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맘대로 남의 뼈를…” 美 자연사박물관서 인간 유해 사라진다
전시관 12곳서 1만2000점 철거
미국 뉴욕 맨해튼의 미국자연사박물관은 할리우드 공상과학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 촬영지로 유명한 세계적 관광 명소다. 연중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1869년 문을 연 이곳에는 동식물과 광물을 합쳐 3500만개 표본이 소장돼 있다. 그중 1만2000여 점의 인체 유해를 더는 이곳에서 볼 수 없게 된다. 박물관이 모두 철거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16일(현지 시각) “박물관이 관행처럼 유지해온 인간 유해 전시에 대해 최근 박물관이 윤리적·도덕적으로 부적절하다고 결론 내리고 전시관에서 모두 철거하는 작업에 착수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인간 유해가 전시된 12개 전시실부터 순차적으로 철거 작업이 진행된다. 또 11세기 몽골 전사의 유골 등 관람객 발걸음이 몰렸던 인기 전시 코너도 자취를 감추게 된다. 이 같은 결정은 박물관 개관 이래 최초의 흑인 박물관장으로 지난 4월 취임한 숀 디케이터가 내렸다.
그는 최근 박물관 직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지금까지 유해 수집은 극심한 권력 불균형에 의해 가능했다”면서 “19세기와 20세기의 많은 연구자는 백인 우월주의에 뿌리를 두고 이른바 ‘인종 계층 모델’을 강화하기 위해 수집을 했다”고 했다. 이어 “과거 학계에서 인종차별적 요소를 담고 있는 우생학(優生學)을 위해 유해를 수집·분석하거나, 동의받지 않은 유해를 전시에 사용하면서 태생적으로 윤리적 결함을 안게 됐다”고도 했다. 그동안 해온 인체 유해 전시가 인종차별적 동기에서 비롯된 부도덕한 행위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의 방침이 현행 법률 규정과 부합하는 측면도 있다. 30여 년 전 만들어진 연방법 규정에 따라 원주민 유해를 보관·전시 중인 박물관은 이를 유족들에게 반환할 의무가 있다. 실제로 미국자연사박물관에 소장된 1만2000여 유해 중 상당수는 원주민의 유해다. 이 중에는 유족을 수소문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오래된 유해도 많기 때문에, 박물관들은 불법임을 알면서도 관행적으로 유해를 전시·보관해왔고 당국도 사실상 이를 묵인해왔다. 미국자연사박물관이 연방법 규정에 따라 직접 유해의 후손을 찾아 반환한 사례는 지난 30여 년간 1000건에 불과하다. 박물관은 현재 세 명에 불과한 유해 감식 인력을 대폭 보강해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원주민 유해를 고향과 후손들에게 돌려보낸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만큼, 인체 유해 대부분은 당분간 관람객 동선에서 빠져 수장고에 보관될 가능성이 높다. 원주민을 제외한 나머지 유해 중에는 20세기 초 사망자 시신으로 의과대학에 실습용으로 기증된 400여 무연고자, 맨해튼 노예 공동묘지에서 발굴된 흑인 성인 5명 등이 문제로 지적된다. 디케이터 관장은 지역 방송 인터뷰에서 “어떤 개인도 자신의 유해를 박물관 컬렉션에 포함시키는 데 동의하지 않았다”고 말하며 강력한 송환 의지를 피력했다.
생화학자인 디케이터 관장은 여러 리버럴 아츠 칼리지(학부 중심으로 기초 학문을 가르치는 소규모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관장 취임 전까지는 오하이오주 케니언대에서 8년간 총장을 지냈고, 이 기간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확대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정책 등에 중점을 뒀다. 배우자인 러네이 로마노 오벌린대 교수는 20세기 미국 흑인 민권운동사 전문가다. 일각에서는 이번 인간 유해 철거 결정이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PC)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앞서 자연사박물관은 디케이터 관장 취임 전인 2022년 1월 원주민과 흑인을 양옆에 세워 둔 채 말을 타고 땅을 바라보는 모습의 시어도어 루스벨트(1858~1919) 전 대통령의 동상을 인종차별과 제국주의를 미화한다는 이유로 철거했다. 이달 초 필라델피아에 있는 펜실베이니아대 인류고고학박물관 역시 “인간의 존엄성과 후손들의 바람을 우선시하겠다”면서 인간 유해를 모두 철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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