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 칼럼] 불법 공매도 쉽다는 韓 자본시장 이미지

전준범 기자 2023. 10. 1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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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공매도(空賣渡·주가 하락을 예상하고 남의 주식을 빌려서 판 뒤 나중에 되갚아 차익을 남기는 투자 기법) 제도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적발되지 않을 것으로 여긴 것 같다.”

이달 15일 금융감독원이 글로벌 투자은행(IB) 두 곳의 관행적인 불법 공매도 행위를 적발해 언론에 공개했다. 이날 발표 과정에서 인상 깊었던 건 김정태 금감원 공시조사 부원장보의 이 발언이다. 뉴욕·런던 수준은 아니어도 나름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나라의 자본시장인데 ‘적발되지 않을 것’으로 여겼다니. 그간 한국 시장을 얼마나 우습게 봤다는 말인가.

이번에 적발된 IB들이 벌인 행위는 주식을 ‘선(先)매도, 후(後)대여’하는 무차입 공매도다. 주식을 ‘선대여, 후매도’하는 차입 공매도의 반대다. 주식시장 안정성을 해친다는 이유로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 국가에서 무차입 공매도를 금지하고 있다.

공매도는 예나 지금이나 국내 자본시장에서 가장 논쟁적인 제도로 꼽힌다. 개인 투자자들은 공매도 거래 환경을 늘 부정적으로 바라보며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비난해 왔다. 그때마다 정부는 공매도 접근성이 외국인이나 기관보다 낮은 개인이 불만을 품는 건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적발로 한국 자본시장은 외국인의 놀이터라는 개미들의 오랜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됐다. 동시에 우리 감독당국의 감시망이 그동안 얼마나 허술했는지도 드러났다. 금감원은 검사 대상을 다른 IB로 확대하겠다고 했다. 비슷한 불법 사례가 더 나올 수 있다는 의미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자본시장 질서를 바로잡기 시작해 다행이다.

과거 금융당국 수장들의 가벼운 입도 외국인이 한국 자본시장을 우습게 봐도 되는 곳으로 여기게 한 원인이라고 본다. 문재인 정부 시절이던 2018년 4월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삼성증권의 ‘유령 주식’ 사태를 떠올려 보자. 당시 삼성증권은 우리사주에 실수로 주당 1000원이 아닌 1000주를 줬다. 이로 인해 존재하지 않는 주식이 28억주나 배당됐는데, 잘못된 주식 입고란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직원 21명이 501만주를 내다 팔면서 문제가 커졌다.

이 사건 직후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서는 뜬금없이 “공매도 철폐” 구호가 확산했다. 유령 주식 사태의 본질은 거래 오류다. 하지만 사람들은 “전산 입력만으로 존재하지 않던 주식을 만들었고, 그게 실제로 거래됐다는 점에서 무차입 공매도와 다를 바 없다”며 공매도를 저격했다. 그러자 당시 금융위원장이던 최종구 전 위원장은 “무차입 공매도를 실시간 확인하는 시스템을 갖추겠다”고 선언했다. 후임자인 은성수 전 금융위원장도 최 전 위원장과 비슷한 약속을 했다. 하지만 이 시스템은 정권이 바뀐 지금까지 구축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무차입 공매도 현황을 실시간 파악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비현실적이었다고 지적한다. 공매도 거래는 전화 통화나 메신저 채팅으로 차입 계약이 성사되면 대여 기관이 수치를 수기로 입력하고 매도 주문을 넣는 식으로 진행된다. 한국만 이렇게 하는 게 아니고, 모든 나라가 이 방법대로 공매도 거래를 한다.

한국이 프로그램 자체를 만들 수 있을지는 몰라도, 공매도 거래 비중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외국인이 전화로 체결한 계약 내용을 프로그램에 일일이 입력하게 만드는 건 전혀 다른 문제라는 의미다. 최 전 위원장과 은 전 위원장이 이 사실을 몰랐을까. 무게감 있는 자리에 앉았던 이들의 무책임한 발언이 우리 자본시장을 우습게 만드는 데 일조한 셈이다.

윤석열 정부는 그럴듯한 말 대신 현실적인 해법에 집중해야 한다. 현 상황에서 정부가 자본시장 신뢰를 되찾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은 불법에 대한 강력한 제재라고 본다. 위법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을 확실히 보여줘야 ‘외국인 놀이터’ 오명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금감원은 이번에 적발한 글로벌 IB 두 곳에 역대 최대 수준의 과징금을 부과하겠다고 예고했다. 또 수사당국과 긴밀하게 협의해 형사처벌에도 나서겠다고 했다. 많은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부디 솜방망이 처벌이었다는 평가가 나오지 않길 바란다.

[전준범 증권2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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