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 우파의 ‘막가파 정치’가 미국 공화당에서 통하는 이유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2023. 10. 18.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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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이 해임 투표를 통해 의장직에서 쫓겨났다. 미국 의회 240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소수의 강경 우파 공화당 의원이 미국 정치를 뒤흔든 사건이다.

하원의원 435명 중 강경 우파 공화당 의원 단 8명 때문에 미국 연방의회가 대혼란에 빠졌다. 지난 1월 이들의 협조로 힘겹게 의장에 선출된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이 민주당과 협력해 최근 연방정부 임시 예산안을 통과시켜 정부의 셧다운(일시 업무 중단)을 막았는데, 이러한 ‘죄목’으로 이들이 주도한 해임 투표 결과 취임 9개월 만에 의장직에서 쫓겨났기 때문이다. 현직 하원의장이 재임 중 해임된 것은 미국 의회 240년 역사상 처음이다. 특히 차기 의장직에 도전한 7선의 짐 조던 의원이나 9선의 스티븐 스컬리스 의원 모두 자타가 공인하는 보수 강경파여서 워싱턴 정가의 우려가 이만저만 아니다. 두 사람 중 누가 선출되든 11월 중순 마감 시한인 연방정부 정식 예산안 협상이 난항을 겪을 게 뻔하고, 합의에 실패하면 연방정부가 이번엔 진짜 셧다운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임 직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 ⓒAP Photo

1월에 개원한 118차 의회는 개원 초부터 공화당 강경 우파 의원들의 방해로 의장 선출이 난항을 겪으면서 일찌감치 험로가 예상됐다. 공화당이 하원을 장악한 가운데 9선의 케빈 매카시 원내대표가 의장 후보로 나왔지만 20명에 달하는 강경 우파 의원들이 반기를 들었다. 투표가 14차례까지 갔지만 선출이 무산됐다. 결국 매카시는 이들의 요구를 수용하는 조건으로 15번째 투표에서 가까스로 의장에 선출됐다. 하지만 ‘단 한 명의 의원이라도 해임안을 제출하면 의장은 재신임 투표를 받아야 한다’는 요구조건 때문에 매카시는 임기 내내 이들의 눈치를 봐야 했다. 그러다 결국 이들에 의해 팽 당한 셈이다. 당시 강경파 중 맷 게이츠 의원이 주도해 매카시 의장에 대한 해임 결의안을 제출했다. 그를 포함한 강경 우파 의원 8명과 민주당 의원 200명이 동조해 10월3일(현지 시각) 해임안이 가결되었다.

하원 공화당 의원 221명 중 게이츠 의원 같은 강경파는 약 10%에 불과하다. 하지만 지금처럼 공화·민주 양당이 팽팽히 맞선 상황에서 이들의 영향력은 막강할 수밖에 없다. 하원에선 법안이 과반으로 통과되기 때문에 공화당 의원 전원이 합심하면 민주당(212명)이 반대해도 과반 정족수인 218표를 넘긴다. 하지만 강경파 의원 4명만 반대해도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그 경우, 공화당은 민주당의 협조를 받아야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다. 공화당 지도부 입장에서는 아무리 미워도 이들을 껴안지 않을 수 없다.

이들 소수 강경파 의원은 매카시 의장 재임 내내 그를 압박해서 자신들의 뜻대로 정국을 이끌어왔다. 이를테면 9월 초 매카시 의장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비리 혐의로 기소된 아들 헌터와 연루된 혐의가 있는지 탄핵조사 명령을 내렸는데, 이것도 이들 강경파 의원의 압력 때문이었다. 또 그는 이들의 요구로 대다수 공화당 의원들의 뜻을 무시한 채 연방 예산에 포함된 우크라이나 전비 지원액 60억 달러를 삭감했다. 이를 두고 온건파인 공화당 중진 마이크 심슨 의원은 “의원 200명이 21명 강경파 의원들에게 질질 끌려다니는 게 공화당의 현주소다”라고 개탄했다.

