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탓이오, 쟤 탓이오'…LH, 검단사고 관련 '책임전가' 급급
무량판+라멘 혼용 구조 변경 두곤 LH "GS건설 무단 변경" vs 구조 변경 전 단계 LH 관여 자료
부실 골재 지적엔 LH "관급자재 공급현장 중 GS현장만 문제" vs 업계 "관급자재 관리책임은 LH"
LH 전관예우 문제 지적엔 "내부 잘못 크지만 더 중요한건 제도적인 맹점" 주장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지하 주차장 붕괴 사고 원인과 관련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지만 LH는 책임을 외부로 돌리며 '책임전가'에 급급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검단 아파트 구조 변경 전 단계 관여 자료에도 "LH는 몰랐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더불언민주당 장철민 의원이 LH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LH는 당초 해당 단지 지하주차장에 대해 GS건설이 제안한 '라멘 구조(기둥식 구조)'로 설계를 승인했다가 라멘구조를 채택하면 층고가 달라져 상부 구조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무량판 구조와 라멘 구조를 혼용하자는 설계사 측의 제안을 받아들여 설계를 변경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해 LH 관계자는 "GS건설이 무량판 구조를 혼용하는 방식으로 설계를 변경하면서 우리에게 사전에 알리지 않았다"며 "2021년 8월 납품한 설계도서를 보고 뒤늦게 알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LH의 이런 주장은 사실과는 거리가 있어보인다는 것이 관련업계의 공통된 목소리다. 관련업계 취재내용을 종합하면 LH가 발주하는 사업은 설계변경이 이뤄질 경우 시공사와 설계사, LH 등이 관련 내용 검토를 통해 설계 변경에 대한 의견을 모은 뒤 설계변경 심의위원회를 거쳐 최종적으로 설계변경을 결정하게 된다. 실무단계에서 설계변경 내용이 합의되더라도 해당 프로젝트와 관련된 변경사항 등을 확인하는 VE(Value Engineering)심의위원회의에서 관련 내용을 승인받은 뒤 국토교통부에서 사업승인을 받아서 설계변경이 완료되고, 설계변경 내용은 LH와 시공사 등에 '납품확인서'로 전달되는 구조다.
장 의원실에서 확보한 자료를 봐도 2021년 3월 작성된 실시설계도면에 LH가 참여했다는 내용이 확인된다. 그에 앞선 2021년 1월부터 3월까지 검단 현장에서 진행된 설계변경 논의과정에도 LH 관계자가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VE심의위와 국토부 사업승인을 거친 납품확인서 역시 같은해 5월 7일 LH 관계자가 받은 것으로 확인된다. LH가 설계변경 여러 단계에서 관여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LH는 몰랐다'는 답변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건설 현장을 경험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LH 현장을 포함한 모든 현장에서 발주처의 승인을 받지 않은 설계로 시공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LH 주장이 사실이라면 승인도 안 받은 설계를 시공 하도록 내버려둔 현장 감독과 감리가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부실 골재 문제되자 "관급자재 들어간 곳 중 GS건설 현장만 문제"
부실 골재 문제에 대해서도 사실상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국토위 소속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이 확보한 LH의 '콘크리트용 순환골재 관련 검토'문건을 보면 LH는 "인천검단 정밀안전진단 시 채취코어를 분석한 결과 순환골재로 추정되는 골재, 방수층 파쇄 입자 등 이물질을 확인했다"며 "감리자는 (GS건설의) 순환골재 사용을 승인한 바 없으나, 분리 선별되지 않은 순환 잔골재가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됐다.
순환골재는 폐콘크리트를 파쇄·가공한 뒤 그 속에 포함된 골재를 추출해 다시 건설용 골재로 쓰는 것으로 일종의 재활용 골재다. 재활용 골재인만큼 콘크리트용 순환골재는 사용 전 납품업체 및 건설사가 승인을 요청해 감리자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검단 현장의 경우 관련 승인이 없었다. 이와 관련해 지난 16일 LH 국정감사에서는 검단 아파트 일부가 미인증 순환골재 사용으로 안전점검 결과 재건축 아파트 수준인 D등급을 받은 것이 아니냐는 질타가 이어졌다.
이와 관련해 LH 이한준 사장은 "당시 관급자재로 납입한 레미콘이 여러 현장에 있었지만 콘크리트 강도가 기준치보다 낮았던 현장은 GS건설 현장이 유일했다"고 해명했다. 검단 현장에는 LH가 조달청 입찰을 통해서 시공사에 제공한 관급자재가 투입됐는데 관급자재가 문제가 될 경우 LH도 발주처로 관리.감독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질타를 피할 수 없다.
이 사장의 이런 발언은 검단 현장에 공급된 관급자재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GS건설의 시공 책임이 더 크다는 부분을 에둘러 지적한 것이다. LH관계자 역시 "검단 현장에 순환골재가 들어가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고, 검단 사고는 GS건설의 다짐불량이 원인"이라고 말했다.
LH의 이런 해명에 대해 업계에서는 "유체이탈 화법"이라는 반응이 다수다. LH와 사업을 상당 수 진행했던 한 중견건설사 관계자는 "건설사들이 현장에서 레미콘 검수를 하지만 반죽의 질기 정도를 측정하는 '슬럼프'와 '공시체'에 대한 압축강도 평가 등이지 순환골재 여부 등을 확인하려면 일부를 채취해서 분석하는 등의 작업이 이뤄져야 하는데 관급자재는 기본적으로 믿고 쓰는 부분도 있고, 이런 내용까지 일일이 확인할 의무는 없다"고 말했다.
다른 대형건설사 관계자도 "불량품을 사왔으면 생산자가 1차 책임, 사온 사람이 2차 책임인 것인지 물건을 수령한 사람이 불량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사용했으니 제일 큰 책임이라는 건 어불성설이자 유체이탈 화법"이라고 꼬집었다.
전관예우 지적엔 "공직자윤리법상 맹점이 더 문제"
LH 출신 인사들이 설계 업체 등으로 이직해 LH 관련 사업을 수주하는 이른바 '전관예우' 관행이 부실시공의 구조적인 원인이라는 지적에 대해 LH 이한준 사장은 설계 업체 등에 대한 선정 권한을 다른 기관에 넘기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이 사장은 "설계와 시공, 감리 등에 대해서 조달청이나 전문 기관에 이첩하면 LH가 전관으로부터 좀 자유롭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이 사장은 그러면서도 "퇴직자 관리 부분과 전관들의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는 내부 잘못도 역시 크지만, 더 중요한 것은 공직자윤리법상 취업 제한 회사가 제한돼 있다 보니 맹점을 이용한 것"이라고 말했다가 "핑계 대지 말라"는 질타를 받기도 했다. 이 사장은 LH의 인력 감축 등 조직 개편에 대해서는 "부여된 소임에 적합한 업무를 충실할 수 있도록 조직과 인력이 어느 정도는 담보가 돼야 한다"고 선을 긋기도 했다.
한편 LH는 올해 내부 표창을 하며 철근 누락 사태의 직접적 책임 부서로 지목된 '건설안전관리처'의 4급 직원도 올해 정기 표창을 수여하기도 했다. 건설안전기술본부 산하조직인 건설안전관리처는 △단지·주택 사업분야 건설공사 품질·안전 관련 점검 및 시공평가 △건설사업관리용역 발주, 점검·평가 △현장 하도급업체 관리 및 하도급 점검 등을 담당하는 부서로 검단 철근 누락 사건 수사를 맡은 경찰이 지난 8월 LH 진주 본사를 압수수색할때도 해당 부서 역시 대상에 포함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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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김수영 기자 sykim@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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