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국채금리 또 4.9% 근접…채권이 주식 흔든다[월스트리트in]
10년 국채금리 다시 4.9% 근접
‘중동 방문’ 바이든 행보 주목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미국 경제는 역시 예상보다 강했다. 소매판매와 산업생산 등 주요 지표들이 일제히 호조를 보이면서 긴축 장기화 공포가 다시 불거졌고, 이로 인해 글로벌 장기시장금리 벤치마크 역할을 하는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다시 4.9%에 육박할 정도로 폭등했다. 중동 무력 충돌 이후 낮아지나 했는데, 다시 시장을 흔드는 눈으로 떠오른 것이다. 이에 뉴욕 증시도 장중 롤러코스터를 타며 혼조 마감했다.
美 소비·산업생산 지표 호조
17일(현지시간) 마켓포인트에 따르면 이날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블루칩을 모아놓은 다우존스 30 산업평균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0.04% 오른 3만3997.65에 장을 마감했다. 하지만 대형주 중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0.01% 하락한 4373.20을 기록했다. 기술주 중심 나스닥 지수는 0.25% 떨어진 1만3533.75에 거래를 마쳤다.
시장은 장 초반부터 흔들렸다. 개장 전 나온 소매판매 보고서가 예상을 큰 폭 웃돌았기 때문이다.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지난달 소매 판매는 전월 대비 0.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우존스가 집계한 시장 전망치(0.3%)를 한참 웃돌았다. 지난 8월 소매판매 증가율이 기존 0.6%에서 0.8%로 상향 조정됐을 정도로 호조를 보였는데, 여기에 지난달까지 소비가 호조를 보인 셈이다. 자동차를 제외한 근원 소매판매의 경우 0.6% 뛰면서 월가 전망치(0.2%)를 상회했다.
미국 경제의 70% 비중에 육박하는 소비는 경기의 척도로 여겨진다. 이번 수치는 저축율 하락, 학자금 대츨 싱환 개시 등을 이유로 미국 소비가 둔화할 것이라는 당초 예상을 깬 것이다. 미국 경제가 아직 건재하다는 의미다. 트레이드 스테이션의 데이비드 러셀 시장전략가는 “미국 소비자들은 지출을 멈추지 않고 있다”며 “이는 이번달 말 강한 국내총생산(GDP) 수치를 궤도에 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생산 역시 월가 예상을 상회했다. 연방준비제도(Fed) 집계를 보면, 지난달 산업생산은 전월 대비 0.3% 늘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내놓은 시장 예상치(0.1% 증가)를 웃돌았다. 가장 큰 부문을 차지하는 제조업 생산의 경우 0.4% 증가했다.
10년 국채금리 다시 4.9% 근접
이에 연준의 긴축 장기화 관측은 더 힘을 받게 됐다. 당장 뉴욕채권시장에서 글로벌 장기시장금리 벤치마크 역할을 하는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소매판매 보고서 발표 직후 폭등하면서 장중 4.862%까지 치솟았다. 또 다시 4.9%에 근접한 것이다. 전거래일 대비 15bp(1bp=0.01%포인트) 안팎 오른 수치다. 연준 통화정책에 민감한 미국 2년물 국채금리는 5.242%까지 뛰었다. 노스엔드 프라이빗 웰스의 알렉스 맥그레스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소매판매 보고서 때문에 국채금리가 다시 문제가 될 만한 수준으로 상승했다”고 했다.
탄탄한 경제지표에 달러화 가치도 상승했다. 주요 6개국 대비 달러화 가치를 지수화한 달러인덱스는 장중 106.53까지 올랐다.
장 보이빈 블랙록 투자연구소(BII) 소장은 “10년물 국채금리가 16년 만의 최고치에 도달하며 국채시장에서 상당한 조정(국채가격 하락·국채금리 상승)이 일어났음을 보여줬지만 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투자자들이 만기가 긴 채권에 더 많은 프리미엄을 요구하면서 금리가 더 오를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인디펜던트 어드바이저 얼라이언스의 크리스 자카렐리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지금은 채권시장이 증시를 이끌고 있다”라며 “최근 두달간 봤던 추세를 다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국채금리 폭등은 연준의 긴축을 대신 해주는 효과가 있다는 분석이 있기는 하지만, 그 자체로 투자자들 사이에서 공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그나마 은행권 실적이 긍정적으로 나오면서 증시는 초반 약세를 만회했다. 이날 골드만삭스와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모두 예상치를 웃도는 실적을 내놓았다. 다만 골드만삭스의 주가는 1.60% 빠졌고, BoA 주가는 2.33% 올랐다.
‘중동 방문’ 바이든 행보 주목
이스라엘과 하마스간 전쟁 역시 주목할 만한 재료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전격 이스라엘을 방문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등과 회담하기로 하면서 시장은 숨을 죽였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지상전 개시 여부, 반(反)이스라엘 국가인 이란의 개입에 따른 확전 여부 등의 갈림길에서 이뤄지는 이번 방문은 추후 중동 지형에 중요한 변곡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이날 국제유가는 보합권에서 움직였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1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전날과 같은 배럴당 86.66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브렌트유 12월물 가격은 0.3% 오른 배럴당 89.90달러에 마감했다. 그러나 만에하나 주요 산유국인 이란 등이 전쟁에 개입할 경우 유가는 다시 큰 폭 흔들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인프라 캐피털 매니지먼트의 제이 해트필드 최고경영자(CEO)는 “이란이 개입하면 이란의 하루 300만배럴 원유 생산이 차질을 빚을 것”이라고 했다.
미국 정부가 중국을 겨냥해 인공지능(AI) 반도체 추가 규제안을 공개했다는 소식도 나왔다. 엔비디아가 중국 수출을 위해 사양을 낮춘 모델인 A800과 H800까지 규제 대상에 포함한 게 대표적이다. 또 중국의 제재 우회를 막기 위해 중국 본사의 해외 사업체에 대한 반도체칩 수출 역시 통제한다. 이로 인해 주요 반도체 업체들의 주가는 급락했다. A100과 H100를 중국에 팔 수 없게 된 엔비디아의 주가는 3.24% 빠졌다. AMD(-1.24%), 퀄컴(-1.37%) 등의 주가 역시 하락했다.
유럽 주요국 증시는 이날 강보합권에서 움직였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증시의 DAX 30 지수는 전거래일과 비교해 0.09% 올랐고, 프랑스 파리 증시의 CAC 40 지수는 0.11% 상승했다.
김정남 (jungkim@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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