이들 강경파 의원은 이념적으로 가장 우익인 당내 모임 ‘프리덤 코커스’ 소속이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현재 공화당 하원에는 단체가 5개 있다(‘문제해결 코커스’ ‘공화당 거버넌스 그룹’ ‘공화당 주류 코커스’ ‘공화당 연구모임’ ‘프리덤 코커스’). 의원 한 사람이 여러 단체에 가입이 가능해 회원 수가 중복될 수밖에 없는데, 현재 최대 단체는 173명이 가입한 ‘공화당 연구모임’이다. 이 단체에는 이념적으로 온건·극우 성향 의원들이 혼재해 있다. ‘문제해결 코커스’는 소속 의원이 29명에 불과하지만 민주당과 타협적 성향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공화당 거버넌스 그룹’은 온건파 의원 42명이 참여하고 있다. ‘공화당 주류 코커스’에도 온건파 의원 67명이 가입해 있는데, 이 단체는 굳이 자신들을 ‘온건파’라고 부르는 걸 꺼려한다.

이들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단체는, 의장 해임을 주도한 4선의 게이츠 의원이 속한 ‘프리덤 코커스’다. 약 35명이 가입한 것으로 알려졌고 2015년 공화당 강경파 그룹인 ‘티파티’ 출신들이 중심이 돼 설립되었다. 임신중지 반대, 불법이민 금지, 연방정부 지출 축소, 국경 강화 등 당내 초강경 우파 노선을 견지하며 막강한 힘을 과시해왔다. 이들 대다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다. 차기 의장직에 도전하는 조던 의원도 이 단체의 초대 회장을 지낸 초강경 보수파다.

강경파의 ‘막가파식’ 행동 못 막는 이유

문제는 공화당 지도부조차 소수 강경파 의원들의 ‘막가파식’ 행동을 통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과거엔 당 지도부가 선거자금과 상임위 배정 권한을 이용해 ‘튀는’ 의원들을 통제했지만 이런 방식은 강경파 의원들한테 통하지 않는다. 이들이 극우 성향 유권자들에게 후원금을 모금해 홀로서기에 나섰기 때문이다. 열렬한 트럼프 지지자로 알려진 강경 우파 마조리 테일러 그린 의원은 지난해 약 1200만 달러(약 162억원)를 모금했다. 전체 하원의원 가운데 9위다. 게이츠 의원의 모금액도 638만 달러(약 86억원)에 이른다. 게이츠 의원은 X(옛 트위터)에 단단한 우파 팔로어 250만명까지 거느렸다.

공화당 행정부 관리를 지낸 브루스 멜먼은 〈월스트리트저널〉에서 “예전엔 당이 의원들을 위해 모금하고 키워주면 해당 의원들은 이에 보답하면서 팀플레이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강경 우파 의원들은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며 인기 영합주의를 따르고 있다”라고 말했다. 실제 플로리다주 출신인 게이츠 의원이 연초부터 하는 행위를 2026년 플로리다 주지사 선거를 노리고 우파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어내기 위한 ‘정치적 꼼수’로 보는 공화당 의원이 적지 않다.

공화당 지도부도 맥을 못 추는데 평의원들이야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짐 맥거번 의원은 〈월스트리트저널〉에서 “많은 공화당 의원이 강경파 의원들의 행태에 치를 떨지만 그렇다고 이들에 맞서 싸우겠다는 용기를 가진 사람은 없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해임을 주도한 공화당의 맷 게이츠 하원의원. ⓒAFP PHOTO

지금처럼 극소수 강경파가 판치는 상황을 끝내기 위해서는 우선 차기 의장과 공화당 주류 의원들이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강경파 의원들의 요구로 지난 1월 개정된 하원 규칙, 즉 ‘단 한 명의 의원이라도 해임안을 제출하면 의장은 재신임 투표를 받아야 한다’는 조항부터 고쳐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사설에서 이례적으로 공화당 강경파를 비판하며 “의장 불신임안은 최소한 의원 20명은 동의해야 제기할 수 있도록 개정해야 한다. 그래야 의장이 소수 반란 세력의 볼모로 잡히지 않을 것이다”라고 썼다. 매카시 전임 의장도 해임안이 통과된 직후 “공화당 전체 하원의원의 4%에 불과한 사람들이 민주당과 합세해 의장을 갈아치울 수 있다는 게 문제다. 차기 의장은 이 규칙부터 바꿔야 한다”라고 말했다.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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