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불꽃 태우고 야구와 작별
#11일 부산 사직야구장. 7회초 두산 정수빈이 때린 파울 타구를 롯데 좌익수 안권수(30)가 펜스까지 쫓아가 슬라이딩 캐치로 잡았다. 몸을 사리지 않는 ‘안권수표 야구’를 보여준 장면. 이날 경기는 롯데의 올 시즌 마지막 홈 경기. 안권수는 경기 후 자신의 이름을 외치는 관중들 앞에서 눈물을 쏟아냈다.
올 시즌 롯데 톱 타자로 활약한 안권수가 한국 야구 4년을 마감하고 20일 일본으로 돌아간다. 재일교포 3세인 그는 한국에서 3년 이상 거주하면 병역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는 병역법에 막혔다. 군 입대도 생각해 봤지만, 일본에 있는 아내와 한 살 된 아들을 두고 가긴 어려웠다고 한다. 안권수는 “한국에 올 때 병역법에 대해 알고 있었다. 원래 일본에서 은퇴하려고 했지만, 고국 리그에서 한번 뛰고 싶은 마음이 있어 도전했다”고 말했다.
그는 5년 전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야구를 처음 접했다. “TV로 한일전을 봤죠. 일본 실업 팀도 수준이 상당한데, 한국이 두 번 다 이기더라고요.” 이듬해 무작정 한국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두산이 가능성을 보고 2차 10라운드 전체 99순위로 그를 뽑았다. 하지만 코로나로 리그가 멈춰 출장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러다 2022년부터 ‘포텐(잠재력)’이 터졌다. 76경기 출장, 타율 0.297을 기록하며 도약 채비를 마쳤다. 그러나 병역 문제는 해결 못 했다. 지난 시즌 후 일본으로 돌아가려고 짐을 싸는데 롯데가 “1년만 더 하자”며 잡았다. 혹시 아시안게임 대표로 선발되면 병역 특례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있었다. 시즌 초반 3할대 타율을 보여주며 한껏 부풀었으나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4월 말부터 계속 오른쪽 팔꿈치 부분이 아팠어요. 그런데 아시안게임 출전 가능성도 있고 해서 참고 뛰었죠. 통증을 줄이려고 주사를 맞았는데 오히려 상태를 악화시켰어요.” 이때가 6월. 공교롭게 롯데도 서서히 추락했다. 안권수는 수술 후 재활에 3개월 걸린다는 예상을 깨고 한 달 반 만에 돌아왔다.
“팀이 계속 지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조급해졌어요. 복귀 후 첫 일주일 정도는 통증을 못 느꼈는데, 다시 통증이 생겼어요. 방망이 칠 때 무섭기도 했고, 수비에서도 실수가 나왔어요. 그러다 9월 중순부터 좀 살아나기 시작했어요.”
롯데는 그러나 6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이별이 예정된 그는 마지막까지 몸을 사리지 않았다. “후배들이 다 지켜보는 앞에서 열심히 하는 모습, 끝까지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다짐이었죠. 4년이란 시간이 머릿속에서 휙 하고 스쳐 지나가더군요. 한국에 와서 야구도 많이 늘었고, 좋은 친구들도 많이 만났습니다. 못 잊을 겁니다.”
마지막 홈 경기 때 그는 부활의 ‘네버 엔딩 스토리’를 등장곡으로 틀었다. ‘그리워하면 언젠간 만나게 되는 어느 영화와 같은 일들이 이뤄져 가기를~’이란 가사처럼 롯데와 한국 야구에 대한 애정이 끝나지 않을 것이란 마음을 담았다. 일본으로 돌아가면 컨설팅 회사에 취직해 제2의 인생을 시작할 계획이다. 한국에도 자주 들르겠다고 했다. “처음 한국에 올 때는 (제 인생은) 패배 위기에 몰린 9회말 투아웃. 연장전까지 가면 좋겠다고 했어요. 지금도 3볼 2스트라이크. 아직 타석에 서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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