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JYP 같은 대형 연예 기획사 1950년대 있었다

최보윤 기자 2023. 10. 18. 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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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동맹 70년, 번영을 위한 동맹]
1950년대 후반 대표 미8군 쇼 용역 업체 '화양'을 통해 21세부터 미군 클럽 무대에 선 가수 패티김의 당시 공연 모습./최규성 제공

미8군쇼가 인기를 끌면서 1950년대 말부터 미군쇼에 송출할 연예인을 키우는 용역 업체가 생겼다. 요즘으로 보면 대형 연예기획사다. 미8군 출신 음악 동인인 예우회(회장 장미화) 자료에 따르면, 1957년쯤 당시 상공부(현 산업통상자원부)에서 등록허가제를 실시하면서 체계적으로 연예인과 쇼단 운영을 관리하는 업체들이 등장했다. 상공부가 지정한 ‘용역불(用役弗·주한 미군 또는 그 밖의 유엔군에 노무 또는 서비스를 제공한 대가로 얻은 달러) 수입업자’로 허가받기 위해서는 미8군쇼 연예인으로 이름을 올린 단원으로 구성된 쇼단 다섯 개 이상을 보유해야 했다. 이전엔 연주자 개인이나 팀이 개별적으로 클럽 등과 협의해 무대에 올랐다.

화양흥업은 미8군 베니김쇼로 인기 끈 트럼펫 연주자 베니김(김영순)이 세운 대표적 용역 업체였다. 500여 명의 가수와 연주자를 보유할 만큼 규모와 명성을 자랑했다. 특히 당시 많은 인기를 누린 기타리스트 신중현이 소속된 곳이었다. 신중현은 화양에서 1962년 국내 최초의 4인조 그룹 ‘클럽데이트’를 결성해 국내 밴드음악 역사를 새로 썼다. 화양은 신중현이 이끄는 팀 ‘클럽데이트’를 위해 패키지쇼(무용, 코미디, 마술 등 각종 단원이 참여하는 공연)를 구성했고, 그 공연은 전국 미8군 무대를 사로잡았다. 신중현은 과거 인터뷰에서 “연주를 하면서 마술 흉내 코미디도 잘하는 편이었는데, AFKN(주한미군방송)을 통해 최신 음악은 물론 마술에 대한 아이디어도 얻었다”고 밝혔다. 요즘 연예인으로 보면 ‘개인기’를 연마한 셈이다.

이후 화양의 라이벌 격인 유니버설이 세워졌고, 삼진, 공영, 대영 등이 잇따라 설립됐다. 각 쇼단은 대략 3~6개월에 한 번씩 미국에서 직접 파견 온 음악 전문가들을 대동해 오디션을 치렀다. 작곡가 김희갑이 악단장이었던 에이원(A1)쇼를 통해 가수 윤항기·윤복희·김성옥·송영란 등이 배출됐다. 작곡가 이봉조가 이끈 헐리우드쇼엔 가수 현미와 남석훈 등이 활동했다.

미8군쇼는 1960년대 중반 베트남전쟁으로 주한미군 규모가 급격히 축소되면서 점차 사라졌다. 하지만 각종 오디션과 다양한 쇼를 통해 탄탄한 실력을 갖춘 음악인들은 1960~70년대 일반 무대로 적극 진출해 우리 가요계의 주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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