루이스 서트가 몬주익 언덕 위에 세운 미술관이 하얗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미술관의 테라스는 바르셀로나 시내가 잘 보이는 전망 명소이기도 하다. 도시는 빠르게 변하지만, 무명 화가들의 현실은 여전하다. 후배들을 육성하고 지원하기 위해 애썼던 노화가의 뜻은 지금도 재단을 통해 거룩하게 이어지고 있다. 아트숍에서 안경집을 구입한 건 물욕이 아니었다. '눈뜸'을 기념하는 나만의 작은 의식이었다.

●줄을 서시오! 곡선으로!

파리에서 밀라노를 거쳐 바르셀로나로 오는 동안 누적되었던 선과 면, 색채를 읽는 경험은 가우디의 건축에서 새로운 경지로 올라간 것 같다. 우선, 카사 바트요(Casa Batllo)의 긴 대기줄이 기다림이 아니라 100년 지나도 식지 않는 안토니 가우디(1852~1926년)의 인기로 읽혔으니 말이다.

늘 곡선에서 길을 찾았던 가우디의 건축, 카사바트요의 파사드와 내부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이 천재 건축가에게 당대의 부자들은 앞다투어 작업을 의뢰했고, 섬유업에서 부를 이룬 조셉 바트요도 그중 한명이었다. 얼핏 4번째쯤 되는 바르셀로나 여행마다 가우디를 찾게 되는 이유를 생각해 봤다.

늘 곡선에서 길을 찾았던 가우디의 건축, 카사바트요의 파사드와 내부

우선 직선이 존재하지 않는 자연을 모방한 그의 건축은 정형성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타일과 유리가 투과하는 빛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공간을 볼 때마다 다르다. 다른 이유는 가우디의 유산을 다루는 바르셀로나 사람들의 세련된 혹은 영리한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동시 관람 인원 제한, 패스트 트랙, VIP 입장권 등을 적용해 관람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은 물론, 수익을 기부하고, 현대 미술을 접목하는 일에도 소극적이지 않다. 카사 바트요 관람의 대미를 장식하는 레픽 아나돌(Refik Anadol) 미디어아트와 일본 건축가 켄고 구마의 계단 설치작품은 이질적이었지만, 그래서 더 선명했다.

●스케이트보드를 탄 도시재생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MACBA)은 방직 산업이 활발했다가 슬럼화되었던 라발지구(El Raval)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던 도시재생의 랜드 마크다. 백색의 건축가로 알려진 리차드 마이어(Ricard Meier)는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에도 새하얀 복도와 경사 진입로를 만들고, 유리창 너머로 거리 풍경을 응시하게 만들었다. 라발지구에 이식된 이질적인 문화시설에 대한 평가는 분분하다. 지역은 '힙하고 핫'해졌지만, 임대료가 상승하면서 가난한 거주민들이 느끼는 압박감은 미술관에서 가장 잘 보이는 주택 벽면에 '그들이 우리를 집에서 쫓아낸다(Ens foten fora de casa)'는 문구로 몇 년째 표출되고 있다.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 앞 광장은 스케이트 보더들의 성지다

바르셀로나미술관 앞 천사의 광장은 전 세계 스케이트 보더들이 몰려드는 보딩 명소다. 미술관측에서는 제한하고 싶었겠지만, 터진 봇물을 어찌 막으랴, 미술관은 스케이트보딩이라는 하위문화와 동거하며 지역과 연결고리를 맺고 있다. 숨겨진 많은 애증의 이야기를 다 알기는 어렵지만 예술이 가진 소통의 힘을 믿는다. 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기획전에서 인권의 소외와 일방적인 도시 개발을 비판하는 작가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도시 개발의 획을 그어 온 바르셀로나는 가우디처럼 곡선에서 길을 찾는 중이다.

라로카 빌리지는 인테리어 전시장 같다 ©라로카 빌리지
수년째 걸려 있는 현수막 '그들이 우리를 집에서 쫓아낸다'

●바르셀로나의 젓가락 행진곡

개인적으로 이번 여행에서 베스트 오브 베스트 레스토랑은 바르셀로나에 있었다. '두 개의 젓가락'을 뜻하는 도스 팔리요스(Dos Palillos)는 만난 사람들 모두 엄지척을 했던 아시아 퓨전 레스토랑이다.

15개 이상의 요리를 맛볼 수 있는 도스 팔리요스
도스 팔리요스의 간장게장

한입 거리 타파스 요리들이 무려 15개 이상 나오는 페스티벌 메뉴는 맛과 모양에서 정성을 다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간장게장을 포함해 아시아의 풍미가 가득했던 요리와 3가지 디저트까지 남김없이 비웠다. 그간 쟁쟁한 레스토랑을 방문하여 눈높이가 꽤 높아져 있었지만, 도스 팔리요스가 단연 베스트였다. 타파스 바 특유의 캐주얼한 분위기지만 음식은 최고급 레스토랑 못지않고, 셰프들도 격식 없이 서빙하며 고객과 대화를 나누는 유연함까지, 모든 것이 좋았다.

에스티마르(Estimar)

하지만, 해산물을 좋아한다면 두말할 것 없이 에스티마르(Estimar)를 추천한다. 접시에서부터 바닷냄새가 가득한 레스토랑의 선장은 라파 자프라(Rafa Zafra) 셰프다. 그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은 신선한 재료의 사용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이렇게 훌륭한 요리가 나올 리가 없다. 어느 평론가는 21세기 최고의 해산물 레스토랑이라고도 했다. 자프라 셰프의 또 다른 바르셀로나 레스토랑인 '아마르'에는 몇 달 전 오바마 전 미 대통령 부부가 방문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라로카 빌리지의 예술 작품 ©라로카 빌리지

글·사진 천소현 에디터 강화송 기자 취재협조 비스터 콜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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